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뉴욕 성 패트릭 데이 행진과 성소수자 운동
다양한 인종 민족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한데 모여 다양성과 포용성에 기반한 삶과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뉴욕에서는 해마다 다양한 문화를 기념하는 축제와 행진이 열린다. 그중 가장 역사가 길고 큰 규모의 행진은 3월 17일 성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에 벌어지는 퍼레이드다. 성 패트릭은 5세기에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3월 17일은 그를 기리는 가톨릭 축일이다. 동시에 종교적 의미를 넘어 온갖 역경을 딛고 미국에 정착한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의 자부심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미국 곳곳에서 성 패트릭 데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진과 축제가 열린다.
시카고는 성 패트릭 날을 맞아 도시를 가로지르는 시카고강을 아일랜드 상징색 초록으로 물들인다. 아일랜드계 후손이 전체 인구의 약 1/4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보스턴에서도 성 패트릭 데이는 도시 전체의 큰 축제다.
1762년부터 시작된 대중적 축제
이렇듯 미국의 여러 곳에서 기념되는 날이지만 그중 가장 규모가 큰 퍼레이드는 바로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다. 뉴욕의 성 패트릭 데이 행진은 1762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수가 많아지고 이민 초기 차별 받던 집단에서 점차 정치적 입지가 커지면서 성 패트릭의 날 퍼레이드는 아일랜드계뿐 아니라 모든 미국인들이 함께 즐기는 대중적인 축제로 자리잡았다.
해마다 3월이면 녹색 베이글, 녹색 시리얼 등이 진열대에 등장해 성 패트릭 데이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린다. 아이리쉬 펍에서 마시는 초록 맥주도 빠질 수 없는 축제 아이템이다. 뉴욕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성 패트릭 데이를 기념해 밤에 초록색 조명을 밝힌다.
263회를 맞은 올해 행진에는 아일랜드 전통 백파이프 연주자, 전통무용인 스텝댄스 무용수, 경찰, 소방대원, 미 전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참가하는 다양한 학생 밴드 등 약 25만명이 행진에 참여했다. 행진을 보기 위해 5번가에 모여든 인파는 200만명으로 집계됐다. 퍼레이드는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고 퍼레이드 웹사이트를 통해 라이브스트리밍도 되었다.
이렇게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 잡은 성 패트릭의 날 퍼레이드의 오늘이 있기까지 모든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성소수자들의 행진 참여 여부를 두고 오랫동안 갈등과 진통이 있었다. 1991년 아일랜드계 성소수자들이 행진에 참여하겠다고 처음 신청을 했지만 주최측은 이들의 참여를 거부했다. 가톨릭 교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지금과 다른 1990년대 초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당시 뉴욕시장 딘킨스는 협상안으로 성소수자들을 게스트로 초청해 시장과 함께 행진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성소수자가 포함된 대열은 거의 행진 내내 야유를 받았다. 일부 과격한 시민들은 심지어 이들에게 맥주병을 던지고 성소수자 비하 표현을 외치기도 했다. 최초의 흑인 뉴욕시장이던 딘킨스 시장은 이 경험을 1960년대 흑인 참정권을 요구하면서 벌인 앨라배마주 ‘피의 일요일’ 행진에 비유했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굴하지 않고 계속 동등한 참여를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체포되기도 했다.
성수소자 참여까지는 오랜 시간 걸려 20여년 이상 계속된 성소수자들의 투쟁은 드디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성소수자를 더 포용하는 달라진 사회 분위기도 한몫을 했다. 2004년 매사추세츠주를 시작으로 많은 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고 있었다. 마침내 2011년 뉴욕주도 매사추세츠 뉴햄프셔 코네티컷 아이오와 버몬트에 이어 동성결혼을 인정한 6번째 주가 되었다.
