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영국 톺아보기
영국 총선의 뜨거운 감자 ‘이민 문제’
다음달 4일 총선을 앞둔 영국에서는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지난 14년간 집권해온 보수당이 크게 패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인 영국개혁당(Reform UK Party)의 돌풍이 무섭다. 브렉시트 찬성 운동의 주역인 나이젤 패라지가 이끄는 이 정당은 가장 강경한 이민정책을 내걸었다.
“비필수인력의 이민을 동결하고 도버해협을 건너오는 불법이민 신청자들을 즉시 추방하겠다.” 이것은 영국개혁당이 지난 17일 선거공약에서 방점을 둔 분야다. 의료와 요양 등 필수인력을 제외하고 이민을 동결하겠다는 것이다. 이 공약은 수세에 몰린 보수당을 더 코너로 몰아넣고 있다. 패라지는 불출마를 번복하고 이달 초 출마를 선언했다.
650개 선거구에서 한명씩 뽑는 영국 총선에서 개혁당은 609개 지역구에 후보를 냈다. 보수진영이 분열하고 개혁당의 지지율이 크게 오르면서 보수당의 지지도는 덩달아 하락했다. 지난 17일 정당 지지도를 보면 제1야당 노동당이 42%, 보수당이 21%, 개혁당은 15%를 기록했다. 개혁당의 지지도는 연초에 비해 2배 넘게 올랐다. 보수당의 지지도 하락은 개혁당의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났다.
소선거구제이고 결선 투표가 없다 보니 노동당이 과연 몇석을 차지할지가 선거의 관전 포인트다. 일부에서는 400석이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보수당은 총선을 앞두고 외국인 유학생 졸업비자를 폐지하겠다는 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민정책이 이번 선거의 중요 이슈다.
해외 유학생, 영국 대학 수익의 20% 기여
영국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해외 유학생은 영국 학생보다 3배 정도 더 등록금을 지불한다. 영국 학생들은 연간 9250파운드(약 1600만원)을 납부하지만 외국 유학생은 평균 3만유로(약 5000만원) 조금 넘게 낸다. 자국 대학(원)생 등록금은 2017년부터 10년 간 동결됐다. 그동안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연간 최소 2000파운드 정도는 올려야 대학재정이 안정된다고 대학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영국 대학생 1명당 2500파운드 정도 손해를 본다고 대학측은 추산했다.
이처럼 어려움을 겪는 영국 대학교에 외국인 대학생은 그야말로 최고의 고객이다. 외국인 유학생을 더 받을수록 대학은 돈을 번다. 해외 유학생 1명이 영국 대학 교직원 10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 보수당은 최근 잇따라 유학생 비자 허용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지난해부터 석사과정 유학생의 가족 동반을 제한했다. 또 지난 4월부터는 숙련근로자 비자 발급 요건을 연봉 2만6200파운드(약 4500만원)에서 3만8700파운드(약 6600만원)로 올렸다. 이런 연봉 상향조정 후 컨설팅회사 KPMG는 외국인 유학생 중 대학원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신입사원 선발을 중단했다. 그만큼 연봉상한 조치가 기업의 인력 채용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비자규제 강화로 2024년 1월 외국인 유학생의 대학 지원율이 전년도에 비해 44%나 줄었다.
보수당은 여기에 한술 더 떠 영국에서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외국인 유학생에게 주는 2~3년의 졸업비자가 이민에 악용된다며 폐지를 검토했다. 졸업 후 2~3년간 이 비자를 받아 일자리를 구해 취업할 수 있다. 이민자문위원회가 악용이 된다는 증거가 없다고 반박했지만 리시 수낵 총리는 이를 밀어붙였다. 그러다가 기업들은 물론이고 대학교가 크게 반발하자 한발 물러섰다.
브렉시트 후 그래도 외국 기업들이 영국에 투자하는 이유는 우수한 여러 국적의 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투자 유인을 줄이려는 게 친기업적인 보수당의 정책이다. 노동당은 원래 대학등록금 폐지를 주장하다가 현실성이 없자 작년에 이를 철회했다. 이처럼 이민정책이 총선의 큰 쟁점이 된 것은 집권 보수당의 비현실적인 이민자수 상한선이 한몫을 했다.
