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중국 반도체 굴기와 자연과학 역량

2023-11-02 11:55:56 게재

10월 17일(현지시간) 미국은 중국 첨단반도체산업을 억제하기 위한 초강력 수출 통제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작성했던 통제 초안을 꼼꼼하게 보강했다. 수출금지 품목을 저성능 반도체까지 확대하고 수출제한 국가와 기업 목록을 늘려 첨단반도체가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는 모든 경로를 원천봉쇄하겠다는 방침이다.

중국의 첨단반도체 자체 개발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도 확실히 했다. 중국 화웨이가 7나노미터(nm=10억분의 1m)급 반도체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미국이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허용했던 네덜란드 ASML의 심자외선(DUV)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DUV 장비는 ASML의 극자외선(EUV) 장비보다 성능이 낮아 7nm급 반도체 생산에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화웨이의 7nm급 반도체 제조에 DUV 장비가 핵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칭화대, '입자가속기' 활용해 새로운 광원 만들어

하지만 미국 통제 방안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 따르면 미국과 동맹국들의 수출규제 핵심내용은 상당히 다르다. 미국 수출통제기관인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특정유형의 기술판매가 금지된 중국 기업 등 수천곳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이를 공개하고 있다. 반면 일본에는 그같은 기업 목록이 없다. 대신 수출허가가 필요한 23개 특정유형의 제품 목록을 발표했다. 게다가 중국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도 않고 있다. 네덜란드의 규제 역시 '국가중립적'이며 소수 제품에만 적용된다.

제재규정 집행은 더욱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수출통제 제도를 집행할 수 있는 역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직원수가 600명 미만이고 연간예산은 2억달러 정도다. 대중국 제재를 글로벌 차원에서 집행하기엔 인원과 예산 모두 부족하다. 특히 아시아와 유럽의 동맹국들은 그보다 훨씬 적은 인원과 예산으로 운영된다.

각국의 집행기관들은 수출기업들이 해외 판매와 관련한 허가를 요청할 경우 이를 평가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특정장비가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이해가 필요한데, 이 장비가 중국에 수출된 뒤 실제로 어떻게 사용될지 알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동맹국 관련기관들 상당수는 제품의 실제 최종용도와 관련해 수출기업의 정보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통제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자립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칭화대 연구진이 '입자가속기'를 활용해 새로운 광원을 만들어내는 성과를 거뒀다고 보도했다. 입자가속기란 전자나 양성자와 같이 전기를 띤 입자를 강력한 전기장이나 자기장 속에서 가속시켜 큰 운동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장치다.

입자가속기를 활용하면 EUV 장비보다 저비용으로 몇배 높은 출력의 새로운 광원을 발생시켜 반도체 제조와 과학 연구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칭화대 연구진의 주장이다. 이 혁신은 반도체 양산을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2nm 이하 초미세 반도체 생산공정에서 중국이 선도역할을 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윤석열정부, 중국 자연과학 발전상 직시해야

중국이 미국의 제재를 딛고 '반도체 굴기'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미국마저 넘은 세계 최고의 '자연과학 연구역량'에 기초한다.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가 6월 발표한 '네이처 인덱스 셰어'에서 지난해 중국의 자연과학 연구 영향력은 미국을 추월해 1위로 올라섰다. 중국은 전년 대비 21.4% 증가한 1만9373점을 받았다. 미국은 전년 대비 6.9% 감소한 1만7610점을 받아 2위로 내려앉았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중국 논문의 '양'은 2017년 미국을 앞섰는데 '질'까지 뛰어넘은 것은 이번에 처음이다.

윤석열정부는 '연구비 부정'을 이유로 내년 국가 R&D 예산을 올해 대비 16.6% 삭감했다.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들은 큰 상처를 받았다. 기초과학을 우대하는 국민정서가 조성돼야 한다. 의사에 버금가는 인센티브도 필요하다. 중국 반도체산업 생태계를 이끌고 있는 화웨이의 런정페이 회장은 "비축할 것은 달러가 아니라 인재"라며 청년과학자를 강조했다. 중국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핵심 대목이다. 윤석열정부는 이념의 색안경을 벗고 중국의 자연과학과 최첨단기술 발전상을 직시해야 한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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