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건설현장 작동
“건설업 특성 고려없이 제조업 안전보건관리체계 적용”
산업안전보건비 부족, 서류중심 위험성평가, 특별안전교육 과다로 관리소홀 … “안전시설·기자재·점검 등 설계단계에 반영해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산재보상(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자는 812명으로 2022년 874명보다 62명 줄었다. 업종별로 보면 건설업에서 356명(43.8%)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제조업(165명·20.3%), 서비스업(140명, 17.2%), 운수 창고 통신업(111명, 13.7%)이 뒤를 이었다.
건설업 사고사망자를 공사금액별로 보면 1억~50억원 미만 공사현장에서 160명(44.9%)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2000만원 미만 51명(14.3%), 120억~800억원 미만 50명(14.0%), 800억원 이상 36명(10.1%), 2000만~1억원 미만 33명(9.3%) 순이었다. 50억원 미만 건설현장이 전체 건설업 사고사망자의 70% 가까이(68.5%)나 차지했다.
상위 5위 재해유형별로 보면 건설업 사고사망자 가운데 떨어짐이 198명(55.6%)으로 절반 넘게 발생했다. 이어 부딪힘(9.8%), 물체에 맞음(7.9%), 깔림·뒤집힘(6.7%), 끼임(5.3%) 순이었다.
최근 5년간 건설업 사고사망자는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사고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 당 산재사고 사망자 수)은 지속적인 감소추세에 있는 제조업과 달리 건설업은 건설경기와 연동해 오르내리는 경향이다.
산업안전상생재단(이사장 안경덕)와 한국건설안전학회(회장 안홍섭)는 4일 경기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24 산업안전보건의 달’ 행사에 참여해 ‘전문건설업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현장 작동성 강화방안’ 주제로 제3차 건설안전 혁신 포럼을 열었다.
건설회사 규모와 건설업 중대재해 통계 비율을 살펴보면 시공능력평가액 100위 이내 기업의 건설현장에서 사고사망자 발생하는 경우는 전체의 20% 미만인 반면 해당 건설사들의 종합건설업 국내 매출 비중은 70%를 상회하고 있다.
정재욱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이를 공사비 대비 사고사망자 비율로 환산하면 100위 초과 건설사가 운영하는 중소규모 건설현장의 중대재해 위험도가 100위 이내 중대형 건설사가 운영하는 중대형 현장보다 10배 정도 높다”고 설명했다.
●실질적인 안전활동보다 서류작성에 급급 = 정 교수는 “우리나라 건설업의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중소규모 건설사·건설현장의 안전수준 역량 제고가 핵심적인 과제”라며 “하지만 현재 안전관련 제도의 주된 적용 대상은 대부분 시공능력평가 200위 이내의 중규모 이상 종합건설업 또는 50억 이상 건설현장에 집중돼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문건설업 입장에서는 업종 특성상 부족한 인력과 예산으로 인해 실질적인 안전활동 이행보다는 서류 작성에 급급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이 올해 1월 27부터 5~49인 미만(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됐다. 중대재해법은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정부는 2022년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그 핵심으로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 규율적인 예방체계 확립 등을 제시했다. 위험성평가는 사업주와 근로자가 함께 사업장 내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해 개선 대책을 수립해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최웅길 삼호개발 안전보건팀장은 ‘전문건설업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이행 장해요인 및 개선 방안’ 발제에서 전문 건설현장에서 어려워하는 3가지 사항으로 △전문건설업 산업안전보건관리비(산안비) 및 예산부족 △위험성평가 서류 과다 △관리감독자 안전보건특별교육 시간 과다를 꼽았다.
●위험성평가, 중대재해법 회피 자료로 변질 =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건설공사 발주자가 도급계약 등을 할 때에는 고용부 장관 고시에 따라 사업 규모와 종류별로 정한 요율대로 도급금액 또는 사업비에 산안비를 계상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도급사인 종합건설업체가 전문건설업체와 하도급 계약을 맺을 때는 이 같은 기준이 없다. 다만 원청인 종합건설업체 사규에 따라 통상 전체 공사비의 70%를 전문건설업 안전관리비 대상액으로 0.5~1.97% 수준에서 하청에 지급한다.
최 팀장은 “똑같은 100억원 공사라도 종합건설업 사규에 따라 전문건설업에서 받을 수 있는 산안비는 적게는 3500만원에서 많게는 1억3790만원까지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최 팀장은 삼호개발의 실제 A건설현장의 사례를 소개했다. 종합건설사로부터 A현장은 공사기간 산안비로 1억8200만원이 책정됐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삼호개발이 집행된 금액만도 3억9250여만원이고 올해 1억3500여만원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 단순 계산으로 3억4550여만원이 적자다. 최근 건설업 산안비의 인건비 항목이 늘어나면서 화재감시자, 신호수, 스마트 안전에 대한 추가 비용, 위험성평가에서 정하는 비용 등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 팀장은 “고용부나 검찰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해당 사고원인에 대한 위험성평가가 미흡하면 전체적으로 위험성평가를 안한 걸로 보고 중대재해법으로 기소한다”며 “이에 원청인 종합건설업은 전문건설업에게 모든 발생 가능한 유해·위험 요인을 위험성평가에 반영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대재해법에 따른 처벌의 핵심판단 기준인 위험성평가에는 공사 착공때 초기평가와 매 1년마다 하는 정기평가, 작업 변동시 하는 수시평가, 월·주·일 단위로 하는 상시평가가 있다.
