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감당못해 대도시 떠나는 캐나다인들
토론토 밴쿠버 등 탈출해 중소도시로 … 민심도 트뤼도 총리에 등돌려
대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 세계적 인구이동 추세다. 경제 문화 교육 등 여러 측면에서 대도시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캐나다 상황은 조금 다르다. 최대 도시 토론토나 밴쿠버를 탈출해 중소도시로 가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주택문제도 큰 요인 중 하나다.
토론토 1베드룸 월세 약 250만원
캐나다 온타리오주 주민 51%는 ‘정부가 주택문제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타리오부동산협회(OREA)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주택문제가 악화된 원인으로는 건축비 상승, 이민자 증가, 금리인상, 기술직 인력부족 등을 꼽았다.
부동산중개업체 렌털스(Rentals.ca)는 지난 5월 말 기준 캐나다의 평균 월세가 2200캐나다달러(이하 달러, 약 220만원)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작년 5월 대비 9.3% 오른 것이다. 1베드룸 기준 밴쿠버의 평균 월세는 2671달러(약260만원)로 가장 비쌌고 토론토도 2479달러에 달했다. 캐나다 최대도시 토론토의 2베드룸 평균 월세는 3310달러(330만원)였다.
캐나다부동산협회(CREA)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평균 부동산 매매가격은 48만1700달러(4억8000만원)에서 69만8500달러(약 7억원)로 21만6700달러(45%) 상승했다. 같은 기간 광역토론토는 76만2000달러에서 111만3600달러로 46% 뛰었다.
캐나다중앙은행은 지난 6월 초 기준금리를 4년여 만에 처음으로 0.25%p 내렸다. 올해 안에 최소 1~2차례 더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부동산업계는 기준금리가 본격 내려가기 시작하면 토론토의 평균 주택가격은 수년 안에 200만달러(20억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부동산중개업체 주카사 관계자는 “금리인하 속도에 따라 주택가격 상승세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며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고가주택이 대폭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집값 싼 앨버타주나 대서양 연안으로
눈길을 끄는 대목은 토론토 외곽의 소도시 주택가격은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명문 워털루대학 등이 있어 교육도시로 명성을 얻은 키치너-워털루 지역은 지난 5년 동안 주택가격이 55%나 올라 토론토는 물론 캐나다 평균을 10%p 앞질렀다.
부동산업체 주카사 소속의 한 중개인은 “고객 가운데는 키치너-워털루 지역 안에서 이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1시간 거리의 광역토론토에서 이주해 온 경우”라고 전했다.
실제로 토론토와 가까운 나이아가라 지역은 지난 5년간 주택거래가격이 평균 40만1000달러에서 63만3000달러로 58% 상승했다. 이밖에 오타와(53%), 해밀턴(49%), 구엘프(48%) 등 토론토 중심의 온타리오 남부 여러 도시의 집값 상승률은 캐나다 주요도시 가운데 상위 10위권에 들었다. 새로 캐나다에 정착한 이민자들이나 토론토에서 탈출한 시민들이 인근 중소도시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인구이동은 주 경계도 넘고 있다. 치솟는 부동산가격에 신물이 난 많은 캐나다인들이 앨버타와 대서양 연안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부동산업체 리맥스(RE/MAX)의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대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주택 구매자들이 토론토 등 대도시를 떠나 다른 주로 몰려가고 있는데 주택시장 현실을 고려하면 실수요자들이 온타리오주에서 다른 주로 이사하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리맥스 보고서는 지난해 거의 6만명의 부동산 주택 실수요자들이 캐나다 중서부의 앨버타뿐만 아니라 대서양 연안의 노바스코샤, 뉴브런즈윅,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로 이주했다고 분석했다.
인구이동 추세는 연방통계청의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캐나다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온타리오주의 주요 도시는 2022년 7월 1일부터 1년간 주 사이의 이주로 인구 순손실을 기록했다.
