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현의 한반도워치
막힌 일본과 트인 외교를 하려면
몇년 전 일본 출장 중에 야스쿠니 신사를 가 보았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가 그렇게 비난할 일이었는지 반신반의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신사는 전몰자들의 위패만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태평양전쟁과 아시아 식민지 경영을 정당화하고 일본의 위대한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전시장이 있었다. 분노 속에서 신사를 나왔다.
이렇게 된 것은 2차대전 직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이 일본을 동북아의 반공기지로 삼고자 제국주의 체제를 거의 그대로 두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범재판을 받던 인물이 총리까지 되었으니 전후 일본은 일본제국을 승계한 꼴이 되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발전하는 한국을 질시하고 강해진 중국은 경계해가며 미국만 붙들고 있게 되었다. 참으로 답답한 이웃이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지난 수년간의 한국외교는 이런 일본에게 뭔가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외교정책은 상대방과 자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국제정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는 이 세가지를 모두 놓쳤다.
일본 비판하면 변할 거라는 오판
우선 일본에 대한 오판이다. 우리는 일본을 비판하면 변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를 가지고 일본을 대해 왔다. 그러나 자민당이 만든 ‘1955년 체제’가 지속되는 한 일본은 변치 않을 것이다.
우리의 오판이 가져온 실패사례는 위안부 합의다. 이 문제는 일본의 정신세계가 변하기 전에는 한국과 국제사회가 수긍할 만한 해결책이 나올 수 없는 사안이다. 물론 짧게 집권했던 사회당정부 시절에 잘못을 에둘러 인정한 무라야마 담화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자민당이 재집권하면서 이마저 역행하는 시도가 있어 왔다.
우리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촉구하면서도 필요한 협력은 계속해 나간다는 입장을 가지고 국제사회와 함께 대응해 왔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위안부문제를 매듭짓겠다는 각오로 첫 2년 동안 일본을 압박했다. 한일관계는 마비상태에 들어갔다. 우리는 미국의 우려와 나빠진 국내 여론 때문에 갑자기 합의를 시도했다. 그 합의 결과는 다수의 국민들 눈높이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많은 피해당사자들은 일본정부가 직접적인 사과 없이 100억원을 내놓은 것을 수용하지 않았으며 국민들은 그 돈이 일본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바뀌자 일본의 지원금으로 만든 화해와 치유의 재단은 해체되었다. 일본 대사관 앞의 수요집회는 계속되고 있지만 지금은 맞은편에 위안부를 모욕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는 반대 시위대가 눈에 띈다. 위안부 합의를 거치면서 우리만 분열했다.
두번째 문제는 우리 자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 부족이다. 우리사회는 분열되어 있는데 정부는 온 국민의 지지를 받는 듯 편향된 정책을 밀고 나간다. 사실 분열은 역사의 굴곡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가부터 친일파까지 나온 것도 인간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불행히도 해방 후 분단과 남북대결, 군사정부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분열은 더 커졌다. 정부가 바뀌면 일본에 대한 입장도 크게 달라진다. 그러면 일본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도리어 비난한다.
징용문제도 아쉬움이 크다. 박근혜정부에서 외교부는 이 판결을 늦추고자 사법부에 부탁까지 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문재인정부는 이를 존중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 문제를 일본과의 전반적 외교관계에서 떼어내려고 했으나 일본은 양보하지 않았다. 일본이 1965년 청구권협정 위반이라고 비난하면서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만약 우리가 청구권협정에 따른 중재절차를 취했다면 어땠을까? 어느 편에도 완전한 승리를 안겨주지 않는 중재재판의 성격상 최소한 일본정부의 사과는 받아낼 수 있었을 것 같다. 또한 한일관계가 전반적으로 악화되는 것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바뀌어 한일관계의 복원을 위해 내놓은 제3자 변제 방안은 우리의 일방적 후퇴였다. 결국 일본 정부는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
소망에 근거한 외교는 일본에 안 통해
세번째 문제는 동북아에서 일본의 역할에 대한 평가다. 이를 무시하면 안되지만 과대평가도 곤란하다. 미중 전략경쟁과 북한의 핵 위협 상황에서 일본의 역할이 더 커진 것은 현실이다. 이제 일본은 보통국가로 나가면서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활용해 한반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 것이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의 결렬에 아베 총리의 영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한반도의 안정,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을 이루어 가는데 일본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대일외교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음을 일깨워 준다. 일본이 훼방꾼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대일외교에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면 대일외교를 어떻게 해 나가야 할 것인가? 과거사 문제는 긴 호흡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 어느 정부가 적당히 타협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우리가 먼저 양보하면 일본이 화답할 것이라는 소망에 근거한 외교는 일본에 안 통한다. 그렇다고 과거사 문제를 양국관계 전반의 선결조건으로 내걸거나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일본에 혐한(嫌韓)감정을 확산시키는 빌미를 주고 우리 내부도 더 분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진전이 없더라도 외교사안으로 남겨두는 것이 장기적인 해결의 길이다.
원칙 지키면서 참을성 있는 외교를
안보문제는 한미일, 한중일, 북한과의 관계, 안보와 경제 모두를 아우르는 큰 틀과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동북아의 지정학적 변화에 따라 한미일 3국간의 안보협력도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작년의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는 다음 정부가 들어와도 그 틀을 유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 빠져나오면 우리만 고립되고 만다. 정보교류와 같이 필요한 군사협력은 해 나가되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끌고 나가야 할 것이다.
경제문제는 협력과 경쟁이 가능한 상생의 방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 한중일 FTA의 재추진이 합의되었지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도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부당한 조치는 엄중히 따져야 한다. 최근 라인사태에서 보인 우리정부의 어정쩡한 태도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지분매각과 같은 기업의 문제는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지만 일본정부의 행정조치에 대해서는 초기에 단호한 대응을 했어야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원칙을 놓쳤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지했다고 하지만 IAEA는 일본이 요청한 해양방류 방안 하나에 대해서만 검토한 결과를 낸 것이며 여기에도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지켜보아야 한다고 적시했다. 우리는 인접국으로서 우려를 표명하고 향후 예기치 못한 결과에 대해서는 일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정도로 대응하는 것이 합당했다. 우리정부가 방류의 정당성을 홍보할 일은 아니었다.
잠시 한일관계를 접어두고 세계 역사를 돌아보자. 이웃나라끼리 잘 지낸 사례가 몇이나 되는가? 많은 나라들이 인접국과의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나라들은 지정학적 숙명을 극복하고 호혜적 선린관계를 만들어냈다. 과거에 사로잡힌 일본과 그런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원칙을 지키면서 참을성 있는 외교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민들 간에 우호관계를 강화해 나갈 민간교류도 확대해야 한다. 특히 청년층의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일본식 사고에 젖은 기성세대 간의 교류방식도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자신감 넘치는 우리 청년들과 각고의 노력으로 일본을 추월한 기업들은 일본과 새로운 협력의 장을 만들어 낼 주역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