직장갑질 극단적 선택 산재승인 201명

2022-08-09 10:53:53 게재

2020~2021년 산재사망 분석

#. 연구직인 A씨는 연구원들의 파벌 때문에 업무 부여에 차별을 받거나 업무 분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로 연구수당이 팀내 최하위 수준이었다. A씨는 부장 면담도 했으나 개선되지 않았다. 상급자 중엔 A씨의 업무능력을 평가절하하는 발언도 있었다. 자존감이 계속해서 훼손되는 상황에서 A씨는 상급자로부터 공동연구 불가 방침을 메일로 통보받은 직후 집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 콜센터 상담사인 B씨는 교육담당자로부터 업무성과가 저조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담당자는 교육자료에 B씨의 상담 응대 녹취를 잘못된 사례로 사용했다. 담당자는 이후에도 콜수가 적고 안내에 오류가 있다며 B씨를 수시로 면담하고 별도로 테스트하는 등 모멸감을 줬다. B씨는 결국 휴직했고 복직을 앞둔 시점에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는 사실을 알고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


직장내 괴롭힘으로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사건 가운데 산재로 인정받은 사례들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사장 이병훈)과 지난달 22일 서울 영등포 국회의원회관에서 '직장내 괴롭힘 금지제도 도입 3년'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이진아 공인노무사(이산노동법률사무소)는 '2020~2021년 직장내 괴롭힘과 산재 사망 분석'을 발표했다.

직장갑질119에서 분기별로 진행하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하는 갑질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9년 6월 직장 갑질을 경험했다는 직장인은 44.5%에서 2022년 6월에는 29.6%로 크게 줄어들었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직장내 갑질이 줄어들었다고 응답도 같은 기간 대비 31.9%에서 60.4%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직장내 괴롭힘 심각성에 대해서는 2019년 6월 38.2%에서 2022년 6월 39.5%로 전혀 감소하지 않았다. 또한 올해 설문조사에서 '지난 1년간 직장내 괴롭힘 경험이 있는 직장인들 중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적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있다'는 응답이 11.5%로 나타났다.

이 노무사는 "올해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1000명 중 296명(29.6%)은 직장내 괴롭힘을 경험했으며 그 가운데 34명은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해봤다는 의미"라며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취지와는 상반된 결과"라고 말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 공무원연금공단 등으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반 노동자, 공무원, 군인, 사립학교 교직원 가운데 산재(순직)을 신청해 인정받은 재해자수는 2020년 87명, 2021년 114명에 달했다.

2019년 7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2020년과 2021년에만 201명의 노동자가 직장내 괴롭힘 등으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 노무사는 "직장생활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에 대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을 받았다면, 직장내 괴롭힘이나 고객 폭언 및 업무과다 등으로 발생한 스트레스가 그 원인"이라며 "직장내 괴롭힘이 발생할 때 회사 조치의무들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되거나 피해자 보호를 위해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설문조사에서 직장갑질을 경험한 직장인들에게 어떻게 대처했는지 물었다. 67.6%가 '참거나 모른 척했다'고 응답했다. '회사를 그만뒀다'는 23.6%였다.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로는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거 같지 않아서'(66.4%),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22.4%)를 꼽았다.

정부의 관리·감독 방식도 문제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2021년 10월 14일부터 2022년 5월 31일까지 고용노동부에 '회사 조치의무 위반'으로 신고된 884건 중 과태료 처분은 0건이었다.

이 노무사는 "사실상 고용부가 회사의 직장내 괴롭힘 관련 조치사항에 대해 실효성 있는 관리감독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근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윤리경영 배점이 높아지면서 기획재정부는 2022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에서 '중대한 사회적 기본책무 위반행위 및 위법행위가 발생한 경우' 0점 부여도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이 노무사는 "직장내 괴롭힘이 인정되는 사건이 있을 때 윤리경영에서 감점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라며 "이런 방식의 운용은 오히려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억제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당국은 공공기관으로 하여금 직원들에게 직장내 괴롭힘 문제가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신속히 조사해 조치하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을 통해 직장내 괴롭힘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야말로 이 법의 가장 큰 의의"라며 "직장내 괴롭힘은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직장이라는 조직문화와 산업안전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윤 변호사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3년의 과제로 △5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에게 적용 △정부당국의 제대로 된 법 집행을 꼽았다.

[관련기사]
[직장갑질금지법 판례·산재 분석] 직장갑질 방치한 회사 처벌 강화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한남진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