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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과 소득불평등, 그리고 한국경제에서 고려할 점

2024-06-28 13:00:02 게재

역사상 유례없는 급격한 세계화의 진전으로 인해 지난 수십년간 전세계는 막대한 양의 상품과 생산요소를 서로 교류하며 경제성장을 도모해왔다. 그 결과 국가간 소득격차 또한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선진국을 중심으로 많은 국가들은 국내적으로 지속적인 소득분배의 악화를 경험했다.

수출주도산업 자원집중과 이를 통한 효율적인 기술혁신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이른바 소득불평등이 경제성장의 필요악이라는 일부 견해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소득불평등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점에 공감한다. 소수집단에 부가 지나치게 집중된 사회에서는 경제주체들이 비생산적인 지대추구 행위에 몰두하게 되면서 경제체질이 부실화되기 때문이다. 또 소득불평등을 개선하려는 정부정책들은 결과적으로 소비와 투자유인을 억제하는 제한과 규제로 작용해 오히려 경제성장이 저하되며 불평등이 지속되는 불평등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자유무역 확대가 소득불평등 초래

경제발전단계와 소득불평등 사이에 구조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가설은 1950년대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에 의해 제시됐다. 산업구조전환의 초기과정에서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소득분배가 악화되다가 일정수준 이상으로 소득이 늘면 이후 소득불평등이 개선된다는 주장이다. 농경사회에서 근대산업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가 벌어지지만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생산성과 임금이 오르면서 전체적으로 소득불평등이 완화된다는 논리다.

이후 기술진보와 고도화된 산업화를 통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오히려 소득분배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토마스 피케티 등 여러 학자들은 쿠즈네츠 가설이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의 소득불평등은 그 국가가 처한 경제환경 및 구조 변화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소득불평등은 교육, 인구구조, 산업구조, 생산요소의 분배, 소득재분배 정책, 통화정책 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제도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간의 급격한 소득분배 악화는 이 같은 전통적인 요인의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변화에 기인했다기보다 기술진보와 이로 인한 국제무역전략 및 패턴의 변화가 보다 직접적이고 지대하게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즉, 본격적인 자유무역의 확대가 국가간 경제규모와 생활수준의 격차를 급속도로 줄인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국내 소득불평등에도 막대한 변화를 초래한 것이다.

개발도상국은 무역을 통해 생산능력과 고용기회를 늘려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함과 동시에 소득분배 개선을 경험했다. 반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자유무역을 통해 더욱 높은 경제성장이 가능했지만 동시에 소득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불평등 이력현상이 나타나 새로운 형태의 쿠즈네츠 곡선이 부활했다는 견해가 대두됐다.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중상주의적 보호무역 관행이 부활한 것은 소득분배 악화와 이로 인해 경제성장 동력이 약화되는 국내문제를 타개하려는 시도와 무관하지 않다.

자유무역의 확대가 소득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기존 실증분석 연구들이 분석대상 국가와 시기 및 국제화 정도에 따라 소득불평등이 개선 또는 악화될 수 있다는 상반된 결과를 보고하면서 이 문제는 학자들 사이에서 중요한 논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에 대한 한가지 설득력 높은 해석은 두 변수 간의 관계가 일국의 경제발전 정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생산기술은 교육수준이 높은 숙련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숙련편향적 기술진보(skill-biased technological innovation) 형태로 발전돼 왔는데 상대적으로 자본과 숙련노동자들이 풍부한 선진국의 경우 자본집약적 또는 숙련노동집약적인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하면서 자본가나 숙련노동자의 소득을 더욱 늘려 미숙련노동자와의 임금격차를 확대시킨다.

반면 자본이나 숙련노동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미숙련노동집약적인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데에 자원을 집중하면서 미숙련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해 전체적인 소득분배가 개선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출위주 성장전략이 불평등 해소 못해

국제무역의 확대와 소득불평등이 경제발전단계에 따라 서로 다른 구조적인 관계를 보이는 것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림> 은 1960년대부터의 자료를 이용해 한국의 무역개방도와 소득불평등지수(EHII, Estimated Household Income Inequality)의 변화를 보여준다. 농경사회에서 경공업 위주의 산업사회로 이행하며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던 구간에서는 무역개방도가 60% 수준까지 비약적으로 상승하며 국제무역이 경제성장을 견인한 주요한 원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시기 소득불평등지수도 빠르게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개발도상국으로서 한국이 경공업 위주의 미숙련노동집약적인 제품을 주로 수출하면서 미숙련노동자의 생산성과 임금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 기간동안 소득불평등지수와 무역개방도는 강한 음(-)의 상관관계를 나타내 국제무역의 확대가 한국의 소득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무역이 본격화되고 중화학공업과 첨단산업이 수출의 중심이 되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 이후 기간에서는 총생산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100%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소득분배구조는 다시 악화되는 추세가 나타난다. 즉,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시기에는 수출 위주 산업에 종사하는 자본가와 숙련노동인구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상승해 두 변수 간에 강한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한국에서 최근 소득불평등이 악화되는 이유를 단순히 국제무역의 양적 확대와 수출주도산업으로의 자원 및 보상의 집중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시대착오적인 수출 위주의 경제성장전략 및 낙수효과의 신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 첨단기술을 활용한 수출주도기업이 미숙련노동집약적 과제를 해외에서 아웃소싱하면 일부 산업이 몰락하게 되고, 노동의 산업간 이동이 원활하지 않는 경우 사회전체적으로 일자리가 급격히 사라지면서 소득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 더욱이 인공지능기술이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에서는 신기술이 미숙련 노동자를 직접 대체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소득불평등이 더욱 악화되며 이로 인해 궁극적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제한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경제환경과 소득불평등 간의 관계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적절하고 효과적인 정책을 적극 활용해 소득분배구조를 개선하고 이를 통해 보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김영세 성균관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