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영아시신' 친모 살인 혐의 송치
살인죄 적용 … 경찰, 수사의뢰 받은 15건 중 2건 계속 조사 중
A씨는 이날 오전 9시 11분쯤 검은 원피스 차림으로 수원남부경찰서 정문을 나섰다. 머리에 검은색 외투를 뒤집어 써 얼굴을 완전히 가린 상태였다.
A씨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출석 포기로 지난 21일 체포 이후 단 한 차례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는 "아이들을 왜 죽였나" "숨진 아이에게 할 말 없나" "아이에게 미안하지 않느냐" 등 취재진 질문에 고개를 숙인 채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에 따르면 A씨는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아기를 출산하고 수 시간이 지나 살해한 뒤 자신이 살고 있는 수원시 장안구 소재 한 아파트 세대 내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해 온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남편 B씨와 사이에 12살 딸, 10살 아들, 8살 딸 등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또 다시 임신하게 되자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018년 11월에 넷째 자녀이자 첫 번째 살해 피해자인 딸을 병원에서 출산한 후 집으로 데려와 목 졸라 살해했다.
그는 또 2019년 11월 다섯째 자녀이자 두 번째 살해 피해자인 아들을 병원에서 낳은 뒤 해당 병원 근처에서 같은 방식으로 숨지게 했다. A씨는 아기들의 시신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냉장고에 넣은 상태로 보관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A씨의 범행은 감사원의 보건당국 감사 결과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는 되지 않은 '출생 미신고' 사례가 드러나면서 현장 조사가 이뤄지던 지난 21일 드러났다. 앞서 감사원은 보건복지부 감사 결과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는 되지 않은 '유령 영아' 사례를 발견하고 지난달 25일 지방자치단체에 현장 확인을 요구했다. 수원시는 그 즉시 A씨의 집에 방문했으나, A씨가 출산 사실을 부인하자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지난 21일 A씨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이후 23일 법원에서 영아살해 혐의로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경찰은 A씨가 분만 직후가 아닌 분만 후 수 시간~만 하루가 지나 범행한 점, 2년 연속으로 자신이 낳은 생후 1일짜리 아기를 살해하는 동일한 범죄를 저지른점 등을 고려해 혐의를 일반 살인죄로 변경했다.
경찰은 A씨와 범행을 공모하거나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남편 B씨에 대해 더욱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형사 입건했으나, 최종적으로는 불송치 결정했다. 앞서 경찰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해 온 B씨의 혐의가 드러난 것은 없지만, 면밀한 조사를 위해 피의자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살인 방조 혐의로 입건했었다. 하지만 수사 결과 B씨의 혐의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B씨는 경찰에 "아내가 임신한 사실은 알았지만, 아기를 살해한 줄은 몰랐다"며 "낙태를 했다는 말을 믿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A씨가 살인죄 적용으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상 신상정보 공개 심의 대상에 포함되지만, 남은 가족들에 대한 2차 피해 우려 등을 이유로 신상정보를 공개하지는 않기로 결정했다.
이런 가운데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이른바 '유령 영아'와 관련해 수사 의뢰를 받은 15건 중 대부분 종결하고 2건만 게속 조사 중이다.
현재 경찰이 조사 중인 사건 1건은 태국 국적의 불법체류 신분 여성 C씨가 2015년 안성시에서 출산한 아기가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경찰은 C씨가 낳은 아기에게 예방 접종을 해 준 한국인 지인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 결과 생모가 아기와 함께 태국으로 건너간 정황이 있는 것으로 보고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또 다른 사건은 20대 친모가 "인터넷을 통해 아기를 데려가겠다는 사람을 찾게 돼 아이를 넘겼다"고 진술한 이른바 '화성 영아 매매' 사건이다. 하지만 친모는 아기가 누구에게 넘겨졌는지,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게 없다고 진술했다.
이 외 다른 사건들은 하나둘 아기의 안전이 확인되면서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경찰은 안성시로부터 베트남 국적의 불법체류자 여성 D씨가 2015년 낳은 아기가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수사 의뢰를 받아 수사한 끝에 그의 지인이 아기를 데리고 베트남으로 출국한 사실을 밝혀냈다. 아기는 현재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경찰은 수원시로부터 캄보디아 국적의 불법체류 신분 여성 E씨가 2019년 출산한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사례를 접수해 수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E씨의 아기는 캄보디아에서 조부모로 추정되는 이들의 보호 아래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출국 기록 및 아기 친부의 지인 조사 등을 토대로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