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바보야, 문제는 권력의 정치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는 상전벽해 같다.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며 야당 지지층까지 공산전체주의로 몰아붙였던 보선 직전까지의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은 늘 옳다. 이념논쟁을 멈추고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습관성 전 정권 탓'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아직 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갤럽 정례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별 변동이 없다. 보선 참패 영향으로 30%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이 제자리를 찾은 게 변화라면 변화다. 그 사이에 윤 대통령은 중동을 방문해 세일즈 외교를 펼쳤고, 연일 민생현장을 찾지만 지지율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왜 그럴까. 지난 1년 반 동안 윤 대통령에 대한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서인가. 아니면 보선 후 대통령의 변신이 뜬금없다고 여겨서인가. 그것도 아니면 권력의 정치라는 윤 대통령 통치의 본질을 국민이 꿰고 있어서인가.
'겸손한 카리스마' 네루에게서 배워야 할 것들
주지하다시피 강서구청장 보선은 '대통령의, 대통령에 의한 선거'였다. 그리고 '대통령 리스크'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보여준 선거였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의 모습은 정말 참패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국민의당 김기현 간판은 그대로 유지됐다. 보선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지 19일밖에 안된 친윤 핵심은 총선 인재영입위원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인요한 혁신위가 출범해 이런저런 당의 변화를 주문하지만 대통령과의 관계정립에 대해서는 선을 긋는다.
윤 대통령 또한 중동 순방에서 돌아오는 날 바로 박정희 추도식에 참여했다. 반면 유가족들 요청에도 이태원참사 1주년 추도식에는 불참하고 '나홀로 추도예배'로 대신했다. 국회에서 제1야당 대표와 악수를 나눴지만 그 후로도 협치에 대한 일언반구의 언질도 없다. 그러니 국민들이 대통령의 변화에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까.
아니 여당 내부는 물론 윤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조차도 "대통령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대통령실 일각에서는 대통령도 상황이 엄중하다고 느끼면 태도를 바꾼다며 대선 때 이준석 대표와 포옹한 사례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윤 대통령은 후보신분이었고 지금은 모든 것을 가진 권력자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권력은 원래부터 겸손의 친구가 아니었다.
인도의 초대 총리 네루는 권력에 도취될까봐 늘 스스로에게 날을 세웠던 정치인이다. 그는 때로는 '차나캬'라는 가명으로 언론에 자신을 비난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자와할랄 네루는 독재자가 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가졌다. 엄청난 인기, 명확한 목적을 향한 강력한 의지, 행동력, 자부심 … 타인에 대한 엄격함, 그리고 허약하고 비능률적인 사람들을 약간 경멸하는 사람."(존 킨 '민주주의의 삶과 죽음'에서 재인용)
네루가 자신의 위험요소로 지적한 것 중 '엄청난 인기'를 빼고는 대부분 윤 대통령에게도 어느 정도 해당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단 한번이라도 네루처럼 권력에 대해 경계심을 품어본 적이 있나 모르겠다.
네루가 아직도 인도인들의 마음속에 소중한 정치인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가 독립영웅이자 건국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넘어 '겸손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였기 때문이라고 호주 출신 정치학자 존 킨은 지적한다.
우리도 늘 권력을 경계하는 그런 지도자를 갖고 싶다
권력의 변신은 말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누누이 지적했듯이 역대 대통령의 실패는 '감당해야 할 권력을 경계하기보다 향유하는데 급급한 데' 기인한다.
보선 참패 한달이 지났지만, 참모들 중 누구도 '아니올시다' 하지 못했던 용산 대통령실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얘길 아직 듣지 못했다. 여당에서도 내놓은 자식 취급하는 몇몇을 빼고는 대통령에 대한 지적은 여전히 금기어다. 혁신위가 출범해 윤핵관과 다선의원을 향해 포문을 열고 있지만 대통령 관련해서는 지레 벽을 친다. 대통령의 상전벽해 같은 변신에도 지지율이 꼼짝 않는 이유다.
네루는 스스로를 비판한 글에서 "그의 오만은 이미 엄청난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황제를 원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는 1957년 총선에서 연방하원 75%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둔 후에도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쯤에나 권력의 정치를 경계하고 겸손을 자산으로 삼는 그런 지도자를 갖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