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일정 이어 ‘단독진행’…김건희 여사 ‘전면부각’ 택한 용산
윤 대통령, 김 여사에 정신질환 간담회 주재 맡겨
김 여사 “밤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 불안감 경험”
부정적 이미지 돌파 시도…“과대홍보 역효과” 지적
총선참패를 전후해 한동안 잠잠했던 대통령실의 ‘김건희 여사 띄우기’에 속도가 붙었다.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을 계기로 본격화하더니 한창 활발했던 지난해 수준까지 수위가 회복됐다. 김 여사는 대통령 배우자로서의 일정을 수동적으로 소화하는 데서 한 발 더 나가 대통령 대신 정책 관련 간담회를 진행하는 모습도 보였다.
◆김 여사 ‘정신건강’ 간담회 세 번째 주재 = 김 여사는 26일 오전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정신질환 경험자와 자살 유가족 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정신건강 정책 혁신위원회’ 1차 회의에 뒤이은 일정이었다.
당초 이 간담회는 윤 대통령 부부가 동반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현장에서 김 여사에게 바통을 넘기고 빠지면서 여사 단독주재 일정으로 변경됐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자살 유가족이라든지 당사자들, 또 전문가들하고 비공개로 그런 경험들을 같이 공유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정책 제안 같은 것도 발굴하고 하는 간담회가 계획이 돼 있었다”며 “원래는 (대통령 부부) 동반으로 생각을 했었는데 대통령께서는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진행을 편안하게 좀 하시라’라고 하고 영부인께서 진행을 하셨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김 여사는 이 자리에서 “누구에게나 인생을 살다 보면 찾아오는 삶의 위기, 어려움이 저에게도 왔었고 그로 인해 저 역시 몇 년 동안 심하게 아팠었다”며 “깜깜한 밤하늘이 나를 향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불안감을 경험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이렇게 밝히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저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며 “정신적으로 어려운 분들께서 편견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이후 참석자들의 정신질환 극복 경험과 건의 사항을 주의 깊게 듣고 “앞으로도 함께 뜻을 모아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 배우자로서 역할을 떠나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로 여러분 곁에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지난해 8월 자살 시도자 구조 경찰관들과의 간담회, 9월 마음 건강을 위한 대화에 이어 이날 세 번째로 정신건강 관련 간담회를 주재하게 됐다.
◆"안 보일 궁리보다 잘 보일 고민을" = 앞서 대통령실은 이달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때 김 여사의 단독일정을 상세히 소개한 데 이어 귀국 후 정책 분야에서도 김 여사의 ‘지분’을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국민제안’ 개설 2년을 맞아 23일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매년 2000여 통 이상 대통령에게 오던 편지들이 더 이상 오지 않아 역설적으로 주목받은 사례도 있다”며 김 여사가 주도한 개식용 금지법을 예로 들었다.
대통령실은 “세계 각국의 외국인들이 개 도살과 식용을 금지해달라는 편지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꾸준히 보내왔었다”며 “그런데 올해 2월 별칭 ‘김건희법’으로 불리는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관련 민원 편지들이 완전히 사라져 한 통도 오지 않고 있어, 대한민국의 변화가 세계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졌고, 국가 이미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 이미지 재고 노력이 대통령 배우자 활동의 정상화를 위한 과정이라는 기류다. 사법리스크가 쌓여가고 있지만 임박한 선거가 없는 만큼 기존의 ‘로우키’ 전략을 유지할 의미가 없다는 판단도 읽힌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 배우자가 해야 할 기본적인 역할조차 하지 않고 언제까지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며 “김 여사는 늘 보이는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 만큼 안 보일 궁리를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긍정적으로 보일지를 고민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도 김 여사가 문제가 되지 않을 범위 내에서 활동반경을 회복해 가는 것에 긍정적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알리고 싶은 것보다 국민 듣고 싶은 내용을” = 그러나 외부에서는 김 여사를 지나치게 노출·부각시키는 게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수영 디 아이덴티티 소장은 “김 여사 행보 띄우기는 국민의 눈에 어떻게 들려 해도 득점이 어렵다”며 “특별감찰관이나 제2부속실 같은 제도적 보완 얘기는 쏙 들어간 상태라 명분도 약하다”고 봤다.
최 소장은 “미셸 오바마가 ‘비만아동’, 낸시 레이건이 ‘마약퇴치’에 집중했던 것처럼 김 여사도 활동분야를 한정해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광폭행보와 과대홍보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여사 이미지를 재고하겠다는 의도는 알겠지만 성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김 여사의 어제 간담회 발언은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나도 피해자’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이해될 수 있다”고 봤다. 윤 실장은 “대통령실이 알리고 싶은 내용에 골몰할 게 아니라 국민이 듣고 보고싶어하는 내용이 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