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하는 창업가, 수행하는 기업가

2024-05-22 13:00:00 게재

선불교에 깊이 천착했던 스티브 잡스, 깨달음을 지속적으로 애플 제품에 반영

잔달리가 승려가 되었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1974년, 19세 미국 젊은이가 7개월 동안 인도를 순례한다. 영적 여행을 마친 그는 영국 런던을 경유해 미국 오클랜드 공항으로 귀국한다. 그는 머리를 빡빡 밀었다. 피부는 검게 그을렸다. 인도식 로브(robe)까지 걸친 그를 부모님은 알아보지 못한다.

대학은 일찌감치 자퇴했기에 오리건 포틀랜드로 돌아갈 수 없다. 하릴없이 캘리포니아 로스앨터스 부모님 집에 얹혀산다. 그는 아침에는 명상에 몰입했고 저녁에는 선(禪)을 공부했다. 낮에는 틈틈이 스탠퍼드 대학을 찾아 물리학과 공학 수업을 청강했다. 2년이 흐르고 그는 회사를 창업한다. 동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론 웨인과 1976년 4월 컴퓨터 회사를 설립했다. 지분 비율은 45:45:10이었다.

성공 후에도 구도자 같은 삶 산 잡스

그는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다. 입양되기 전 잡스의 이름은 압둘 라티프 잔달리였다. 잔달리가, 아니 잡스가 승려가 되었다면 애플은 존재하지 않을까. 잡스는 애플을 창업하기 직전까지 진지하게 출가를 고민했다. 인도 순례를 마친 그는 매주 수요일마다 샌프란시스코 선 센터(SFZC, San Francisco Zen Center)의 가르침을 받으며 수행을 계속했다.

스승은 1960년대 미국 서부에 선불교를 전파한 일본인 승려 ‘스즈키 순류’였다. 순류는 잡스가 더욱 깊은 깨달음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이를 도왔다. 자신의 수행 제자 ‘오토가와 고분 치노’에게 로스앨터스에 정식 선 센터를 열고 운영토록 지시했다. 이후 고분 치노는 잡스의 평생 영적 스승이 된다. 잡스 결혼식 주례를 맡을 정도였다.

스무살 젊은이 스티브 잡스는 남은 인생 전체를 선불교 수행자로 사는 방식에 대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출가 의사를 밝히자 고분 치노는 만류했다. 비즈니스 영역에서 일하면서도 충분히 영적 자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고분 치노의 조언이었다.

잡스는 죽음 직전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일본 후쿠이현에 있는 영평사(永平寺)로 들어갈까 생각했습니다. 고분 치노는 그러지 말라고 설득했습니다. 여기서 구할 수 없다면 거기서도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요. 진리는 곁에 있으니 스승을 찾으려 세계를 돌아다니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의 말에서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이후 애플을 창업하고도 선불교는 제 일과 삶 전체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한 3년 동안 가장 훌륭한 텍스트는 스티브 잡스였다. 그를 둘러싼 현지인들의 해석을 수집하는 것만으로도 업무에 큰 도움이 되었다. 미국 혁신 생태계의 발전을 통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잡스에 대한 긍정적 평가만 접한 것도 아니다. 조지타운대학 컴퓨터공학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칼 뉴포트’가 대표적 인물이다. 뉴포트는 저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실력을 쌓으라’(So Good They Can’t Ignore You)에서 잡스가 전파한 메시지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잡스는 2005년 6월 12일 스탠퍼드 졸업생 2만3000명을 상대로 축사를 한다. 연설 직후, 스탠퍼드 대학이 전문을 올리며 헤드라인으로 뽑은 문장은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야만 합니다(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였다. 뉴포트는 이러한 접근법이 현대 사회의 그릇된 열정론에 불을 지폈다며 잡스를 비판한다. 특히 “잡스가 스스로 사랑하는 일만 추구했다면 그는 로스앨터스 선 센터에서 가장 유명한 강사가 되었을 것”이라며 “애플은 열정의 산물이 아니라 별 볼 일 없는 계획이 기대를 뛰어넘어 성공한 행운의 결과”로 폄훼한다.

뉴포트의 지적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전제부터 결정적 오류가 있다. 그는 애플 설립을 기점으로 잡스의 정체성을 구분하고 있다. 애플을 세우기 전 잡스는 선불교 수행자였지만 애플을 창업한 후부터는 기업가로 변모했다는 접근법이다. 이는 잡스 인생 전체를 살폈을 때 전혀 들어맞지 않는 도식적 해석이다. 스티브 잡스가 전형적인 기업가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애플이 고속성장할 때도 수행자의 삶을 고수했다는 사실이다.

