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과’ 제안, 한동훈 외면으로 무산?
여권 관계자 “문자 보냈지만 주인공이 여사 되는 걸 우려해 무시”
한 “사적인 방식으로 공적이고 정무적인 논의를 하는 것은 부적절”
지난 총선 때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대국민사과 의사를 무시한 것으로 나타나 파장이 일고 있다.
5일 김건희 여사 사정에 밝은 한 여권 관계자는 ‘김 여사가 한동훈 위원장에게 사과 의사를 전달했다’는 전날 방송 내용과 관련해 “내용은 재구성한 것이지만 사실인 것으로 안다”며 한 위원장이 이를 무시했다는 주장을 확인했다. 이 관계자는 ‘대국민사과를 했으면 선거에 도움이 됐을 텐데 왜 무시했나’는 물음에 “여사가 사과를 하는 순간 주인공이 한동훈이 아닌 여사가 되기 때문 아니겠는가. 한 위원장은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한 전 위원장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선긋기를 했다는 뜻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김 여사 때문에 여권 내부에서 명품백 문제가 금기시돼 왔다고 알려졌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 역시 “사실이다”며 “여사가 평소에 한동훈을 얼마나 동생처럼 아꼈는지 다들 알잖나. 그런 분이 그렇게까지 사과할 뜻을 전했는데 얼마나 상처가 크겠나”고 했다.
대표적인 용산발 총선악재로 꼽혔던 명품가방 논란을 한 전 위원장이 일부러 방치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전당대회를 앞두고 단독선두에 서 있는 한 전 위원장으로서는 ‘배신자’ 프레임이 한층 무겁게 조여드는 상황이 됐다.
◆“윤 대통령, 뒤늦게 알고 격노” = CBS라디오는 4일 ‘박재홍의 한판승부’ 프로그램에서 올해 초 김 여사가 한 전 위원장에게 보냈다는 메시지 내용을 보도했다. 내용을 입수한 김규완 논설실장이 재구성한 바에 따르면 김 여사는 올해 1월 18~21일 사이에 한 전 위원장에게 텔레그램 메신저로 긴 문자를 보냈다.
김 여사는 “한동훈 위원장님, 최근 저의 문제로 물의를 일으켜 부담을 드려 송구하다”며 “몇 번이나 국민들께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대통령 후보 시절 사과를 했다가 오히려 지지율이 떨어진 기억이 있어 망설였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에서 필요하다면 대국민 사과를 포함해 어떤 처분도 받아들이겠다”며 “사과를 하라면 하고 더한 것도 요청하시면 따르겠다. 한 위원장님의 뜻대로 따르겠으니 검토해 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한 전 위원장은 이 메시지를 이른바 ‘읽씹(읽고도 무시하는 행동을 뜻하는 비속어)’을 했다는 게 보도의 요지다.
김 실장은 “두 분이 ‘형수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운 분이니까 이런 문자를 주고 받을 수 있고 그 이전에는 더 많은 문자와 대화를 주고받은 사이”라며 “여사의 입장에서 굉장히 모욕을 느꼈다라고 이렇게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한 전 위원장이 고의적으로 김 여사의 메시지를 외면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 위원장은 올해 1월 18일 김 여사 논란과 관련해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하는가 하면 이튿날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경률 비대위원도 앞서 같은 달 8일 ‘김건희 리스크’를 언급하며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같은 달 17일 ‘마리 앙투와네트’ 발언을 했다. 이후 같은 달 21일 이관섭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한 위워장에게 사퇴를 요구, 논란이 일었던 것과 앞서 김 여사가 메시지를 보낸 시기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김 실장은 “(김 여사가) 개인적으로 친하니까 문자를 보냈는데 대통령이 뒤늦게 이걸 안 것”이라며 “이 지점에서 (윤 대통령이) 굉장히 격노를 해서 1.21 사태로 이어졌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김 실장은 김 여사가 한 전 위원장을 통하지 않고도 사과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에 “사과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1단계에서 문자를 ‘읽씹’을 했으니 거기서 멈칫한 것”이라며 “타이밍을 놓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 “왜 지금 시점에 이런 얘기가” = 한 전 위원장은 5일 오전 용산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조찬회동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왜 지금 이 시점에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의아하다”고 꼬집었다. 한 전 위원장은 “여당 비대위원장과 영부인이 사적인 방식으로 공적이고 정무적인 논의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비대위원장으로서 공적 통로로 대통령실과 소통했다”고 했다. 이어 “총선기간 동안 제가 공적 통로로 어떤 방식으로든 국민의 걱정 덜어드리기 위해 사과 필요하다는 의견을 여러차례 전달했다”며 “CBS라디오에서 방송한 ‘재구성’되었다는 문자 내용은 사실과 다름을 어제 밝혔다”고 말했다. 김 여사 메시지 원문 공개여부에 대해서는 “제가 쓴 문자가 아니니 공개하는 것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캠프도 방어에 나섰다.
앞서 한 후보 캠프는 공지를 통해 “오늘 저녁 CBS 라디오에서 방송한 재구성됐다는 문자 내용은 사실과 다름을 알려드린다”고 했다.
신지호 총괄상황실장은 같은 방송에 출연해 “한 후보는 대통령과 이십년지기지만, 그건 공적인 관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대통령 부인이 여당 대표 격인 비대위원장에게 과거 인연의 연장선상에서 이렇게 보낸 건데, 한 후보는 그게 그렇게 처리돼선 안 되는 문제라고 본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이어 “명품백 사건에 한 후보가 당시 관여돼 있던 것도 아니고, 사과할지 말지 그거는 대통령 또는 김 여사가 판단할 문제지, 비대위원장에게 허락받고 사과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명품백 문제를 사과할지 말지 여부는 여당 비대위원장의 동의를 듣고 하는 건 아니라는 게 제 원론적인 입장”이라고 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