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전기차 확대 둘러 복잡한 계산법

2024-06-07 13:00:00 게재

경찰 우체국 등 잇따라 도입하지만 회의적 시각도 … 중국산 전기차 관세부과 여부도 관심

해마다 봄철이면 캐나다는 극심한 산불로 몸살을 앓는다. 올해도 지난 5월 브리티시 컬럼비아(BC)주와 앨버타 등 서부 일부지역에 주민 대피령이 내려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동부 대서양 연안에서는 허리케인과 홍수에 따른 근심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캐나다는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실감하고 있다. 연방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및 적응 대책도 실제적이다. 특히 온실가스배출 감축에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기차 보급이다. 하지만 캐나다의 전기차 확대 정책에는 각종 정치 경제적 이해타산과 지리적 현실이라는 복잡한 방정식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순찰차가 중간에 멈춘다면

캐나다연방경찰(RCMP)은 연방정부의 정책에 따라 2035년까지 약 1만2000대의 승용차와 트럭을 가능한 많이 무공해 차량으로 교체할 계획이다. 이는 캐나다 연방정부의 방침으로 모든 공공기관에 적용된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목표에 경찰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연방경찰 관계자는 최근 CBC와 인터뷰에서 “많은 경찰서에서 운행하게 될 전기자동차 주행거리에 상당한 문제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순찰차를 적절하게 운행하지 못해 시민들이 필요한 때 치안 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캐나다연방경찰은 북미의 경찰조직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국토면적이 세계 2번째인 만큼 넓은 지역의 치안업무를 맡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큰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전기차의 주행거리나 부족한 충전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곧바로 치안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방경찰은 최근 경찰업무에 알맞은 전기차 운행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자체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테슬라 승용차 2대를 BC주 해안가와 수도 오타와의 도심 순찰에 투입한 것이다. 일단은 충전소가 드물지 않은 지역에서 테스트를 시작했으며, 연방경찰 관계자는 경찰 순찰업무에 따른 주행거리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캐나다 인구는 대체로 미국과 국경을 접한 남부지역에 밀집해 있다. 하지만 중북부 지역에도 주민이 거주하기 때문에 치안수요는 있다. 더구나 이들 외딴 지역은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열악하고 전력 공급망도 도심지보다는 부족한 실정이다.

연방경찰에서 교통업무를 맡고 있는 현장 관계자는 “대부분의 도심 지역에서는 전기차도 무리 없이 임무를 잘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사스캐처원 등 대초원이나 특히 북부지역에서 넓은 면적을 담당해야 하는 경찰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초기 현장 테스트는 전기차를 운행하는 경찰에게 임무가 주어졌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지 주목한다. 경찰 관계자는 “출동을 요청하는 전화에 응답하려면 더 빠른 속도로 운행해야 할 것이며, 이는 더 많은 배터리를 소모할 것이고, 결국 해당 경찰관이 치안을 맡는 범위를 축소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치안수요에 맞도록 전기차를 개조하는 일이다. 태양광으로 전기를 충전하는 유리 선루프(glass sunroofs)를 비롯해 전기차의 내부 구조변경 문제가 골머리를 앓게 하는 과제다. 경찰 관계자는 “유리지붕 같은 자동차 구조물은 죄수 등을 뒤좌석에 앉혀 호송할 때 차량 안에서 저항이나 충돌이 일어나면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조명이나 사이렌 등 기본 장비를 순찰차량에 장착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전했다.

연방경찰은 테슬라 이외에 포드와 셰보레 등 다른 자동차업체의 전기트럭 등을 내년부터 현장에 투입해 테스트한다는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전기차량으로의 완전한 전환은 여전히 먼 목표일뿐이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고 말했다.

연방정부의 친환경 전환 전략을 시행하고 있는 재무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전기차량으로의 효율적인 전환이 가능하지 않다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RCMP와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로드맵도 제시

캐나다에서는 2035년 이후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가 중단된다. 지난해 말 연방정부는 2035년 이후 출시되는 모든 새 차는 친환경으로 한다고 못박았다. 스티븐 길보 환경부장관은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향후 내연기관 자동차, 트럭 및 SUV를 단계적으로 축소해야 하며 대신 매년 판매하는 전기차량 모델의 비율을 점차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로드맵에 따르면 자동차업체들은 2026년 시장에 출시하는 차량 5대 중 1대를 친환경으로 해야 하며 이 비율은 2027년 23%로 올려야 한다. 전기차나 친환경 하이브리드 등의 비율은 2035년 100%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증가한다. 물론 2035년 이후에도 휘발유나 경유 차량을 운행할 수는 있지만 추가 판매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2023년 말 현재 캐나다의 전기차 비율은 11% 수준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목표에 도달하려면 2~3년 안에 현재보다 전기차 보급이 2배 늘어야 한다.

