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시진핑 시대 다시 읽기
시진핑 집권 이후 사회주의 국가주의 색채가 강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일견 옳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조금 긴 시간의 눈으로 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공간적으로 오늘날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그렇다.
시간적으로 보면 시진핑은 ‘강한 후진타오’
첫째, 시간적으로 살펴보면 시진핑의 방향전환은 후진타오 2기(2008~2012)의 연속선상에서 이뤄진 것이다. 후진타오까지는 개방적이었는데 시진핑들어 폐쇄적이 된 것이 아니라 후진타오의 두번째 집권기부터 이미 오늘날과 같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었다. 사실 중국 공산당의 정책 변화를 묻는 올바른 질문은 “시진핑이 사회주의적이냐?”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으로 돌진하던 중국의 개혁이 언제부터 방향을 전환했는가?”이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선부론 – 먼저 부자가 될 사람은 되라 – 에 따라 개혁개방을 실시했고, 그 당연한 결과로 부자가 된 사람과 뒤쳐진 사람이 발생하게 된다.
이 구조를 더 강화한 것이 장쩌민-주룽지 지도부(1993~2002)의 개혁이었다. 국유기업 구조조정과 대량해고, 주택분배 중단과 상품주택 도입, 대학등록금 도입, 위안화의 극적인 평가절하와 같은 충격적인 조치들이 중국을 뒤흔들었다.
하나같이 중국 인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개혁들이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인민들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었다. 또한 국가주도의 산업정책보다는 외자도입을 통한 시장친화적 기술이식을 도모했다. 모두 신자유주의적 조치들이었다.
포용적 성장을 표방한 후진타오 지도부는 이 방향에서 벗어났다. 특히 집권 2기에 즈음해서는 노동에 대한 보호 수준을 높이고(노동계약법), 호적이 없는 이주노동자(농민공)의 처우를 개선하고, 농민에 대한 세금을 아예 없애고(농업세 철폐), 외자기업에 대한 제도적 특혜를 없애고(법인세 통일), 토지수용 보상금을 대폭 높이고, 부동산세 시범징수를 시작하는 개혁들을 진행했다.
또한 저임금 기반 수출에서 고임금 기반 내수로 성장동력을 옮기는 거대한 방향타를 틀었다. 국가의 역할도 다시 강조하기 시작했다. 국유부문을 축소하기 위함이 아니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SASAC)가 탄생했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를 맞아 대규모 경기부양을 시도하며 국진민퇴 – 국가는 강해지고 민간이 후퇴한다 – 라는 말을 회자시키기도 했다.
산업정책도 해외로부터의 낙수효과(spillover)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역량을 높이는 자주창신(自主創新)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시진핑 지도부가 이러한 개혁들을 이어받아 심화발전 시키고 있다는 점에서(신형도시화, 공동부유, 국유부문 강화, 중국제조2025) “시진핑은 강한 후진타오”라는 명제가 옳다.
공간적으로 보면 세계적 흐름과 같은 궤도
둘째, 공간적으로 살펴보면 시진핑의 중국만 국가주의가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전세계에서 나타나는 국가의 재등장 현상은 시진핑 지도부의 특징을 흐릿하게 만든다.
오늘날 국가발전을 도모하는 나라라면 거의 모두 예외없이 산업정책을 더 강하게 구사하고 있다. 학자들은 최근 각국의 산업정책을 신산업정책(NIP, New Industrial Policy)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에는 경제안보가 중요하게 취급되면서 정부들이 기업의 영역을 넘나들며 매우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그것을 추진하고 있다.
거대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도 중국정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정부도 한다. 중국은 명령으로 하고 미국은 소송으로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기후위기 대응 역시 국가가 주도해서 할 일이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국가의 역할이 더 크게 드러났다. 특히 미국이 투입한 어마어마한 재난지원금과 그것이 초래한 오늘날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동반한 경제성장은 소득주도성장이 사실상 실험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평가된다.
반면 주요국들 중에서 재난지원금을 가장 적게 지급한 나라가 중국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건전재정으로 인한 불충분한 경제성장의 한 예라고 할 법하다. 즉 케인즈주의적 입장에서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를 놓고 따진다면 오히려 중국이 작은 정부 행태를 띄고 있는 것이다.
먼 훗날 역사가들은 시진핑을 다음과 같이 평가할 것이다. “그는 전 지도부의 방침을 이어받아 국가의 역할을 강화했으며, 이는 당시 전세계적 흐름에도 부응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혹은 이를 이용해 그는 자신의 권력을 대폭 강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