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불안감과 기시감
“지금 우리 당 상황을 보면 1년 뒤, 2년 뒤가 아니라 몇 달 뒤도 불안한 상황이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23일 국민의힘 당권 출마 선언 후 기자들과 질의응답하며 한 말이다. 당 대표가 되면 지방선거나 대통령선거에 도전 안 하냐는 질문에 대해 너무 먼 미래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취지의 답변이었다. 그런데 불확실성을 강조하려던 그의 수사가 공교롭게도 현 국민의힘 상황을 너무 잘 요약하고 있어 들으면서 쓴웃음이 났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국민의힘의 상황은 몇달 뒤로 갈 것도 없이 윤석열정부 출범 후 2년 내내 불안한 모습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리더십의 잦은 붕괴다. 윤석열정부 2년 동안 당 대표 역할을 한 사람은 8명이었다. 대표, 대표 권한대행, 비상대책위원장이라는 직함을 삭제하고 이름만 나열해보면 이준석 권성동 주호영 정진석 김기현 윤재옥 한동훈 황우여 등이다.
리더십 교체 때마다 새로 선임된 비상대책위원이니 사무총장이니 각종 직함을 받은 당직자들 숫자를 세보면 수십명은 족히 될 것이다. 구멍가게 사장도 이렇게 자주 바뀌지는 않는다. 하물며 집권여당의 2년이 이러했으니 안 불안할 수 있겠나.
총선 참패의 민심을 받들어 당의 혁신과 보수재건을 외치는 새로운 전당대회가 시작됐지만 불안감과 기시감은 여전하다. 불안감은 과연 새 지도부는 얼마나 갈까 싶은 학습효과 때문이고, 기시감은 또 등장한 친윤·반윤 프레임 때문이다.
불안감의 징표는 ‘러닝메이트 최고위원’의 등장이다. 23일 국회에선 1시간 간격으로 당권주자들의 출마선언이 이뤄졌는데 빠지지 않고 나온 질문 중의 하나가 러닝메이트가 누구냐였다.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이 사퇴하면 자동적으로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게 돼 있는 구조 상 누가 대표가 되든 자신과 가까운 최고위원 숫자가 최소 2명 이상 되지 않으면 언제 쫓겨날지 몰라 밤잠을 설칠 가능성이 높다.
기시감의 징표는 벌써부터 반윤 한동훈, 비윤 나경원, 친윤 원희룡의 대결로 요약되고 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이 어물전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리라는 이준석 의원의 경험 섞인 비평처럼 윤 대통령의 의중이 이번 전당대회에 얼마나 반영되느냐가 최대 관전 포인트다. 만약 기시감이 현실화된다면 총선을 참패로 이끈 당정일체의 지난 2년이 또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안감도 기시감도 다 헛된 노파심이길 원하고 있는 국민이 여전히 있다는 것을 여당이 기억하면 좋겠다. 만약 이번에 국민 눈높이에 맞는 새 지도부가 무사히 출범해 지속가능성 있게 운영된다면, 윤 대통령이 취임 2년 만에 야당 대표와 만났을 때 마치 첫 걸음마 뗀 아이 칭찬하듯 박수를 친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칭찬해주고 싶다. 그게 칭찬할 일인지는 솔직히 헛갈리지만.
김형선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