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환경산업 언제 열리나

넘치는 플라스틱, '보틀투보틀(투명폐페트병을 다시 페트병으로 만듦)' 확대 지지부진

2023-10-23 11:08:33 게재

지난해 30만톤 출고에도 현장은 품귀, 정부 기준 통과 업체 1곳 … "혼합배출 원료 활용방안 고민"

지난해부터 투명폐페트병을 생수병 등 다시 페트병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이른바 '보틀 투 보틀(Bottle to Bottle)' 시장이 열린 것이다. 종전에는 재활용 페트로 식품용기를 만들려면 화학반응이나 가열 등의 과정을 거치거나 용기 중간층에 넣는 식으로 식품과 직접적으로 닿지 않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버려진 페트병을 잘게 잘라 세척해서 사용하는 물리적 재생 방식도 허용이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관련 규제를 완화하면서 "이번 허가를 계기로 연간 최소 10만톤(약 30%)까지 식품용기로 재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활용되는 속도는 더딘 편이다.

환경부는 고품질 재활용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투명폐페트 분리배출을 독려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주민이 투명폐페트병을 분리배출하는 장면. 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가장 큰 문제는 원료 공급 부족이다. A업체의 경우 칩을 만들기 위한 투명폐페트 물량 확보 어려움 등에 따른 계속된 적자로 경영권이 사실상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A업체는 국내 최초로 식약처로부터 식품용 재생원료(재생 페트 칩·r-PET chip) 생산을 인정받은 곳이다.

19일 A업체 관계자는 "설비 용량은 충분해도 식품용기용 재생원료를 만들기 위한 투명폐페트 양 자체가 부족해 공장이 일정 부분 놀게 됐고 매년 적자가 났다"며 "초기 설비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았는데 공장은 3년이 되도록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투명폐페트병을 식품용기 재생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추가 작업을 통해 작은 알갱이와 같은 칩으로 만들어야 한다. 화성 김아영 기자

◆"두단계 인정 과정 등 절차 까다로워" = 투명폐페트를 식품용기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두 단계 인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환경부로부터 해당 '재생 페트 플레이크(r-PET Flake)'가 식품용 재생원료 생산에 적합하다는 확인을 받아야 한다. 이후 식약처로부터 '재생 페트 칩' 원료 적합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최근 환경부로부터 식품용 재생원료 생산에 적합한 재생 페트 플레이크를 만든다고 인정받은 업체가 한 곳이 추가돼 두 곳이 됐다. 하지만 식약처로부터 투명폐페트병의 물리적 재생원료 사용 인정을 받은 업체는 여전히 한곳에 불과하다.

19일 식약처 관계자는 "물리적 재생원료로 사용 인정을 받았다고 영구적으로 허가가 되는 건 아니다"라며 "3년 유효기간을 둔 환경부처럼 재발급 기간을 만들 예정이고 해당 규정을 법에 넣을지 고시에 담을지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환경부와 식약처 등은 식품용기용 투명폐페트 원료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5월 관련 업계와 '투명페트병 순환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환경부와 식약처는 식품용기 안전성과 위생 등에 문제가 없도록 재활용 시설과 재생원료의 품질에 대한 기준을 만들었다. 투명페트병이 다른 플라스틱과 섞이지 않도록 수집·운반돼야 하고 선별 업체는 별도로 보관·압축·선별한 투명페트병만 사용해야 한다.

13일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품질 기준만 통과하면 되는데, 국내는 시설 기준까지 적용하기 때문에 절차가 까다롭다"며 "정부가 시설 개선을 위해 지원을 해준다 해도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쉽게 뛰어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별도 배출이 아닌 혼합 배출된 투명폐페트병도 식품용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관련 재활용 시장이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다. 재처리 과정에서 각종 오염물질들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는다면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23일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2022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대상 투명페트병 전체 출고·수입량은 약 29만6308톤이다. 투명폐페트는 연간 20만~30만톤이 배출된다. 이 중 분리배출 돼서 식품용기용으로 재활용이 가능한 양은 약 2만~3만톤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업체에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EPR은 제품 생산자나 포장재를 이용한 제품의 생산자에게 그 제품이나 포장재 폐기물에 대해 일정량의 재활용의무를 부여해 재활용하게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재활용에 소요되는 비용 이상의 재활용 부과금을 생산자에게 부과하는 제도다.

19일 환경부 관계자는 "혼합배출된 투명폐페트병도 잘만 가공을 하면 식품용기 재생원료 등 고품질 재활용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다"며 "혼합배출된 투명폐페트로 식품용기 재생원료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업체가 있다면 최소한의 시설기준과 운영관리 방식 등을 충족시키면 허가를 해주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식약처 기준은 충족시키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해결되면 추가 공급량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독일은 재생 페트를 새 페트병 만드는데 제일 많이 써 = 독일 포장재 시장 조사 기관인 GVM에 다르면 독일은 페트를 재활용한 'r-PET'를 새 페트병 제작에 제일 많이 사용한다(34.0%, 2015년 기준). 이어 △필름 등 플라스틱 제품(27.0%) △섬유제품(22.6%) △기타제품(16.4%) 등의 순이다.

독일 내 대형할인매장 등에 가보면 보증금자판기(RVM)에 직접 소비자들이 페트를 반납하고 보증금을 받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재활용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독일의 경우 페트 캔 유리병 등에 '판트(Pfand)' 제도를 도입 중이다.

판트는 일종의 빈용기보증금제도다. 페트병에 든 음료수를 구입할 때 출고가격과는 별도의 금액을 제품의 가격에 포함시켜(보증금) 판매한 뒤 용기를 반환할 때 보증금을 돌려준다. 2006년 모든 소매점에 판매한 캔 유리병 페트 등 1회용 용기를 회수하도록 의무화했다. 1990년대에는 음료수 용기 중 유리병 비중이 70%에 달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페트 점유율이 높아짐에 따라 페트병에도 보증금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의 '1회용 포장재 재활용 활성화를 위한 보증금제도 도입 방안' 보고서에는 빈용기보증금제도의 대상품목을 '반복사용이 가능한 유리용기'에서 'EPR 대상 포장용기'인 합성수지포장재 전반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빈용기보증금제도 확대 대상을 △캔(철·알루미늄) △1회용 유리병 △종이팩 △페트병이 적합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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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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