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551일 만에 이태원 특별법 통과…“이제부터 시작”
세월호 이후 사회적 참사 조사 실패 반복돼
이번엔 다를까 … 유가족 “정부 협조에 달려”
“이제야 (떠난 아이에게) 할 말이 생겼네요.”(이태원 참사 유가족)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참사가 일어난 지 551일 만이다. 참사 이후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눈발 날리는 겨울에도 아스팔트에 몸을 던졌던 유가족들은 찬성을 알리는 녹색불 가득한 본회의 전광판을 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국회를 나와선 “아직 끝이 아니다”는 다짐도 주고받았다고 한다. 특별법 통과는 거리에 나선 유가족들을 일상으로 돌려보내줄 희망이기도 하지만 진실 찾기의 또다른 시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날 통과된 특별법은 넉 달 전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킨 후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다시 돌아온 법안을 일부 수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의 핵심은 이태원 참사를 독립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여당 추천 4명, 야당 추천 4명, 국회의장이 여야와 협의해 추천하는 1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되는 특조위는 △참사 원인 및 책임 소재 △참사 예방·대응 등 과정의 적정성 △희생자와 피해자의 권리 침해 실태 등을 조사한다. 특조위 활동 기간은 최장 1년 3개월이다.
특조위는 조사 대상자와 참고인을 상대로 진술서 제출, 출석 및 진술 청취, 자료 또는 물건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형사재판이 진행중이거나 확정된 사건에 대해서도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 등에 대한 관련 기록 제출 요구가 가능한 셈이다.
다만 국민의힘이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했던 불송치·수사 중지 사건에 관한 직권조사나 자료제출 요구권은 삭제됐다. 앞서 경찰이 무혐의처분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내사 종결 처리된 윤희근 경찰청장 관련 자료 제출 요구는 힘들어졌다.
기존 재난 조사 활동에 경험이 있는 관계자들은 특조위의 조사권한 축소, 짧은 활동기간이 진상규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월호 특조위에 참여했던 한 변호사는 “바닷속에서 벌어진 세월호 참사에 비하면 이태원 참사 조사는 좀 더 확실하게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는 것 같다”면서도 “1년이란 기간이 생각보다 짧을 수 있다. 결국은 정부가 얼마나 조사에 협조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3개의 조사기구가 만들어졌지만 정부의 조사방해, 조사기구 내 이견 조정 실패 등으로 공식적인 원인진단도 하지 못한 채 마무리된 바 있다.
유가족들도 정부의 협력을 다시 한번 촉구했다.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3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정말 중요하다.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세월호와 달리 육지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수많은 목격자들이 있으니 진실을 찾는 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유가족들도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마음을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조위원과 조사관들의 전문성 확보도 관건이다. 김덕진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대외협력팀장은 2일 국회 통과 관련 기자회견에서 “다른 위원회에 추천했던 사람들처럼 조사를 방해하고 무력화시키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생명안전사회를 만들겠다는 바람을 가진 전문가를 추천해달라, 그리고 유가족들과 논의해 달라”고 국민의힘에 요청했다.
김형선 박광철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