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CEO의 책임과 임원보수의 한계
테슬라 주주들이 지난달 14일 텍사스 오스틴 테슬라 본사에서 열린 연례 주주총회에서 480억달러나 되는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의 급여 패키지를 재승인했다. 이번 주주 투표는 델라웨어 법원이 2018년 테슬라 이사회가 승인한 머스크 CEO의 인센티브 패키지를 무효화한 지 몇달 만에 다시 이를 뒤집은 것이다.
2018년 이사회가 승인한 머스크의 인센티브 패키지 급여는 56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동종업계 평균치보다 무려 250배나 많은 것이다. 이 패키지는 머스크가 매출 또는 이익 벤치마크를 달성하고 회사의 주식가치를 6500억달러로 늘리면 수백억달러 상당의 스톡옵션을 제공하는 내용이다. 머스크가 테슬라에서 월급과 보너스를 받지 않는 대신 회사 매출과 시가총액 등 목표달성 여부에 따라 12차례에 걸쳐 최대 3억300만주 규모의 스톡옵션을 받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를 전부 받을 경우 총가치는 2018년 당시 기준 560억달러로 추산됐다.
이러한 목표의 대부분은 2018년 계획이 승인되었을 때만 해도 달성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됐다. 당시 테슬라는 첫번째 중간 가격의 자동차인 모델3 세단을 생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테슬라의 사업은 본격화됐고, 이 계획에 따라 머스크가 옵션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시장가치는 목표치인 6500억달러를 상회했다.
테슬라는 지난 4월 이 패키지의 가치를 449억달러로 평가했다. 한때 560억달러까지 치솟았지만 올해 들어 지금까지 테슬라 주가가 약 25% 떨어지면서 함께 하락했다.
델라웨어주 매코믹 판사의 무효 판결
처음 머스크의 급여 패키지가 논란이 된 것은 2018년 테슬라 주주인 리처드 토네타란 인물이 회사를 고소하면서다. 회사 주식 9주를 소유한 토네타는 “CEO가 자신의 보상계획에 대한 승인 절차를 통제했으며, 이사회가 주주들의 뜻을 왜곡 승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테슬라가 머스크에게 부여한 급여 패키지가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보상이라며 이는 부당한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월 델라웨어주 매코믹 판사는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의 지배주주이고 따라서 보상계획은 공정성 전체 심사기준에 따라 평가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기준은 피고인이 보상계획이 공정하다는 것을 입증할 책임이 있음을 의미하며, 피고인은 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머스크가 여러 이사회 구성원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면서 “현재 약 480억달러 가치로 평가되는 전체 급여 계획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또한 “테슬라가 주주들이 이번 거래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음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머스크는 자사가 새로 설립할 법인을 텍사스로 이전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법원의 판단에 불복했다. 머스크는 판결 이후 델라웨어와 델라웨어 법원시스템을 비판하며 기업들이 다른 주에 법인을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월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스페이스X가 텍사스로 회사를 이전했다”고 발표하면서 “귀하의 회사가 아직 델라웨어에 법인화되어 있다면 가능한 한 빨리 다른 주로 이전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주주들은 이날 급여 패키지와 함께 회사의 법인을 델라웨어에서 테슬라 본사와 주요 공장이 있는 텍사스로 이전하는 또 다른 의제에 찬성표를 던졌다.
주주총회에서 보상안 재승인
테슬라 이사회는 항소심에서 유리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보상안을 재승인하는 안건을 주총 투표에 부쳤다. 이사회는 “머스크가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동차 제조업체를 장기적으로 계속 이끌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2018년 급여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당위성을 주장했다.
이사회 의장인 로빈 덴홀름은 “머스크가 어려운 재정적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보수를 얻었으며 회사는 2018년 계약 조건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주주들의 지지를 모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머스크는 선구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명을 실행하고 당신을 위해 특별한 가치를 창출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야심찬 비즈니스 결과를 달성할 수 있는 입증된 능력을 갖춘 CEO” 라고 말했다.
여러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공개적으로 급여 패키지에 반대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연금기금인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도 반대했다. 이들 기관투자자들 중엔 거액의 급여를 준다고 해서 머스크가 자기 소유의 다른 벤처기업보다 테슬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보장하지 못했다며 반대했다. 머스크는 이미 로켓 제조사 스페이스X, 소셜미디어서비스 X, 최근 60억달러를 모금한 xAI라는 인공지능 스타트업 등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일부 투자사와 억만장자 투자자 론 배런 등 다른 주주들은 재승인을 지지했다. 테슬라는 또 기관 투자자들 못지않게 상당수의 개인 주주들도 적극 접촉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주주총회에서 투표할 확률이 낮기 때문에 테슬라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투표를 독려하고 공장견학을 유도하기도 했다.
개인 주주들이 머스크를 지지한 것에는 보상 캠페인 부결 시 머스크가 회사를 떠날 위험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들은 머스크가 없는 테슬라의 성장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주주총회에서 보상 패키지 승인에 대한 찬반 표결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개인 소액 주주들의 지지가 가결을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머스크 CEO에 따르면 투표를 위임한 소액 주주의 약 90%가 보상안을 포함한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 투표는 CEO의 책임과 임원 보수의 한계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를 기대했던 투자자들에게 좌절감을 안겼다. 그 결과는 또한 머스크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머스크는 테슬라 지분의 약 13%를 보유하고 있는데, 급여 패키지 지분으로 20%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 머스크가 X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처분한 테슬라 지분을 회복하는 셈이다. 머스크는 테슬라를 AI 같은 최첨단 기술의 선두주자로 키우기 위해서는 자신이 최소한 25%의 의결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테슬라 이사회는 이번 주주 투표를 통해 항소심에서 유리한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주총회 가결로 머스크가 당장 이 돈을 받게 된 것은 아니지만 주주들이 “테슬라에 머스크가 필요하다”고 뜻을 모아줬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테슬라에서 머스크 CEO의 입지를 재확인했을 뿐 아니라, 향후 보상안의 적절성을 가리는 소송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머스크가 약속한 테슬라의 비전
이번 주주들의 승인에 대해 머스크는 크게 반색했다. 머스크는 급여 패키지 안건 통과에 대해 주주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만약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면 테슬라 외부에서 인공지능 및 로봇공학 제품 개발에 나섰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주총 무대에 올라 “저는 그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고 했다. 그는 또 나중에 자신에게 주어진 급여가 스스로 약속한 테슬라의 비전에 어떤 차질도 빚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주주들에게 테슬라에 전념하겠다고 약속했다. 머스크는 5년 동안 보상 패키지의 주식을 팔 수 없다면서 주주들을 안심시켰다. 그는 “내가 5년 동안 보유해야 하는 것이 ‘테슬라 주식’이라는 점은 강조할 만하다. 사실 (급여가) 현금도 아니고, (현금으로) 당장은 바꿀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주총 결과에 대해 “주주들이 머스크의 리더십을 선택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투자회사 차이캐피털의 크리스토퍼 차이 사장은 “사람들은 머스크를 믿기 때문에 테슬라에 투자하고 있다”며 “머스크에게 보상을 주고 전진하자는 것이 주주들의 결론”이라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