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는 의대 열풍

'학습량·언어장벽·학비' 3중고 넘어야

2023-08-23 11:32:39 게재

보건복지부 인정 해외 의대 38개국 159개 대학 … 필리핀에서 헝가리로, 선호도 바뀐 해외 의대

'의대 열풍'을 넘어 '의대 광풍'이라 불릴 만큼 우리 사회는 의대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급속도로 늘어난 평균 수명과 달리 정년 보장을 꿈꾸기 어려운 지금, 나이가 들어도 일할 수 있고 사회적 대우와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는 전문직인 의사로의 쏠림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런 분위기 속 최근에는 해외 의대를 비롯한 의약학계열 진학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도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실제 유학 중인 학생들은 단순히 '돌아가는 길'로 쉽게 선택하기엔 목표를 이루기가 결코 만만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해외 의약대 진학을 둘러싼 현실을 짚어보았다.


의대 선호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과 대입 합격선은 수능 1등부터 전국에 있는 모든 의대를 한 바퀴 돈 후 서울대 공대부터 다시 시작"이라거나 "의대에 가려면 초등학생 때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낯설지 않은 게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재 우리나라 의대 입시는 치열하다 못해 과열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상위권 성적이 요구되는 만큼 수능에서 실수 한 번으로 당락이 갈린다. 상위권 대학의 이공계열 학생들이 반수를 선언하고 의대 입시에 재도전하는 경우도 자주 보이고 의대만을 목표로 하는 장수생도 늘고 있다.

◆의대 열풍 속 해외 의대 관심 커져 = 이런 국내 의대의 입시 현실에 반해 해외 의대는 상대적으로 입학 문턱이 낮은 편이다. 김재성 SM프리메드센터 원장은 "수시든 정시든 1등급 중에서도 최상위권이 아니면 현실적으로 입학이 거의 불가능한 국내 의대에 비해 해외 의대는 2~3등급대도 입학 가능한 대학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의대 유학의 인기는 실제 여러 통계와 수치로도 입증된다. 최근 5년간 해외 의대 졸업생의 국내 의사국가시험 응시 현황을 보면 응시생 수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이들은 대개 해당 국가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면허까지 취득한 뒤 국내로 돌아와 의사 국가시험을 본 후 의사로 일하려는 경우다. 다만 최근에는 애초부터 해외 의약학계열 대학을 졸업한 후 현지 국가 또는 또 다른 국가에서 안정적인 전문직으로의 삶을 꿈꾸는 경우도 늘고 있다.

◆절반 이상이 헝가리 의대 출신 = 해외 의대를 졸업해 국내에서 의사가 되려면 일단 본인이 다닌 학교가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서 인정하는 대학이어야 한다. 의대를 졸업하고 해당 국가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에는 해외 의대 출신을 대상으로 하는 예비시험을 치른다. 예비시험 합격 후 국내 의대 출신들과 함께 보는 시험인 의사 국가시험을 통과하면 최종적으로 국내 의사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다. 해외 약대나 치대, 수의대 등 여타 의약학계열 전공 졸업생도 유사한 과정을 거쳐 국내에서 전문직으로 활동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보건복지부가 인정하는 해외 의대는 총 38개국 159개 대학이다. 가장 많은 인정 의대가 있는 나라는 미국으로 26개 의대가 이름을 올렸다. 두번째는 필리핀으로 총 18개 대학이 인정받았다. 그다음은 독일 일본 영국 러시아 순으로 보건복지부 인정 의대가 많다.

다만 최근 선호도는 헝가리가 가장 높은 편이다. 미국 의대는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아닌 이상 외국인이 곧바로 입학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외국인들은 생명과학이나 화학 등 관련 전공으로 학부 유학을 간 다음 졸업 후 의학 전문대학원 진학을 도모하는 게 일반적이다. 필리핀의 경우 1994년 이후 필리핀 정부가 자국 시민권자에게만 의사 면허를 발급해주는 것으로 정책을 바꾸면서 현재 필리핀 의대로의 유학 수요는 거의 사라졌다.

반면 헝가리는 총 4개 의대가 국내 보건복지부의 인정을 받아 인정 의대 숫자 자체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나 입학시험이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라 최근 한국 유학생의 수가 부쩍 늘고 있다. 예를 들어 부다페스트에 있는 세멜바이스 의대는 총 1317명의 인원 중 한국 학생의 수가 253명으로 전체 외국인 유학생 중 가장 많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5년간의 통계를 보면 해외 의대 졸업자 170명이 국내 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해 총 142명이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헝가리 의대 출신은 총 86명이 응시해 73명이 최종 합격했다. 해외 대학 출신으로 국내 의사 면허를 취득자 중 절반 이상이 헝가리 의대 출신이다.

◆입학 차선택이지만 졸업은 쉽지 않아 = 고용 불안정이 확대되는 사회에서 고소득 전문직으로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는 의사에 대한 직업적 선호도는 쉬이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자연히 해외 의대로의 관심 역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막연한 환상만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절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의대 공부를 모두 마치고 현지 면허를 취득하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조경호 외대부고 교사는 "헝가리 교민들에 따르면 100명의 학생이 의대에 입학해도 최종적으로 헝가리 의사 면허를 취득하는 학생은 5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며 "어느 나라나 의대 커리큘럼은 매우 강도가 높아 의대 공부를 소화할 만큼의 학습 역량과 열정, 그리고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추었는지 스스로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어 또한 장벽이 될 수 있다. 특히 비영어권 국가로 진학할 경우 영어와 해당 국가 언어까지 공부해야 한다. 수업과 시험이 모두 영어로 진행되는 의대라도 임상 실습 시에는 현지인들을 직접 진료실에서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영어는 기본으로 의약학 계열 공부는 추상적인 단어 실력을 요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단어와 원리들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토플 기준 80~90점 정도의 실력이라면 입학 시 큰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외에 학비도 고려 대상이다. 해외 의대의 경우 대부분 학비 가 우리나라보다 비쌀 뿐 아니라 해외에서의 생활비, 집세 등도 만만치 않다. 송재원 유웨이 해외사업팀 팀장은 "해외 의대 진학을 고려할 때 성적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 바로 경제적인 측면이다. 영국 의대를 예로 들면 학비만 1년에 7000만원에서 1억원 사이"라며 "비영어권은 의대 학비보다 현지어 튜터비가 더 비싼 경우도 있어 경제적 부분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졸업하기까지 7~8년이 걸리는 긴 의대 공부를 마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단, 해외 의대 유학생 유치에 적극적인 헝가리나 일본 등에서는 국가장학금으로 학비뿐 아니라 생활비 일부까지 지급하는 경우도 있으니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

김기수 기자 ·김원묘 내일교육 리포터 fascin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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