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국 상업용 부동산발 유동성 위기

2024-02-28 13:00:01 게재

지난해 3월 10일 고금리 여파로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문을 닫았는데 올해 또다시 ‘유동성 위기설’이 퍼지고 있다. 이번엔 고금리와 함께 상업용 부동산이 진앙지로 지목된다. 첫번째 충격을 받은 곳이 뉴욕커뮤니티뱅코프(NYCB)다. 지난달 31일 발표한 2023년 4분기 실적에서 NYCB는 2억5000만달러가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 분기 배당금을 약속한 17센트에서 5센트로 줄이면서 주가는 하루 새 40% 가까이 폭락했다. 이후 신용평가사 피치는 NYCB의 신용등급을 낮췄고 무디스는 아예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분류했다.

NYCB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원인은 상업용 부동산 대출에 있었다. NYCB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에서 1억8500만달러의 부실을 떨어냈다. 대손충당금으로 5억5200만달러를 쌓았는데 이는 직전 분기 6200만달러의 9배에 달하는 규모다.

상업용 부동산 가격폭락에 중소은행 자산건전성 취약해져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에 따르면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 기준 19.6%이며 올해 19.8%까지 이를 전망이다. 상업용 부동산 중 특히 오피스빌딩 공실률이 높은 것은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 문화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추가 하락하고 있다. 수익성이 악화된 부동산들이 값싼 매물로 나오고 있어서다. MSCI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기술기업 사이에서 인기 있는 샌프란시스코 소재 오피스빌딩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39.9% 폭락하며 하락률 1위에 올랐다. 맨해튼 보스턴도 각각 15.4%, 13.2% 떨어졌다. 부동산 주인들이 대출 만기 때 빚을 갚지 못할 우려가 커진 이유다. 최근 미국 부동산시장 정보업체인 그린 스트리트(Green Street)는 오피스빌딩 평가가치가 여전히 높아 올해 최대 15% 추가 상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미 금융기관 중 은행이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50%를 보유하고 있다. 그중 70%가 중소은행에 집중되어 있다. 미국 소형은행들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2023년에도 꾸준히 늘어 2조달러 수준에 육박했다. 이는 해당 은행 자산의 30% 수준으로 자산건전성이 상당히 취약해졌음을 의미한다. 대형은행들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1조달러, 자산의 6%대인 것에 비해 심각한 상태다.

내년까지 1조달러가 넘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만기가 돌아온다는 분석이 있다. 상업용 부동산 위기의 충격은 중소은행에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부실이 현실화되면 ‘금융시스템 위기’로 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번 위기론은 과장됐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대형은행들은 고금리시기를 거치면서 엄청난 이익을 올렸다. 미국 4대 금융그룹인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웰스파고의 2023년 당기순이익은 1044억달러를 기록했다. 대형은행이 상업용 부동산 대출 손실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소형은행 중 일부가 위험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위기가 독일 스위스 및 일본 등 주요국 은행들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금융사의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 규모는 56조4000억원에 이른다. 이중 25%인 14조원의 만기가 올해 돌아온다. 이번달 기준 부실 발생 규모는 2조4600억원으로 이는 지난해 6월보다 2배 가까이 불어난 수치다. 게다가 지난해 말 기준 해외부동산 펀드 설정액 규모는 77조2000억원이나 된다. 해외부동산 펀드의 주요 투자자들은 연기금 공제회 보험사 증권사 등 기관투자자지만 개인에게 판매된 해외부동산 공모펀드의 규모도 상당하다.

2008년 금융위기 수준 아니지만 수년간 고통 지속될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 부동산PF(Project Financing)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202.6조원(직접투자·대출 160.5조원+유동화증권 42.1조원,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다. 국내외 부동산 부실 투자의 절반을 건진다고 해도 100조원 이상 날아갈 수 있다.

국내외 부동산 부실 문제가 한국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투자기관들은 ‘선택과 집중’을 결단해야 한다. 우선 투자부동산에 대한 옥석가리기를 해야 한다. 부실자산은 신속하게 정리하고 우량자산에는 추가 투자조치를 취해야 한다.

최근 불거진 미국 중소은행 ‘유동성 위기설’이 2008년 금융위기 수준과 거리가 멀다고는 하지만, 서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미국 경제에 부담을 줄 것이다. 부동산 대출의 만기가 5년 또는 10년인 것을 고려하면 이 같은 고통은 수년간 지속될 수 있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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