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오세훈·김동연의 중도 경쟁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동연 경기지사의 공통점은 자신이 속한 정당의 비주류 수도권 단체장이라는 점이다. 차기 대선주자로도 꼽히는 두 사람은 실리에도 능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극단인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그만큼 '중도 지향성'이 강하다.
중도성향의 표는 대선과 총선 같은 전국적 선거에서 승패를 가른다. 2030과 중도성향의 유권자는 정쟁이 아닌 정책에 따라 움직인다. '태극기부대'와 '개딸'에 기댄 중앙정치와 달리 두 사람이 정책경쟁을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책경쟁 바람직하지만 정치싸움으로 변질돼선 안돼
오세훈 시장은 환경운동과 정치개혁법안 등으로 중도 이미지를 다져왔다. 그의 이미지는 강경보수와는 결이 다르다. 그런 그가 민선 8기 들어 중도 지향성을 더욱 강화했다. 중도층을 선점해야 길이 보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정책이 '약자와의 동행'이다. 다소 추상적이지만 동행버스 등으로 구체화되면서 정책의 성격이 또렷해졌다. 동행버스는 행정 범위로 보면 서울시민이 아닌 지옥철 등으로 고통받는 경기·인천 주민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역발상이다. 정치권이나 수도권 시민들은 '울림이 있는 정책'이라고 높게 평가한다. 그는 정치를 하는 이유를 '약자와의 동행'에서 찾는다.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보수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연 지사가 걸어온 길도 중도와 가깝다. 그의 이력을 더듬어보면 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노무현정부와 박근혜정부, 문재인정부를 거치는 동안 이념보다 시장을 중시하는 '실사구시형 리더십'을 다듬었다. 진보진영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중도 성향의 정치인으로 평가한다. 여의도정치와 거리를 둔 그가 정치를 시작하면서 던진 화두는 '시장을 알고 경제에 유능한 진보'다. 김 지사의 핵심정책인 '기회소득'이나 '청년사다리정책'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등은 이념보다 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정책으로 꼽힌다.
그런 두사람이 수도권 교통정책에서 만났다. 오 시장이 "대중교통 무제한 정기 이용권인 '기후동행카드'를 서울부터 시작하겠다"면서 "경기·인천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말로 김 지사를 자극했다. '기후동행카드'는 대중교통 무제한 정기이용권이다. 월 6만5000원이면 서울지역의 버스와 지하철 공공자전거까지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김 지사가 서울시를 따라가는 대신 국토교통부의 K패스와 연계해 교통비를 환급해주는 'The 경기패스'로 이를 맞받았다. 수도권 통합 교통카드 시행은 어렵게 됐다.
만약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 The 경기패스까지 동시에 시행되면 수도권 교통정책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경기·인천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 하는 730만명은 '출근 때는 경기패스, 퇴근 때는 기후동행카드'를 써야 한다. 국민의 삶을 어루만지겠다는 정책이 자신의 이해를 앞세운 정쟁이 되는 순간이다. 또한 '약자와의 동행'을 얘기하면서 상대적으로 교통약자인 경기·인천 주민들을 기후동행카드에서 배제하는 모순이 된다.
두사람이 정책경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싸움으로 변질되어선 곤란하다. 수도권 대중교통 같은 민생문제에서는 상생·협력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정쟁이 생기면 협치의 가능성이 옅어진다. 오세훈이 보는 세상과 김동연이 보는 세상이 달라서는 안된다. 국민이 중심인 세상 말이다. 이게 서로 다르다면 공정과 상식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룰이 같아야 경쟁이 공정할 수 있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구성원들간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공동선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좋은 정책뿐 아니라 상생·협력 잘해야 중도 마음 얻을 것
여야 모두 강성지지층만으로는 총선과 대선에서 이기기 어렵다. 중도층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했지만 최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는 민주당 손을 들어줬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으려면 좋은 정책뿐 아니라 상생·협력을 잘해야 한다. 중도층이 많은 2030은 진보성향인 4050이나 보수성향의 60대 이상 세대와는 달리 탈진영·탈이념적 성향을 보이는 세대다. 협치에 능한 사람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해야 대한민국 정치의 수준이 한 차원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