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가 위태롭다

공대 '의대가는 중간정류장' 전락하나?

2023-02-28 10:51:33 게재

공대, 학생이 떠난다 … 촉망받던 반도체학과, 추가 모집 잇따라

지난 입시를 마무리하며 주요 대학 공대가 시선을 끌었다. 최상위권 대학 정시 합격자의 1/3이 등록을 포기했는데, 이 중 자연계열 모집단위의 비중이 작지 않았다.
최근 이들 대학 공대는 중도이탈률도 상승세다. 학부 선발로 회귀한 의대·약대가 우수 자원을 흡수하면서 공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역대학과 전문대학 공대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특성화 교육과정과 취업 보장을 내세워도 학생 모집이 여의치 않다. 이전의 이공계 기피 현상 때와 달리 산업 현장·학계 모두 수요는 많은데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는 공대 상황을 들여다봤다. 고등학생들이 진로·진학 설계에 참고해야 할 점도 짚어봤다.

출처 이미지투데이


최근 공대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주요 대학 공대 그것도 대학과 기업이 손잡고 야심차게 내세운 특성화학과에서 대량의 미등록자가 발생했다.

종로학원이 정시 추가모집 시작 직전인 지난 1월 17일 기준 대기업과 연계된 반도체학과의 올해 정시 1차 합격자 등록포기 비율을 집계한 결과 모집인원 대비 155.3%로 나타났다. 모집인원보다 더 많은 학생이 등록을 포기했다.

상세히 보면 삼성전자와 연계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모집 10명) 등록포기율은 130.0%였다. SK하이닉스와 연계된 고려대 반도체학과(11명),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10명)의 등록포기율은 각각 72.7%, 80.0%였고, 한양대 반도체공학과(16명)는 275.0%에 달했다.

지원자가 어느 정도 겹치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자연계열 모집단위의 평균 등록 포기율은 33.0%였다.

이 학과들은 취업 시장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기업과 손잡고 장학금과 해외 연수, 취업 등 다양한 혜택 제공을 약속했다. 교육계에서 유망학과로 손꼽았고 학생들의 관심도 컸다. 그런데도 학생들의 최종 선택을 받지 못해 충격을 안겼다.

물론 이를 단순 학과 선호도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수시에 비해 전공보다 대학을 중요시하는 지원층의 성향, 군별로 각각 한 장씩만 활용할 수 있는 정시의 특성도 어느 정도 반영됐기 때문이다.

◆SKY 공대, 미등록·중도 이탈 증가 = 수시에서도 유의미한 상황이 포착됐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선호하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2023학년 수시에서 합격하고도 등록하지 않은 학생은 4015명이었다.

고려대와 연세대에선 34개 학과에서 추가 합격자로 모집인원을 채웠다. 그중 27개 학과가 자연계열 모집단위였다. 특히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고려대 컴퓨터학과·데이터과학과, 연세대 컴퓨터과학과·시스템반도체공학과 충원율이 가장 높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뿐만 아니다. 3개 대학의 중도 이탈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각 대학은 대학 알리미에 매해 8월, 전년 3월 1일부터 당해 2월 말일까지 중도이탈 학생을 집계해 공시한다. 2020~2022년에 공시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중도탈락자는 2019년 1416명에서 2020년 1624명, 2021년 1971명으로 늘었다.

특히 자연계열의 이탈률이 높았다. 2021년 기준 중도탈락자의 76.8%가 자연계열 모집단위였다. 특히 서울대와 고려대는 공대의 중도탈락률이 평균을 웃돌았다. 서울대 중도탈락자 상위 학과 10곳 중 5개가 공대 모집단위였다.

문정복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서울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자퇴생이 가장 많았던 단과대학 역시 공대였다. 2012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총 551명이 자퇴해 전체 자퇴생의 27.7%를 차지했다. 2012년 35명에서 2021년 104명으로, 10년 새 3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이공계 특성화대학인 과학기술원의 상황은 어떨까? 종로학원이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지스트(광주과학기술원) 디지스트(대구경북과학기술원)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 등 4개 과학기술원의 중도탈락자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이들 대학에서는 총 1006명이 중간에 학교를 그만둔 것으로 집계됐다.

