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고 정주영 회장의 '빈대정신'
2023-11-10 11:51:23 게재
오래전 박멸된 것으로 알았던 빈대가 최근 전국 각지에서 출몰,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숙박업소와 지하철은 물론이고 우리집에서도 발견되지 않을까 겁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럽과 미국 사정도 심상치 않다. 특히 내년 여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는 프랑스는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러 학교가 빈대 때문에 휴교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으로 해외여행이 부쩍 늘어나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중고가구의 유통이 증가한 것, 그리고 이상기후가 원인이라고 한다.
빈대는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에 지구상에 출현, 인류보다 훨씬 먼저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생명력이 질긴 빈대는 현재 세계적으로 75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사람을 비롯한 포유류와 조류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 주로 침구류나 침대 등의 틈새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베드버그(bed-bug)라고 불린다. 모기처럼 감염병을 옮기지는 않지만 날이 어두워지면 활동을 시작, 수면을 방해하고 가려워 긁다 보면 2차 피부감염으로 이어지는 등 성가시기 그지없다.
혼신을 다해 노력하면 목표 달성할 수 있다는 교훈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박멸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른 데다 웬만한 살충제로는 박멸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한번 소독을 했다고 해도 1~2주 뒤 알에서 부화한 빈대가 다시 번식하기 때문에 주기적인 소독이 필요하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운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얼마나 시달렸으면 집까지 태웠겠는가. 그래서 '집 다 타도 빈대가 죽으니 좋다'라는 말도 있다.
유럽이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금수제재 준비에 들어가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유럽에서 번지는 빈대가 러시아로 유입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빈정댔다. 그는 "서방측이 바늘이나 드라이버 수출까지 금지하려는 등 대 러시아 제재에 광분하고 있다"면서 "적게 들어오면 적게 들어올수록 유럽에서 빈대가 수입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더 좋다"고 추가제재 착수를 비난했다.
빈대와 인연이 깊은 사람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다. 정 회장은 미물에 불과한 빈대에게서 기업가정신을 배웠다. 젊은 시절 인천부두에서 막노동할 때 그곳 노동자 합숙소는 그야말로 빈대지옥이었다. 고된 육체노동으로 떠메고 가도 모를 정도인데도 빈대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하루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밥상 위에 올라가 잤다. 그러나 잠시 뜸한가 싶더니 이내 밥상 다리로 기어 올라와 물어뜯었다.
이번에는 머리를 짜내 양재기 네 개에 물을 담은 뒤 밥상 다리 넷에 하나씩 담궈놓고 잤다. 다행스럽게도 양재기 물 때문에 빈대가 밥상에 올라올 수 없어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웬걸 사흘쯤 지나자 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빈대들이 어떻게 양재기 물을 피해 올라올 수 있었는지 불을 켜고 살펴보니 빈대들이 벽을 타고 천정으로 올라간 다음, 밥상 위로 뚝 떨어지더라는 것이다.
그는 빈대의 이같은 기발한 행동을 보고 혼신을 다해 노력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커다란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이 교훈이 바로 정 회장의 '빈대정신'이다. 그는 부하직원들이 난관에 봉착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체념의 말을 할 때마다 이 정신을 떠올리며 "자네 해 봤어? 해보고 안된다고 하는 거야?"하며 호통을 쳤다.
출구 보이지 않는 한국경제, 새삼 그리워지는 빈대정신
우리 경제의 앞날은 무척 암울하다. 잠재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날이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경제가 선진화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성장률이 내려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이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보다 낮고 내년 잠재성장률도 미국보다 낮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문제다.
작년 12월 골드만삭스가 내놓은 보고서에서 인도네시아와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이집트 필리핀 등은 2075년 세계 15대 경제대국에 포함됐으나 한국은 빠졌다. 이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노동과 투자가 갈수록 부진해지고 있고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생산성마저 미국 독일 영국 등 선진국에 한참 못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우리 경제는 중국의 경기회복 지연과 우크라이나전쟁에 이은 이스라엘-하마스전쟁,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포퓰리즘 행보 등으로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새삼 정 회장의 빈대정신이 그리워진다.
빈대는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에 지구상에 출현, 인류보다 훨씬 먼저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생명력이 질긴 빈대는 현재 세계적으로 75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사람을 비롯한 포유류와 조류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 주로 침구류나 침대 등의 틈새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베드버그(bed-bug)라고 불린다. 모기처럼 감염병을 옮기지는 않지만 날이 어두워지면 활동을 시작, 수면을 방해하고 가려워 긁다 보면 2차 피부감염으로 이어지는 등 성가시기 그지없다.
혼신을 다해 노력하면 목표 달성할 수 있다는 교훈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박멸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른 데다 웬만한 살충제로는 박멸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한번 소독을 했다고 해도 1~2주 뒤 알에서 부화한 빈대가 다시 번식하기 때문에 주기적인 소독이 필요하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운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얼마나 시달렸으면 집까지 태웠겠는가. 그래서 '집 다 타도 빈대가 죽으니 좋다'라는 말도 있다.
유럽이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금수제재 준비에 들어가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유럽에서 번지는 빈대가 러시아로 유입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빈정댔다. 그는 "서방측이 바늘이나 드라이버 수출까지 금지하려는 등 대 러시아 제재에 광분하고 있다"면서 "적게 들어오면 적게 들어올수록 유럽에서 빈대가 수입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더 좋다"고 추가제재 착수를 비난했다.
빈대와 인연이 깊은 사람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다. 정 회장은 미물에 불과한 빈대에게서 기업가정신을 배웠다. 젊은 시절 인천부두에서 막노동할 때 그곳 노동자 합숙소는 그야말로 빈대지옥이었다. 고된 육체노동으로 떠메고 가도 모를 정도인데도 빈대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하루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밥상 위에 올라가 잤다. 그러나 잠시 뜸한가 싶더니 이내 밥상 다리로 기어 올라와 물어뜯었다.
이번에는 머리를 짜내 양재기 네 개에 물을 담은 뒤 밥상 다리 넷에 하나씩 담궈놓고 잤다. 다행스럽게도 양재기 물 때문에 빈대가 밥상에 올라올 수 없어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웬걸 사흘쯤 지나자 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빈대들이 어떻게 양재기 물을 피해 올라올 수 있었는지 불을 켜고 살펴보니 빈대들이 벽을 타고 천정으로 올라간 다음, 밥상 위로 뚝 떨어지더라는 것이다.
그는 빈대의 이같은 기발한 행동을 보고 혼신을 다해 노력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커다란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이 교훈이 바로 정 회장의 '빈대정신'이다. 그는 부하직원들이 난관에 봉착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체념의 말을 할 때마다 이 정신을 떠올리며 "자네 해 봤어? 해보고 안된다고 하는 거야?"하며 호통을 쳤다.
출구 보이지 않는 한국경제, 새삼 그리워지는 빈대정신
우리 경제의 앞날은 무척 암울하다. 잠재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날이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경제가 선진화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성장률이 내려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이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보다 낮고 내년 잠재성장률도 미국보다 낮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문제다.
작년 12월 골드만삭스가 내놓은 보고서에서 인도네시아와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이집트 필리핀 등은 2075년 세계 15대 경제대국에 포함됐으나 한국은 빠졌다. 이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노동과 투자가 갈수록 부진해지고 있고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생산성마저 미국 독일 영국 등 선진국에 한참 못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우리 경제는 중국의 경기회복 지연과 우크라이나전쟁에 이은 이스라엘-하마스전쟁,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포퓰리즘 행보 등으로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새삼 정 회장의 빈대정신이 그리워진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