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명 사상’ 화성 화재 수사 본격화
사고 하루 만에 아리셀 대표 등 5명 입건
안전 확보 의무 위반·불법 파견 의혹
시신 훼손 심해 사망자 신원확인 난항
경찰이 31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도 화성시 리튬 1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와 관련해 책임자 5명을 입건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사망자들의 신원 확인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26일 수사당국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는 전날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아리셀 박순관 대표 등 5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고 모두 출국금지했다. 입건 대상자에는 박 대표를 비롯해 본부장급 인사, 안전 분야 담당자, 인력공급 업체 관계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에게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도 적용됐다.
경찰은 사고의 중대성을 고려해 화재 발생 하루 만에 신속하게 형사 입건 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파악된 이번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23명, 부상자는 8명으로 총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난 1989년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럭키화학 폭발사고(사망 16명, 부상 17명) 보다도 인명 피해 규모가 커 역대 최악의 화학공장 사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화재로 숨진 노동자의 국적은 한국인 5명,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인 중에는 중국 국적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사람 1명이 포함됐다.
아리셀은 지난 2019년 리튬 보관을 허가량의 2.3배를 초과해 보관하다 적발돼 벌금 처분을 받았고, 2020년에도 소방시설 작동 불량으로 시정명령을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가 일어나기 이틀 전인 지난 22일에도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일어났지만 자체 진화하고 소방당국에는 신고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경찰은 아리셀이 위험물 관리 등 안전 확보 의무를 준수했는지 등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근로자를 상대로 한 안전교육 여부도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피해자 대부분이 파견업체가 보낸 일용직 근로자로 비상구 안내 등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화를 키운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서다.
소방당국은 “인명피해가 많았던 이유는 대피방향이 잘못된 것도 있는데 외국인 근로자가 많았다는 점도 있다”며 “이분들이 정규직 직원이 아니고 용역 회사에서 필요할 때 파견하는 일용직이 대부분이다 보니 공장 내부 구조가 익숙하지 않았던 점도 피해가 늘어난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한 바 있다.
희생된 외국인 노동자의 불법 파견 여부도 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숨진 외국인 노동자 18명은 인력파견업체인 메이셀 소속으로 불법 파견 의혹이 불거진 상태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제조업 생산공정은 파견허용 업종에 포함되지 않는다. 메이셀은 근로자파견사업 허가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박 대표는 “아리셀 화재 사고와 관련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며 불의 사고로 고인이 되신 분과 유족에게 깊은 애도와 사죄를 드린다”면서도 “하지만 불법 파견은 없었고 안전교육도 충분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과 소방당국 등은 24일 불이 난 아리셀 공장에서 합동감식을 진행했다. 9개 기관 40여명이 참여한 이날 감식은 최초 발화지역을 중심으로 화재 원인과 확산 경위 등을 규명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다수의 근로자가 단시간에 고립돼 인명 피해가 커진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대피경로와 소화시설 등에 대해서도 면밀한 점검이 이뤄졌다.
당국은 숨진 노동자의 신원 확인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시신이 심하게 훼손된 경우가 많아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지문 등으로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는 3명이다. 이들은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끝내 숨진 최초 사망자 50대 A씨, 소사체로 수습된 40대 B씨, 마지막 실종자로 역시 소사체로 수습된 40대 C씨 등으로 모두 내국인이다.
나머지 20명은 시신 훼손 상태가 심해 지문 감정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당국은 훼손 정도가 덜한 신체 부위에서 DNA를 채취한 뒤 가족의 DNA와 비교해 신원을 특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국은 신속한 사고 수습을 위해 신원 확인 작업에 최대한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사망자 중에 한국에 가족이 없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대조할 수 있는 DNA가 없기 때문에 현지에서 DNA를 채취해 외교 행랑편으로 한국에 보내지거나 유족이 한국에 와서 직접 DNA를 제공해야 한다.
당국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사망자 전원에 대해 부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오승완 구본홍 기자 osw@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