연평균 201명꼴이다. 대학별로는 카이스트가 499명으로 가장 많았고 유니스트(263명) 지스트(150명) 디지스트(94명) 순이었다. 모집 정원에 비해 많은 수치는 아니지만 영재학교나 과학고 출신 등 비교적 진로가 확고한 입학생이 많고 학비·생활비 지원, 해외대학 교류, 대학원 진학 등 혜택도 상당한 특성을 고려했을 때 의외의 결과라는 해석이다. 종합하면 최상위권 자연계열 학생들이 공대에 진학하지 않거나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대학·전문대학 공대는 '고사 중' = 이런 현상은 최상위권 대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역대학과 전문대학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일반대학에서 공대 모집인원은 비중이 높다. 지역거점 국립대조차 일부 대표학과 외에 공학계열 전공 경쟁률과 합격선이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다. 지역 일반 국립대나 사립대, 전문대학으로 갈수록 학생모집 자체가 쉽지 않다.

호남권 사립대 공대 부학장은 "4~5년 전만 하더라도 4~5등급 학생이 지원·합격했다면 현재는 6~8등급 학생들이 지원·합격한다"며 "그나마도 충원이 되면 다행"이라고 토로했다.

한 경북권 전문대학 입학 관계자는 "과거 전문대학은 자동차과나 기계과, 화학공학과의 인기가 가장 높았지만 이젠 학생들이 지원조차 하지 않는다"며 "업체들의 취업연계 요청이 많고 근무시간이나 형태 등의 조건이 많이 개선됐지만 보낼 학생이 없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충청권 전문대학 관계자는 "연암공대 한영대 등 대기업 취업이 보장돼 리턴입학이 많은 일부 학교 외에는 전문대학 공대는 폐과 수순을 밟거나 게임·대중 예술·보건계열 전공에 모집정원을 내주며 명맥만 잇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의대, 약대 등 의약학 계열로 = 최상위권 대학 공대에 등록을 포기한 신입생과 자퇴한 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대부분 의대 약대 등 의약학계열로 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수시 정시 미등록 비율이 높았던 학과로 수시에서는 고려대 컴퓨터학과(198.6%), 연세대 컴퓨터과학과(197.6%)·시스템반도체공학과(180%)가, 정시에서는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130%)·컴퓨터과학과(120.6%)·약학과(116.7%)가 이름을 올렸다. 의학계열을 제외하고 선호도·합격선이 가장 높은 학과들이다. 박성현 서울 목동고 교사는 "다른 의약대에 중복합격하면서 미등록인원이 다수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2022학년 약대가 학부로 전환되며 의약학계열모집 인원이 약 2000명 늘었다. 종전 최상위 공대 지원층이 옮겨갔고 수능의 영향력이 큰 계열이라 대학생들의 수능 재도전과 학과 중도이탈이 잇따라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의약학계열이 공학계열 학생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것이다.

이치우 비상교육 입시평가소장은 "최상위권 대학의 계약학과나 첨단학과, 기계공학과 전기·전자공학 등은 산업 전망이나 취업 면에서 여전히 이점이 크지만 최근 경기 악화로 의약대 등 전문직 선호 현상이 더 심화됐다"며 "의약대 안에서도 선호도 순으로 이탈자가 차례로 늘고 공대에서도 학교 선호도에 따라 연쇄적으로 이탈자가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하위권 대학의 공대 기피 현상은 원인이 다르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진학이 쉬워졌다는 점, 전공의 전망보다 대학의 위치를 우선하는 지원 성향, 어려운 공대 공부에 대한 지원자들의 거부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최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보건계열 수요가 급증하면서 간호학과를 포함해 보건계열 모집인원이 증가해 공대 자원을 상당수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

김기수 기자 · 정나래 내일교육 기자 lena@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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