토론토는 같은 기간 40세 미만의 시민 9만3000여명이 위성도시 또는 다른 주로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1만6000명 이상이 다른 주로 이주했는데, 20세에서 39세 사이의 젊은층 가족이었다. 밴쿠버도 사정은 비슷했다. 반면 원유 등 자원이 풍부한 앨버타주는 저렴한 주택을 강점으로 주 사이 인구 이동에서 가장 큰 유입을 기록했다. 앨버타주의 캘거리, 에드먼튼 등은 한해동안 거의 4만6000명의 인구 순 증가세를 보였다. 에드먼튼의 한 부동산중개인은 “지난해 부동산 거래 고객 가운데 약 40% 정도가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올해 1분기 에드먼튼의 평균 주택거래가격은 44만2200달러다.
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런트 박사는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3년 동안 온타리오에서 대서양 연안의 뉴브런즈윅주로 넘어간 사람들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 연 평균 1000 명 가량 더 많았다고 전했다. 최근 들어 그 추세는 극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21년 1분기부터 2023년 1분기 사이에 총 2만5000여명의 온타리오 주민이 뉴브런즈윅으로 이주한 반면 뉴브런즈윅에서 온타리오로 간 주민은 8113명에 불과했다.
세일런트 박사는 “사람들에게 가족과 지역사회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결정은 쉽지 않다”면서 “하지만 그것이 집을 확보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이후 뉴브런즈윅의 주택과 아파트 비용이 극적으로 상승했지만 여전히 다른 주와 비교하면 저렴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밴쿠버는 200만달러, 미국은 50만달러
최근 나온 미국인구 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12만6000명 이상이 캐나다에서 미국으로의 이주를 선택했다. 이는 전년보다 70% 증가한 수치다. 남쪽으로 향한 이주자 가운데 5만3000명은 캐나다 출신이고, 4만6000명은 원래 미국인이었다. 나머지 약 3만명은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가 미국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민전문 변호사 렌 손더스는 CTV뉴스와 인터뷰에서 “캐나다를 떠나 미국으로 내려간 이주자들은 주로 LA나 뉴욕,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 근처 작은 마을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밴쿠버와 45분 거리에 있는 미국 워싱턴주의 작은 마을에서는 50만달러짜리 집을 살 수 있지만 밴쿠버에서 북쪽으로 8㎞ 거리에 있는 집은 200만달러 이상을 줘야 한다. 이 변호사는 주택문제가 젊은이들의 미국 이주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나이 든 사람들도 미국 이주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민 변호사는 “시니어들은 캐나다 대도시에 있는 집을 처분한 뒤 집값이 더 싸고, 생활비도 보다 저렴한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텃밭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자유당정부
지난 6월 25일 캐나다 정치권에 파란을 일으킨 연방하원의원 보궐선거 결과가 나왔다. 토론토-세인트폴스 지역구에서 30년 만에 보수당이 승리한 것이다. 이 선거구는 그동안 자유당에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 지난 총선에서는 자유당 후보가 24%p 차이로 압도적 승리를 거뒀던 지역구다. 하지만 이번에는 42.1%를 얻은 보수당의 돈 스튜어트 후보가 자유당 후보를 1.6%p 차이로 이겼다. CBC뉴스는 “부실한 주택정책에다 급격한 물가상승 등에 뿔난 유권자들이 저스틴 트뤼도 총리에 등을 돌린 것”이라고 풀이했다.
트뤼도 총리는 선거 후 “유권자들의 성난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겠다”고 몸을 낮췄다. 하지만 피에르 포이리에브 보수당 대표는 “이번 총선 결과는 주택공급 부족과 치솟는 범죄율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자유당정부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라며 “조기총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방 자유당정부는 주택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해 향후 7년간 390만채를 공급하겠다고 밝히는 등 부동산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공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조립식 모듈주택 도입도 거론된다. 하지만 캐나다는 올 1분기에만 24만여명의 인구가 늘어 총인구는 4100만명을 넘었다. 영주권자는 12만여명 증가했다.
트뤼도정부는 이민자를 더 늘려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갖고 있지만 부동산과 물가대책 등 정부 정책에 부정적인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