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두루미 보전협약
흑두루미 서식지 보전 위해 지자체들이 나섰다
철원-서산-순천-여수-광양-고흥-보성 등 7개 지자체 '보전협약' … 중앙정부 차원에서 국제협력 추진해야
전세계적으로 최대 1만8000마리에 불과한 멸종위기 조류 '흑두루미' 보전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번 겨울 이즈미에서 조류독감이 번져 1300여마리가 폐사했다. 전세계 흑두루미 개체군의 10%에 가까운 숫자다.
흑두루미 5000여마리가 조류독감을 피해 순천만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이미 상당수가 조류독감에 걸린 상태였다. 이번 겨울 순천만에서 폐사한 야생조류는 모두 201마리였다. 이 가운데 흑두루미가 192마리로 가장 많았다.
다행히 흑두루미들은 순천만에 계속 머물지 않았다. 순천만 인근인 경남 하동 갈사만, 전남 여수·광양·고흥·보성에 연접한 여자만, 충남 서산 천수만 등지로 흩어졌다. 순천만 흑두루미 개체수가 평상 수준을 회복한 지난해 12월 19일 이후엔 더 이상 폐사체가 나오지 않고 있다.
12일 순천만에서는 철원 서산 순천 광양 등 7개 지자체가 모여 흑두루미 서식지 보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지자체들은 "이제 환경부 등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과 국제협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저희 철원과 순천시는 두루미 서식지 조건은 약간 다르지만 서로 네트워크를 통해서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철원지역에서 두루미 서식지를 보전하는 데 많은 협조 지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철원군)
"저희 서산시에도 흑두루미 400여마리가 월동하고 있습니다. 어제 시장이 직접 순천만에 오셔서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협약에 참여한 자치단체와 굳건한 협력을 통해서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겠습니다."(서산시)
"저희 광양시에도 흑두루미 400여마리가 월동하는데 최근 서식지 파괴라든지 조류독감 때문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흑두루미를 보호하는 것이 곧 주민들의 삶을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주민들과 함께 보전하겠습니다."(광양시)
12일 오전 9시 30분 순천만국제습지센터에 강원도 철원군, 충남 서산시, 전남 여수시·광양시·고흥군·보성군·순천시 등 7개 지자체가 모였다. '흑두루미'(멸종위기2급) 보전을 위해서다.
이들은 △흑두루미 서식지 보전을 위한 지자체 네트워크 구성 △각 지자체 경험과 지식 공유 △흑두루미 분산 및 방역시스템 협력 △개체군 변화 모니터링과 정기 워크숍 개최 등의 업무협약을 맺고 "흑두루미 보전을 위해 남해안 흑두루미 벨트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업무협약을 주선한 노관규 순천시장은 "2009년에 환경기자클럽 등 많은 언론인들이 오신 자리에서 흑두루미 안전을 위해 순천만에 있던 전봇대 282개를 뽑았는데, 그 뒤로 200마리가 채 되지 않던 흑두루미 월동 개체수가 3000마리 이상으로 늘었다"며 "이제 중앙정부가 나서서 흑두루미 서식지 분산을 위해 남해안 벨트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천 파주 김포 등 두루미 주요 월동지 지자체를 모두 포함해 환경부 차원의 보전협약을 맺을 필요가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협약식에 참관한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담당 사무관은 "지자체들이 먼저 이런 협약을 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이날 스파이크 밀링턴 '국제두루미재단' 부회장은 영상 메시지에서 "흑두루미의 잠재적 월동지를 발굴해 서식지 환경을 넓게 개선하고 먹이주기 분산을 통해 월동지를 확대해야 한다"며 "흑두루미를 여러 지역으로 분산해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 보전될 수 있도록 공동협력을 당부한다"고 촉구했다.
◆이즈미에서 1300여마리 죽어 = 지난해 11월 초 전세계 흑두루미 90%가 월동하는 일본 이즈미에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발생했다.
인공 잠자리로 조성한 무논(물을 채운 논)이 오염되면서 조류독감이 급속도로 퍼졌다. 전세계적으로 1만6000~1만8000마리로 추정되는 흑두루미 1300여마리가 조류독감으로 폐사했다. 위험을 느낀 흑두루미 5000여마리가 다시 바다를 건너 순천만과 천수만으로 이동했다.
지난해 11월 18일 순천만 조류 새벽조사에서 '흑두루미' 7192마리가 관찰돼 '역대 최대'를 기록한 데 이어 11월 21일 새벽조사에서 9841마리가 관찰됐다. '1만마리 돌파'를 코앞에 둔 상황이었다.(11월 22일 내일신문 최초 보도)
일반적으로 흑두루미는 10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러시아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내려간다. 최종 월동지인 일본에서 흑두루미들이 다시 북상해 한국으로 역유입된 상황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순천시는 이즈미에서 조류독감 발생으로 흑두루미 5000마리 이상이 순천만으로 대규모 유입된 것으로 파악하고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국립생태원 등과 실시간 소통하면서 환경부 '조류독감 긴급행동지침' 규정에 따라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조류독감에 오염된 상태에서 이동해온 것으로 추정되는 흑두루미는 계속 죽어나갔다. 이번 겨울 순천만에서 폐사한 야생조류는 모두 201마리였다. 이 가운데 흑두루미가 192마리로 가장 많았다.
다행히 흑두루미들은 순천만에 계속 머물지 않았다. 순천만 인근인 경남 하동 갈사만, 전남 여수·광양·고흥·보성에 연접한 여자만, 충남 서산 천수만 등지로 흩어졌다.
순천만 흑두루미 개체수가 평상 수준을 회복한 12월 19일 이후엔 더 이상 폐사체가 나오지 않고 있다.
◆순천만과 여자만 월동 개체수가 87% = 지난해 12월 말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철새연구센터가 조사한 결과 흑두루미가 가장 많은 지역은 △순천만 여자만 4708마리(87.6%) △광양만 갈사만 408마리(7.6%) △고흥호 118마리(2.2%) △철원평야 33마리 △천수만(간월호) 22마리 등이다.
12월 중순에 비해 1364마리가 줄어들었는데, 특히 서산 천수만 일대에서 1033마리가 줄어 감소폭이 가장 컸다. 이는 12월 중순의 추위와 중서부지역 폭설 등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줄어든 흑두루미들이 다시 일본으로 이동했는지 여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한-중-일-러 국제협력을 통해 흑두루미 이동경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위성추적장치' 부착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추적장치를 부착하려면 러시아 내 번식지를 잘 아는 연구진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독수리'(멸종위기2급)의 경우 번식지 몽골의 둥지에서 어린 독수리의 등에 소형 위성추적장치를 부착해 매년 실시간으로 이동경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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