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의 미국 현장 리포트
SNS 위험 경고문 의무화와 표현의 자유
최근 미국에서 청소년들의 소셜미디어 (SNS) 사용에 대한 규제 여부를 놓고 논쟁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공중보건정책 최고책임자 중 하나인 비벡 머시 공중보건서비스단(PHSCC) 단장 겸 의무총감이 술이나 담배처럼 SNS 플랫폼에도 위험 경고문을 넣자는 제안을 해 주목받고 있다.
그는 6월 17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하루 3시간 이상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청소년의 자살과 우울증 위험이 2배 이상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과 같은 온라인 서비스 플랫폼이 청소년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표시를 의무화하자고 제안했다.
미국 젊은이들의 정신건강이 긴급한 위험상황에 놓였다면서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경고문을 의무화하는 법을 의회가 당장 통과시킬 것을 촉구했다. 경고문은 부모와 청소년에게 SNS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음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고, 정신건강 위기를 개인이 아닌 공공안전의 문제로 인식하게 한다는 것이다.
담뱃갑 위험 경고문 이후 흡연율 떨어져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담배의 위험경고문 또한 1965년 당시 의무총감 루터 테리가 흡연이 폐암의 주원인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후 연방의회가 모든 담뱃갑에 경고문을 부착하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키면서 의무화되었다. 그 결과 이후 미국인들의 흡연율은 급속히 감소했다.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경고문이 처음 나온 1960년대 중반 미국 성인 중 약 42%가 흡연자였지만 2021년 그 수치는 11.5%로 뚝 떨어졌다.
이렇듯 경고문 부착이 흡연과 관련된 건강상의 위험에 대한 대중의 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면서 머시 의무총감은 SNS 플랫폼에도 이와 유사한 경고문을 게재해 아동을 위한 안전장치를 법으로 마련하자는 것이다.
머시 의무총감은 그동안 수차례 언론을 통해 SNS가 청소년 정신건강에 미치는 유해성에 대한 입장을 피력해왔다. 지난해 5월에는 보고서를 통해 소셜미디어가 아동과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지표가 많다면서 부모들에게 자녀들의 핸드폰 사용을 제한할 것을 권유했다. 의회에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보건 및 안전기준법을 신속하게 마련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지난 20여년 동안 기업들 스스로 안전에 대한 규제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것을 꼬집으면서 기술기업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라는 것으로는 현재의 위급한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면서 의회가 나설 것을 주장한다.
그는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기술기업들의 변화와 행동 또한 촉구했다. 소셜미디어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내부 데이터를 독립적인 연구자 및 대중과 공유하고 자사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독립적인 감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아이들의 지능발달을 방해하고 과도한 SNS 사용을 조장하는 푸시 알림, 자동재생, 무한 스크롤과 같은 기능을 제한하라고 촉구했다.
청소년 정신건강 위기 우려 높아져
젊은이들의 소셜미디어 사용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추세로 보인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청소년들은 하루 평균 4.8시간을 소셜미디어에 할애한다. 13~17세 아동청소년 중 95%가 적어도 하나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1/3 이상이 “거의 지속적으로” 소셜미디어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45%가 소셜미디어로 인해 자신의 외모에 불만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올해 초에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데이터가 수집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처음으로 북미의 15~24세 청년층이 기성세대보다 덜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이런 정신건강 ‘위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소셜미디어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쟁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일부 연구는 과도한 SNS 사용이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삶의 만족도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사회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 뉴욕대교수는 자신의 저서 ‘불안한 세대 (The Anxious Generation)’에서 스마트폰의 증가가 자살행위와 절망의 급증으로 이어진 변곡점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SNS가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뚜렷한 인과관계나 과학적 증거가 미비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상당수다. 이들은 SNS 자체가 위험하다기보다 그 안에 나쁜 내용과 좋은 내용이 함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자해 관련 컨텐츠를 많이 보는 아동이 실제 자해행위를 할 가능성이 크지만, 동시에 오프라인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청소년에게 안전한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긍정적인 기능도 SNS에 있다는 것이다.
또 SNS에 대한 과도한 책임 전가는 경제적 빈곤, 사회적 고립, 인종차별, 학내 총기난사 같은 더 근본적인 원인들을 등한시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한다. SNS에 대한 경고문 의무화는 자칫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반론에 대해 머시 의무총감은 더 심도 깊은 연구와 과학적 입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현재 자라나는 아이들은 소셜미디어의 유해성이 완전히 입증될 때까지 몇년을 더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경고표시는 소셜미디어의 안전성이 실제로 입증될 때까지 아이들을 보호하는 중요한 안전장치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금 같이 긴급한 상황에서는 완벽한 정보를 기다릴 여유가 없고, 즉각적인 판단과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SNS업계 ‘표현의 자유’ 무기로 대항
하지만 실제 입법화까지 순탄하게 이어지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기술기업들의 반발이라는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정부 규제에 반대하는 기술기업들은 소셜미디어의 악영향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 또한 정부가 기업에게 제품에 대한 경고문을 부착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주장할 것이다.
기술부문 로비업계의 한 중역은 “바이든정부의 규제책은 트럼프정부가 주류 언론에게 가짜뉴스를 생산한다는 경고표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정부의 권력남용”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경고문구를 의무화 하려는 시도는 이미 불붙은 바이든정부와 기술기업들 사이의 소송전을 더 격화시킬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40여개 주(州)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에 소송을 제기했다. 추천 알고리즘이나 ‘좋아요’ 버튼, 알림, 사진필터 등을 이용해 아동과 청소년들의 중독을 유도하도록 설계했다는 이유였다. 또한 10여개 이상의 주에서 아동의 소셜미디어 사용에 대한 안전장치를 확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일부 주에서는 나이가 어린 아동의 SNS 접근을 금지하고, 청소년의 경우 부모의 승인 없이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기술기업들은 소셜미디어 사용을 제한하려는 이런 다양한 법안에 대해 사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런 주장은 일부 법원에서 호응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18세 미만 아동의 온라인 플랫폼 사용에 대해 안전장치를 의무화하려는 캘리포니아 주정부를 대상으로 기술 및 소셜미디어 업계가 위헌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법원은 지난해 법안에 대한 원고측의 임시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전에 담배회사들이 담배 포장에 병에 걸려 망가진 폐의 사진을 넣어야 한다는 조항을 피하기 위해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소송의 무기로 사용한 것처럼 현재 정부의 규제책를 피하기 위한 소셜미디어 업계의 주요 무기 또한 표현의 자유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