길보 환경부장관은 “캐나다에서 더 많은 전기자동차를, 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며,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 역시 수요와 공급에서 정부 정책에 부합하도록 판매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방정부는 전기차 운전자들의 편의를 위해 2026년까지 전국에 3만3000여개의 충전포트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작년말 현재로는 전국에 1만여곳의 충전소에 2만5500개 이상의 충전포트가 있으나 대부분 퀘벡, 온타리오, BC주에 몰려 있다. 연방정부는 2025년 이후에 건축하는 주거용 건물에는 전기차 충전소를 수용할 수 있도록 건축법까지 개정할 예정이다.

캐나다에서 BC주 등 일부 지역은 전기차에 대해 5000캐나다달러(약 500만원, 이하 달러)의 리베이트를 지급한다. 2019년 이후 약 30만대의 친환경 차량에 대해 13억6000만달러 이상의 리베이트가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구가 가장 많은 온타리오주 등은 전기차 리베이트 제도를 폐지했다. 때문에 캐나다 안에서도 각 주마다 전기차 보급 비율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5월 중순 캐나다 온타리오주 앨리스턴의 혼다자동차 조립공장에서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연방총리(맨 왼쪽)와 미베 토시히로(왼쪽 두 번째) 혼다차 대표 등이 공장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쏟아지는 정책, 고개 드는 걱정

캐나다에는 전기차 산업에 막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 일본 자동차업체 혼다가 토론토 인근에 150억달러(약 15조원)를 투자해 전기차와 배터리 공장을 신설한다고 발표했으며, 앞서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등도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전기차 산업이 캐나다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2%지만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에서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약 50만명으로 추산된다.

캐나다 연방정부는 직원들의 출퇴근 시 발생하는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저탄소 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연방공무원들은 주 3일 정도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2025년부터 연방정부 기관은 신규 경차를 구매할 때 무공해 차량으로 해야 한다. 또한 연방정부 각 부서가 건물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할 때는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기후변화 정책에 기준을 맞추도록 지시했다.

캐나다우편공사(Canada Post)는 최근 첫번째 전기차량 운행을 밴쿠버 섬에서 시작했다. 2040년까지 1만4000대의 배송차량을 전기차 또는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바꾸기 위한 첫 단계다. 이를 위해 총 10억달러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우편공사 관계자는 “밴쿠버 섬 지역은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청정에너지로 대국민 서비스를 하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캐나다가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하도록 나아가는 한 걸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캐나다포스트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배송차량의 이동거리 등 연방경찰이 지적했던 것과 같은 이유다.

캐나다 안에서 기후변화 정책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지만 그것이 개인의 삶과 관계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토론토시는 오는 2031년까지 택시차량을 전기자동차나 하이브리드로 바꾸어 나갈 예정이다. 택시업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차량 가격이 비싼 데다 충전소 등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다. 택시회사 Co-op Cabs의 압둘 모하무드 대표는 “듣기에는 좋은 정책일 수 있지만 운수업 종사자들에게는 심각한 생계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반발했다. 또다른 택시업계 관계자도 “토론토시에서 일부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밝혔지만 전기차 보험료나 차량 수리비용, 기술자 확보 등 해결돼야 할 점이 너무 많다”고 우려했다.

보급 확대냐, 자국 경제 보호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14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수입관세를 현재보다 4배 높은 100%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캐나다는 현재 중국산 차량에 6%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저스틴 트뤼도 연방총리와 메리 응 무역부장관 등은 미국의 관세 인상에 주목하면서도 5월 말 현재까지는 미국과 보조를 같이 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캐나다자동차제조업체협의회 브라이언 킹스턴 회장은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중국 전기차가 캐나다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중국의 보조금 관행에 대한 자체 반덤핑 조사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관세 인상폭을 즉시 맞출 필요는 없지만 상황이 바뀔 경우 국내 업계 보호를 위해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저렴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중국 자동차업체 BYD는 전기버스 조립공장을 온타리오주에 세웠고, 일부 지역에서 운행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CBC라디오 방송은 최근 BYD가 내놓은 1만달러 대의 승용차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미국처럼 100%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해도 차량 가격이 4만달러 이하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관심을 충분히 끌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중국산 MG4 전기차의 기본모델은 독일에서 약 4만2000달러부터 시작하는 반면, 유사한 사양의 폭스바겐 전기차는 6만 달러가 기본이다.

연방환경부장관이 “더 많은 전기자동차를, 더 저렴하게” 공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이 현실화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

김용호 언론인 캐나다 토론토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