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불씨 살린 이재명…달갑잖은 여당 “개혁하는 척 위선” 맹공
여, 공격모드 취했지만 “꼬투리 잡나” 비판에 당혹
“어차피 안될 거라 안이하게 생각하다 뒷통수 맞아”
‘내는 돈’ 올리는 데 여야 합의한 건 26년 만에 처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던진 연금개혁 제안을 놓고 여권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이 대표의 제안을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이며 공격 모드를 취했지만 이 대표의 깜짝 제안에 놀란 모습이 역력하다. 연금개혁 이슈를 먼저 던진 쪽이 윤석열정부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야당의 전향적 입장 변화를 환영해야 마땅하지만 이번 제안을 계기로 이 대표 쪽으로 주도권이 넘어간 듯한 모양새가 달갑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여야 입장차가 좁혀진 마당에 소극적으로만 대처하는 것은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으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당장 보수적인 언론매체들도 “처리하지 않으려 꼬투리 잡는 거냐”며 여당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당초 여야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놓고 내는 돈(보험료율) 13% 인상에는 합의를 이뤘지만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놓고선 민주당 45%, 국민의힘 43~44% 사이에서 최종합의를 못한 상태였다. 지루한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21대 국회에선 가망이 없으니 22대 국회로 넘겨서 다시 논의하자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가 23일 “여당 안을 받을 테니 처리하자”고 나서자 정치권이 단번에 시끄러워졌다. 이 대표가 45% 안을 정부안인 것처럼 말한 부분에 대해 잠시 진실공방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민주당이 나서 여당의 44% 안에 대해 “진지하게 협상에 임할 생각”이라고 밝히면서 진실공방은 잦아들었다. 소득대체율 44% 안에 어느 정도 의견이 모아진 걸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애초 소득대체율 50% 안을 제시했던 민주당이 어느 정도 양보한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당에선 이 대표 제안에 대한 반대 입장이 우세하다. 당권주자들이 일제히 나섰다. 나경원 국민의힘 당선인은 “이 대표가 또 국민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중략) 졸속 추진이 아닌 소득대체율, 미래세대 부담, 저출산 등을 충분히 고려해 22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처리돼야 한다”고 했다. 안철수 의원은 “이 대표가 평소 연금개혁에 관심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히다”고 말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얕은 속임수에 놀아나서는 안된다”면서 “이 대표 제안이 그럴싸하게 들릴 수 있지만 받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대표 제안의 진정성을 계속 문제삼기엔 민주당 태도가 상당히 전향적이라는 점에서 국민의힘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연금·교육·노동을 3대개혁으로 칭하며 적극 추진 입장을 밝혀오다가 막상 합의 국면이 오자 한발 빼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당 일각에선 당했다는 평이 나온다. 당의 한 관계자는 “22대 국회로 넘기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다가 뒷통수를 맞았다”고 말했다.
소득대체율과 별개로 여야가 보험료율 올리는 데 합의한 건 26년 만에 처음이라며 전문가들이 의미부여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 안을 정부안으로 거짓말까지 하면서 국민을 위하는 척, 개혁하는 척하는 위선을 멈춰주길 바란다”며 공세 모드를 이어나갔다. 추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주장한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5%안은 민주당의 입장일 뿐, 정부안도 국민의힘안도 아니다”라며 “국민의힘은 미래를 위해 지속 가능한 연금개혁안을 22대 국회 국민 공감 속에서 우선적으로 처리해 나갈 핵심과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연금개혁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이 제시한 소득대체율 44%안과 민주당이 주장하는 45%안은 단 1%p 차이”라며 “이 때문에 중대한 문제를 계속 방치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은 45%와 44% 사이에 어떤 결단을 할지는 충분히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학계에선 구연금과 구분한 새로운 연금 도입 필요성이 지적되고 있다. 신승룡 KDI연구위원은 23일 연금개혁 관련 토론회에서 세대간 형평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구연금과 신연금 분리 방식을 제안했다.
개혁신당은 이날 논평에서 “조금 내고 많이 받던 구연금체계는 끝내고 신연금체계를 만들어 적어도 낸 만큼은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KDI 제안에 적극 동조하며 근본적 개혁 없는 연금개혁안이 21대 국회에서 처리되는 데 반대입장을 밝혔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