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강국'이라더니 … 행정전산망 총체적 부실 드러나
정부 행정망 올해에만 3번째 먹통
사흘 지나도록 정확한 원인 못찾아
지자체 "재난수준 대응매뉴얼 필요"
사상 초유의 민원서비스 중단사태를 초래한 정부의 행정전산망 장애가 사흘만에 복구됐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대응에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고, 관리 주체인 행정안전부는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20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사태로 '디지털 재난'에 대한 대응능력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 우선 장애 발생 사흘이 지나도록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장애가 발생한 시점은 금요일인 17일 오전 8시 46분. 정부는 새올행정정보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사흘째인 19일이 되어서야 장애 발생원인이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장비 중 L4스위치(트래픽을 분산해 속도를 높이는 장치)에 문제가 있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행안부는 장애가 발생한 지점(장비)은 찾아냈지만 장애를 일으킨 이유까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이 장비가 노후했거나 해킹 등 다른 외부 공격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도 현재 동일한 장비 수십대를 운영하고 있다. 서보람 행안부 디지털정부실장은 "L4 스위치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찾아냈는데, 그 안에 어떤 부분이 실제로 문제를 일으켰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면밀히 조사해야 확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백업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도 심각한 문제다. 전문가들은 보안시스템의 기본 중 기본이 백업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10월 '카카오 먹통' 사태가 일어나자 정부가 재발방지를 위해 '카카오 먹통 방지법'까지 만들었는데, 이 법 역시 백업시스템을 법적으로 의무화한 것이 골자다. 그런데 정작 이번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 때는 백업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서보람 실장은 "장비를 이중화해 운영하고 있지만 당일에는 이중화돼 있는 두개의 장비가 순차적으로 계속 문제를 일으켜 결국 장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행안부가 국민들에게 제때 상황을 안내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실제 이번 사태가 디지털 재난에 가까웠지만 행안부는 국민들에게 그 흔한 재난문자 한번 발송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카카오톡 서비스 불통 때 당시 정부는 복구상황 등을 알리는 재난문자를 3차례나 발송한 바 있다. 행안부는 또 일선 지자체에 사고 발생 8시간 뒤인 오후 5시가 돼서야 지자체에 민원서류 수기접수 등을 안내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현장 지자체 공무원들에게조차 제때 상황을 설명하지 않은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법원전산망 마비와 지난 6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작동 오류에 이어 올해 들어서만 세번째다. 재난 상황이 반복되지만 정부가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디지털강국 위상도 흔들리게 됐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날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한국의 '디지털정부'를 홍보하기 위해 해외 출장 중이었다. 지난 13일부터 8일간 포르투갈과 미국을 방문 중인데 지난 14일(현지지각) 포르투갈에서 열린 디지털네이션스 장관회의에 참석했고, 16일(현지시각)에도 미국 워싱턴DC에서 악셀 판 트로젠부르크 세계은행 사무총장과 디지털정부 협력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주무부처 장관이 해외에서 우리 디지털정부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사이 국내에선 행정전산망이 마비되는 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고기동 행안부 차관은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보완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이를 위해 민간전문가와 정부 지자체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지방행정전산서비스 개편TF를 구성해 종합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와 지자체들은 재발방지 대책만큼이나 '디지털 재난'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정부가 디지털플랫폼정부를 표방하고 있을 만큼 점점 전산화되어가고 있다. 시스템 오류에 따른 혼란과 해킹 등으로 인한 개인정보 노출 위험 등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이번 사태와 같은 '통신장애'를 '재난'으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디지털 재난으로 인한 혼란은 충분히 경험했고 또 예측 가능하다"며 "철저한 대비와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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