드블라지오 뉴욕시장은 2014년 취임 초부터 성소수자가 배제된 행진을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여러 정치인들도 이에 동조했다. 또한 성소수자들 배제를 철회하라는 기업의 압력도 점차 커졌다. 행진의 최대 스폰서인 기네스 맥주회사가 2014년 성소수자 배제에 항의해 행사 지원을 철회한 후 다른 기업들도 잇달아 ‘성소수자를 계속 행진에서 배제한다면 행사 지원을 철회하겠다’고 통보했다.
퍼레이드를 매년 중계하는 NBC 유니버설사도 퍼레이드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면서 주최측에 압력을 넣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침내 2014년 9월 퍼레이드 주최측은 입장을 바꾸었다. 이로써 2015년부터 아일랜드계 성소수자들도 성 패트릭 데이 행진에 당당히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처럼 같은 해 5월 아일랜드는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첫번째 국가가 되었다. 당시 아일랜드의 노동당 당수는 “평등에 대한 아일랜드 국민의 매우 강력한 선언”이라며 국민투표 결과를 반겼다. 인구의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는 서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나라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레오 바라드카르 당시 보건부장관이 이 역사적인 투표 결과를 두고 “국민투표라기보다는 시민혁명같다”고 표현한 것은 과언이 아니었다.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그는 2017년 불과 38세의 나이에 아일랜드의 총리가 되었다.
맨해튼뿐 아니라 뉴욕의 다른 구(區)에서도 성 패트릭 데이 행진이 열리는데 지금까지 유일하게 성소수자 참여를 계속 거부하고 있는 곳이 바로 스태튼 아일랜드다. 맨해튼 남쪽에 위치한 스태튼 아일랜드는 뉴욕시 5개 행정구역 중 인구가 가장 적고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다. 민주당이 강세인 다른 지역과 달리 스태튼 아일랜드는 뉴욕시에서 유일하게 공화당 우세 지역이다.
뉴욕시 보수지역도 올해부터 행진 허용
스태튼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 데이 행사 주최측은 빗발치는 압력과 비판에도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우리의 퍼레이드는 아일랜드의 문화유산을 위한 것”이라며 퍼레이드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거나 “정치적 또는 성적 정체성 어젠다를 홍보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주최측과의 갈등은 점점 커져 최근에는 행진을 하던 시의원이 무지개 배지를 달고 있다는 이유로 행진 중 대열에서 제외되는 소동이 나기도 했다.
취임 초부터 스태튼 아일랜드 행진 참여를 보이콧 해오던 아담스 뉴욕시장은 지난달 전통적인 주최측의 행사와 별도로 성소수자들도 참여하는 대안 퍼레이드를 허가했다. 그리하여 3월 17일 스태튼 아일랜드에서도 마침내 성소수자들이 깃발을 들고 참여하는 성 페트릭 데이 행진이 열렸다.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밝힌 한 퍼레이드 참가자는 참가 이유를 묻자 “아일랜드인인 것이 자랑스럽고 동성애자인 것도 자랑스럽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다른 참가자는 “사랑은 사랑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이 지구상의 인간이다. 모두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역사적인 현장에 참여한 또 다른 성소수자는 올해 65세의 베테랑 성소수자 활동가 브랜든 페이다.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인 그는 1991년 맨해튼 퍼레이드에 딘킨스 시장과 함께 행진을 했던 사람 중 하나다. 당시 그가 행진에 참여한 것이 알려지면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직장에서 해고되었고, 이후 성소수자 배제에 항의하는 활동을 하면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체포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마침내 성소수자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된 스태튼 아일랜드 퍼레이드는 특히 의미가 깊다. 그는 오랜 시간 체포와 저항의 노력 끝에 오늘을 맞은 감회가 새롭다면서 활동가와 선량한 뉴요커들 덕분에 오늘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뉴욕시의 그 어떤 문화 축제에서 그 어떤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뉴욕이 아니다” 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2024년 3월 17일은 지구 상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는 뉴욕의 진정한 모습에 한걸음 더 다가간 날로 기록될 것이다.
남수경 뉴욕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