연 30만명의 비현실적인 순이민자 상한선
이민자수는 전쟁 등 긴급상황에 따라 크게 늘어날 수 있다. 그런데도 보수당정부는 영국으로 들어온 이민자수에서 영국에서 나간 이민자수를 뺀 순이민자수를 연간 30만명으로 통제하겠다고 공언했다. 2022년 순이민자는 76만4000명, 2023년에는 68만5000명을 기록했다.
중국의 홍콩 통제로 홍콩 시민들의 영국 이민이 급증했고 우크라이나 피란민도 많이 들어와 순이민자수가 크게 늘었다. 하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순이민자수는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그런데도 강경한 이민통제를 주장하는 개혁당의 요구가 빗발치자 보수당은 해마다 하원에 순이민자수 결정 권한을 주겠다는 공약까지 제시했다.
해외 유학생들은 보통 숙련직에 취업을 많이 하고 받은 복지혜택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한다. 이런 요인을 무시하고 보수당 진영은 무조건적인 이민통제를 들고 나왔다.
노동당은 이민자수를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주택건설 촉진 등의 공약을 냈다. 영국은 매우 까다로운 도시개발 계획을 시행중이어 그린벨트 규제완화가 어렵다. 그린벨트 규제를 좀 완화하고 개발계획을 신속하게 시행하지 않는 한 노동당도 이민정책에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5일자에서 분석했다.
보수당은 연간 30만호 주택건설을 공약했으나 이행률은 60% 정도에 불과하다. 이민자들이 많이 몰려들면 주택난과 무료 건강보험(NHS)에 부담이 간다. 긴급 수술을 제외하고 영국에서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수는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754만명을 넘어섰다.
이번 총선에서 보수진영은 해결이 쉽지 않은 주택건설 촉진이나 NHS 대기자수 축소보다 일단 손쉽게 표를 더 얻을 수 있는 이민자 강력 통제와 같은, 실현이 어려운 공약을 들고 나왔다.
브렉시트 후 ‘글로벌 영국’과 더 멀어져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영국이 좁은 유럽에서 나와 더 넓은 세계와 교류해 자유무역을 적극 전파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있던 다음해인 2017년 미국에서 보호무역을 앞세운 트럼프행정부가 출범하자 영국의 자유무역 전파는 물거품이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진국이 개도국과 저소득국의 경제와 사회발전을 위해 지원해주는 공적개발원조(ODA)의 경우 영국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전에 국민총소득(GNI) 대비 0.7%를 달성한 몇 안되는 선진국이었다. 더구나 법으로 이 예산을 건드리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후 외국인 투자가 줄고 EU와의 교역이 차차 감소하자 2019년 집권한 보리스 존슨 보수당 총리는 이 법을 개정해 ODA를 0.2%p 정도 삭감했다. 영국개혁당은 이를 50% 줄이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우리도 살기 힘든데 왜 다른 나라를 도와줘야 하냐는 자국 우선주의 공약이다. 글로벌 영국이 단순한 구호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이번 총선의 쟁점인 이민문제도 마찬가지다. 정치모리배가 아니라 정치인이라면 이민의 장단점을 명확하게 알리고 무조건 이민을 통제할 것이 아니라 숙련 이민을 수용하면서 부수된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주택을 더 짓고 NHS 대기자수를 줄이려면 증세가 필요하다.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카밀라 캐번디시는 “보수당이건 노동당이건 어떤 정당이 집권해도 이제 이민문제가 악몽이다. 유권자를 너무 의식해 포퓰리스트적인 단기해결에 집중한다”고 비판했다.
정치인의 시계는 아주 근시안적이다. 집권에 도움이 된다면 이를 공익으로 포장해 전달하는 데 열을 올린다. 이민문제를 해결하려면 인기가 없는 정책이라도 최소한 수년간 지속적으로 과감하게 실행해야 하는데 이는 다음번 정권 획득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노동당이 집권하더라도 이민문제는 계속해서 뜨거운 감자로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