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원전오염수 인체영향·대응전략 보고서 살펴보니
"저선량방사선 영향 20년 이상 장기추적조사 필요"
정부 원전오염수 대응, 국책연구기관 제안과 반대로 진행
보고서 국제사회와 협력 강조 … 정부 국내대책 중심으로
연구결과 1년간 비공개 … 해수부장관도 "보고서 몰랐다"
정부가 원전오염수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장기간 추적조사가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를 비공개로 관리해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또 국무총리실 산하 연구기관이 주도한 원전오염수대응전략 수립 연구도 비공개로 관리한 게 밝혀졌다. 내일신문이 최근 공개로 전환된 보고서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정부 대응은 보고서 제안과 반대로 진행됐다.
11일, 12일 각각 진행된 질병관리청, 해양수산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들 보고서를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야당에서는 보고서를 비공개로 관리하면서 정부가 제대로 된 정책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게 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위험요인·건강영향 발견위해 장기간 빅데이터 분석해야 = 2021년 12월 질병청이 대한응급의학회·대한재난의학회에 의뢰한 '방사성물질이 포함된 오염수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지난해 5월 완료됐다.
방사능 재해 전문가인 최대해 차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연구책임자로 진행한 연구결과, 오염수 방출이 국민건강영향에 미치는 요인을 분석하기 위해 장기간 빅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이에 따라 전국 지역 해안 해상 연안어류 수산물 등 저준위 방사선 피폭 위험 평가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해 빅데이터 기반 영향수집평가체계 구축 등 후속연구도 제안했다.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면 6개월에서 2년 이내에 최초 오염수에 의한 영향이 발생하기 시작하고, 방류가 지속되거나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 동안 장기간 인체에 축적돼 누적 영향에 의한 유해성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보고서는 연구완료 후 비공개로 관리됐고, 국정감사를 앞두고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야당에서는 "(보고서 내용이) 처리된 오염수는 안전하다는 정부 말과 다르다"며 "(질병청이) 대통령실이나 여당의 눈치를 보며 비공개한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국외 여러 문헌을 검토한 결과 △오염수는 우리나라에 도착하기 전 미국 태평양 쪽으로 거의 건너갈 가능성이 매우 높고 △사고로 인해 세슘137 134와 방사성탄소(14C) 등의 유출은 있었으나 지속적인 방출이 없다면 검출은 거의 미미하게 나온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해양 방류로 인해 방사선에 의한 피폭선량이 현저히 늘어갈 것"이라며 "저선량 방사선의 피폭영향에 대해 더 많은 연구와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100밀리시버트(mSv) 이하의 저선량 방사선에 대해서는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상태"라며 "실험환경에서의 염색체 손상은 증명되었지만 실제 인체 내에서 발병에 이르기까지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연구팀은 연구결과와 후속연구에 대한 제언을 통해 최소 20년 이상의 장기간 추적 조사를 통한 빅데이터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원전오염수 방류에 따른 국민건강영향평가를 위해 고려해야 할 조건도 제시했다. 우선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 시 나오는 물질의 각각의 총량을 알 수 있어야 하고 △국민의 지역별 기초 방사선 조사량 결과값이 있어야 하며 △추적해야 하는 수산물과 방사성 물질이 선정돼야 한다. 또 수집된 자료를 통해 국민 1인당 방사선 누적 총량을 계산해야 한다.
이에 대해 질병청은 "연구보고서는 일본정부의 오염수 방류계획이 확정되기 전 예비조사 차원으로 수행한 것"이라며 "연구 종료 시점(지난해 5월)에도 논의와 검토 등 의사결정과정이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해 비공개한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오염수 대응 과제 셋 중 둘은 소홀 =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지난해 9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원전오염수 대응전략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두 달 뒤 KMI는 경사연에 보고서를 비공개할 것을 요청했고, 경사연은 올해 3월 비공개 결정했다.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해양수산개발원 등 경제·인문사회 부문 26개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구성돼 있다.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연구 등을 수행한다.
보고서는 '원전오염수 대응 중점 추진과제'로 △국민경제영향 대응체계 구축 △과학적 대응역량 강화 △국제공조 및 정책기반강화 등 세 가지 전략과제를 제안했다. 국민경제영향 대응체계는 수산물소비대책, 과학적 대응역량 강화는 원전오염수영향 모니터링 확대 등, 국제공조강화는 다자간 양자간 협력체계 강화 등 11개 추진과제로 구성했다.
특히 정부가 런던협약·의정서에서 해양방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국제사회와 공조는 중요한 과제였다.
보고서도 이를 명확히 했다. 원전오염수 대응 정책목표와 방향(447쪽)에서 '국민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정책목표를 명확히 하고' '과학적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우리나라 해양환경, 수산물 소비피해 등에 집중한 대응에서 탈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적시했다.
국내 피해 우려에 기초한 대응은 국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고, 유엔 지속가능발전 목표의 달성과 '공해 생물다양성'을 전 세계가 보전하기 위한 국제적 공감대와 협력을 강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해양방사능 대응 파트너십 프로그램'(가칭)을 선도적으로 도입하는 것도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또 일본과의 세계무역기구(WTO) 소송에 대비해 정부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논리에 의존하지 말고 오염수가 안전한지 여부에 대한 독자적인 검토와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원전오염수 대응전략 기초연구는 비공개로 처리됐고, 정부 정책결정 과정에 활용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정책은 국민경제영향 대응체계 등 국내 대책 중심으로 진행됐고, 특히 국제공조는 미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양방류 안전성에 대한 근거도 국제원자력기구에 의존하고 있다.
12일 해수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조승환 해수부 장관은 "(오염수 대응 정책결정에) 이 보고서는 이용하지 않았다"며 "해양수산개발원이 공개했다면 참고했겠지만 비공개 결정돼 있으니 알 수 없었다"고 밝혔다.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서귀포시)은 "(민감한 정보 등으로) 공개 안 해서 대외협상력을 높였다고 정부는 주장하지만 우리가 볼 때는 정책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게 하고 협상력을 떨어뜨렸다"며 "이에 대한 책임은 연구원과 경사연에 따로 묻겠다"고 지적했다.
여당에서도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아 소모적 논란이 생겼다며 아쉬워했다.
정희용 의원(국민의힘·경북 고령군성주군칠곡군)은 "(국경을 넘는 오염에 대한 국제판례 등의 시사점 부문은) 일본이 방류를 사전통보하면 문제가 없다고 분석한 것"이라며 "우리나라에 불리한 대외협상 내용이 있어 비공개결정했어도 국회에는 공유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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