잡스는 수행 과정에서 깨달은 진리를 지속적으로 애플 제품과 기업 문화에 적용했다. 교토 선사의 정원에서 미적으로 감화를 받은 잡스는 매킨토시 내부의 회로 기판마저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선불교의 단도직입 정신에 입각해 아이폰의 버튼도 하나만 남기고 모두 제거했다. 애플스토어를 설계할 때도 매장 내부에 주의를 빼앗는 요소를 모두 빼고 극단적인 단순함을 추구했다. 수행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감히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다.

영적 깨달음을 제품으로 구현

잡스가 사망한 지도 만 12년이 지났다. 띠가 한 바퀴 돌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잡스만큼 ‘구루(guru)’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창업가는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영향력 면에서는 일론 머스크가 있겠으나 그를 업계의 구루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필자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잡스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추모는 전지구적 현상이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가 사망하고 한달도 안돼 한국어로 발간된 전기는 출간 당일에만 4700부가 팔렸다. 두달 만에 50만부가 나갔다. 900쪽이 넘는 양장판 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의 일생을 다룬 전기가 이렇게나 많이 나갔는데도 스티브 잡스를 열렬한 수행자로 읽는 독법은 한국에서 드물다. 10여 년이 지나고 잡스에 대한 열기가 한풀 꺾였다. 실리콘밸리라는 새로운 시공간에서 그를 구도자로 바라보는 시각을 마주했다. 대단히 반가웠다. 2021년 10월 5일 미국 출판사 ‘사이먼앤슈스터’는 잡스 사후 10주기를 맞아 전기 특별판을 발간한다. 이 판본에는 2년 넘게 잡스를 인터뷰하며 작업한 월터 아이작슨의 후기가 실려 있다.

아이작슨은 책이 나온 후 접했던 독자들의 반응을 소개하며 잡스를 “평생 우주와의 영적 연결을 추구한 구도자”로 정의한다. 특히 “오랜 세월 공들인 선불교 공부와 인간 감정에 대한 세밀한 감지를 통해 자신과 사람들의 영혼에 도달할 수 있었다”며 “잡스의 산물은 단순히 예술과 기술의 훌륭한 조합에 그치지 않고 심오한 영적 요소까지 보유했다”고 평가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면서 붙들었던 화두는 ‘동양정신’이었다. 필자는 동북아시아에서 태어났을 뿐 서양식 교육을 받고 서구화된 가치관을 갖고 살고 있었다. 초파일만 되면 부모님 손을 잡고 절에 갔지만 불교식 세계관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됐다. 입시와 취업에 시달리던 한국 청년에게 절은 속세와 유리된 곳이었고 세속을 뛰어넘는 공간이었다.

반면 미국에서 태어난 어떤 젊은이는 일평생 선불교에 천착해서 살았다. 종교적 진리를 갈구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영적 깨달음을 세속에 접목했다. 기업을 세웠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제품 서비스 디자인에 구현했다. 그는 특히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본다(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사랑했다. “티끌마다 우주가 가득하다”는 의상대사의 법성게가 떠오르는 구절이다.

다시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는 이유

서양의 젊은이가 인도로 고행을 떠났듯 동양의 직업인에게도 순례가 필요했다. 단시간에 미국과 세계를 대표하는 혁신 생태계를 이해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바로 옆에 실재하는 공간에 대한 인식부터 새로이 해야만 했다. 잡스 사후 10주기 전기가 나오고 석달이 지나서 배낭을 꾸렸다. 2022년 1월의 일이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을 일주일 동안 걸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데 거기까지 나간다고 보일 리가 없다.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실리콘밸리 순례를 마칠 무렵 마운틴뷰 카스트로 거리에서 책방을 맞닥뜨렸다. 이름은 ‘동서서점(East West Bookshop)’이었다. 주로 영적인 책을 다루는 곳으로 보였다. 창문에 붙은 전단지는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어느 요기의 자서전’을 홍보하고 있었다. 잡스 장례식 추모객에게 한권씩 선물로 증정된 책이다. 선물에 남긴 잡스의 마지막 메시지는 “자신을 실현하라(Actualize Yourself)”였다.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을 본다. 손바닥 안의 우주에서 잠시라도 눈을 떼지 못하는 우리는 여전히 그의 유산 아래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김욱진 코트라 경제협력실 차장 '실리콘밸리 마음산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