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의료전달체계 ‘문지기’ 산재전문의사 도입해야
보상위주에서 사회복귀 중심으로 전환 필요
산재보험, 다른 사회보험과 기능적 분업 강화
#. 장 모씨는 뇌내출혈을 업무상 질병으로 승인받았다. 근로복지공단(공단) 순천병원에서 재활의학과 전문의와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이 참여한 맞춤형 집중재활치료를 받았다. 또한 순천병원은 공단 순천지사 사회복귀코디네이터와 함께 산재근로자와 사업주 상담을 진행하고 작업환경평가, 직업복귀소견, 직장적응훈련, 직장동료화프로그램을 지원해 장씨의 원직장 복귀를 도왔다.
2000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 재활 근거가 마련되고 2006년부터 재활중기계획을 수립·시행되면서 산재근로자의 사회복귀지원을 위한 제도 발전, 직업복귀가 개선됐다. 그 결과 산재노동자 신체기능회복률은 2006년 72.2%에서 지난해 84.6%로, 직업복귀율도 같은 기간 45.5%에서 70.6%로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이사장 박종길)은 4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서울에서 산재보험 60주년 기념, 사회복귀지원과 산재의료재활의 새로운 도약과 전환을 위한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산재보험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1964년 7월 1일 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이다. 시행 당시에는 광업·제조업 500인 이상 사업장의 근로자 8만여명에게 적용됐다. 현재는 모든 업종의 1인 이상 사업장은 물론, 택배기사 등을 포함한 노무제공자까지 그 적용범위가 확대돼 2100만여명의 국민에게 적용된다.
이용재 호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산재보험 사회복귀지원서비스는 요양 초기부터 사회복귀까지 재활과 직장복귀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면서 “사회보장제도라는 큰 틀에서 산재보험과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 다른 사회보험 제도 간 기능적 분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산재근로자 재활 및 직업복귀 촉진 방안으로 “요양-보상-재활(원직+타직+사회복귀)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사례관리형 지원조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요양-보상-재활 관련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통합관리 시스템과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종옥 연세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산재근로자 사회복귀지원서비스 의료전달체계 발전방안’ 발제에서 우리나라 일반 의료전달체계 문제점으로 △진료 의뢰서 남발로 전달체계 무력화 △의원과 병원급 의료기관의 경쟁 △의료 자원의 도시지역 편중 △일차의료기관에 대한 불신 등을 꼽았다.
원 교수는 “이는 산재 의료전달체계에도 영향을 미쳐 일차의료기관의 산재 의료기능 부재와 의원에서 입원시설 보유가 요양기간의 장기화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고가 검사 증가, 일반의료의 문제가 산재의료로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원 교수는 독일의 산재 의료전달체계를 소개했다. 독일은 2022년 3708명(병원 964명, 개원 2744명)의 산재전문의사(DA)가 산재 의료전달체계의 문지기(gate keeper) 역할을 한다. 여기에 산재직영병원(급성기 10개, 직업병 1개, 재활 2개, 외래 1개)와 산재계약병원(수술 566개, 재활 163개, 외래재활 629개)이 있다.
독일의 산재전문의사는 산재환자의 치료 및 재활과정에서 모든 의료적 처치 행위의 통제관리권이 있고 직접 치료도 가능하다. 산재전문의사의 관리가 필요한 산재환자는 △1일 초과되는 휴업이 필요한 환자 △1주일 이상 내과적 처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 △약이나 보조제 처방이 필요한 환자 △산재 사고로 인한 질병의 재발 환자 등이다.
독일의 병원은 기본적으로 외래환자를 보지 않고 의원은 입원치료를 하지 않는다. 병원과 의원의 역할 분담이 분명해 서로 경쟁 대상이 아니다.
원 교수는 “독일 일반의료와 산재의료의 차이점은 산재전문의사의 유무”라며 “독일의 일반병원은 포괄수가제(DRG)에 따라 의료비를 지급하는데 비해, 산재병원은 환자의 등급에 따라 일당으로 의료비를 지급함에 따라 더 많은 의료자원을 투입할 수 있어 우수한 진료 제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재전문의사는 일반 업무에 대한 수당 외에 산재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경우 더 높은 진료비(약 30%)를 제공한다”면서 “이 때문에 산재전문의가 되려고 하는 의사가 많다”고 덧붙였다.
원 교수는 독일 산재의료시스템을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면 “산재직영병원과 지정병원 및 의원의 기능적 특화가 필요하다”면서 “현재 5000여개에 달하는 산재지정의료기관의 수를 관리 가능한 정도로 축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수한 의료기관을 지정병원으로 영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 교수는 “산재직영병원과 지정병원에 산재환자를 전담할 수 있는 의료인력인 ‘산재전문의사’를 양성하는 것 필요하다”면서 “이들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진료비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더 많은 의료자원을 투입해 최선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