최 팀장에 따르면 보통 1회 위험성 평가는 150~200페이지 분량이다. 1페이지당 3~4건의 유해·위험 요인과 대책이 있어 전체적으로 450~500건이나 된다. 전체 위험요인의 20% 수준인 중점관리사항만 90~160건이다. 전문건설업 안전보건관리자는 작업중지 여부 등을 고려해 1주일 내내 위험성평가만 작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 팀장은 “위험성평가를 재해예방을 위한 활용보다는 중대재해법 회피를 위한 자료로 변질됐다”면서 “현장 안전관리 감독으로 재해예방 활동을 해야 하지만 위험성평가 서류작업으로 현장 관리감독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8개 공종에 특별안전교육 128시간 받아야 = 최 팀장은 관리감독자의 특별안전교육 시간이 많은 점도 지적했다. 건설현장 전체 공사기간 동안 근무자는 현장소장과 공무, 관리, 안전관리자 등이다. 실제 시공직원인 관리감독자는 인사이동이 상대적으로 잦다. 관리감독자는 건설현장 이동할 때마다 특별안전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삼호개발 B현장에서 특별안전교육 대상 주요 공정은 운반용 하역기계 5대 보유, 1톤 이상 크레인 사용 등 8개다. 1개 공정 당 특별교육 법정시간은 16시간이다. 이를 다 받으려면 128시간이 필요하다.
최 팀장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현장소장이 인사이동으로 새로 온 관리감독자에게 주 52시간 근무한다고 할 때 3주 이상을 안전교육에만 매달려야 한다”며 “제조업 같이 한 사업장에서 장기간 근무하는 조건에서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건설현장은 통상 2~3년, 전문건설업은 1년 미만에 끝나는 현장도 많아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해결책으로 △종합건설업인 도급인의 산안비 법적 계상 요율 확대 △중대재해법 수사기관의 위험성평가에 대한 수사 및 기소 방향 재정립 △복합공정의 관리감독자 특별안전교육 시간 단축 등을 제시했다.
●공동안전관리자제도 건설업까지 확대 = 오병한 경기대 건축안전공학과 교수는 정부와 건설업 원·하청이 상생할 수 있는 3가지 모델을 제시했다.
전문건설업은 서류작성 능력과 신청여력 부족 등으로 고용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산업안전대진단, 안전관리체계구축 지원, 클린사업장 조성지원 등 다양한 재정지원사업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문건설업과 고용부와 안전보건공단 간 가교역할을 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원스톱 서비스 기관’을 만들어 정부의 산재예방예산이 잘 투입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오 교수는 정부의 공동안전관리자 지원제도를 건설업 분야까지 확대 시행해 전문건설업 본사에 배치하거나 각 현장마다 배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인건비의 80%를 정부가, 20%는 전문건설협회나 사업주가 부담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올해 4월부터 인건비 부담 등으로 여력이 부족해 안전보건전문가를 채용하지 못하는 50인 미만 소규모 기업들을 위해 ‘공동안전관리자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전문성을 보유한 공동안전관리자가 지역·업종별 협동조합, 협회, 산업단지 관리공단 등 사업주단체에 소속돼 사업장에 대한 지속적 관리가 쉽고 심층적인 컨설팅을 제공하게 된다.
●핵심요인기술법으로 서류 간소화해야 = 두번째 모델로 건설업 위험성평가에 핵심요인기술법을 적극 적용해 서류 간소화를 주장했다.
지난해 5월 고용노동부는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을 고시하고 건설업의 특성을 반영해 최초 평가와 상시평가를 하면 수시·정기 평가를 실시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개정했다. 또한 위험성평가 방법으로 많이 쓰이는 빈도강도법이 복잡한 방식에 따른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위해·위험성수준 저·중·고 3단계 판단법, 체크리스트법, 핵심요인 기술법(OPS·One Point Sheet) 등 다양화 방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났는데도 정부의 지침이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 교수는 “원청인 종합건설업에서 여전히 중대재해법 수사와 기소를 의식해 빈도강도법을 요구하다보니 전문건설업에서는 복잡한 빈도강도법으로 위험성평가를 할 수밖에 없고 초기와 상시 평가만 해도 될 것을 정시와 수시 평가 모두 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정부와 건설업 원청 하청 주체들이 참여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위험성평가에 핵심요인기술법 적극 적용, 최초·상시 평가만으로도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부전문기관 교육, 자격제로 전환해야 = 세번째 모델로 관리감독자의 특별안전교육 시간이 너무 많다는 현장의 지적에 대해서는 외부전문교육기관을 활용한 관리감독자 교육과 관리감독자 자격제 운영 등을 제안했다.
오 교수는 “영국 싱가포르 등은 주로 외부교육기관에서 자격제로 교육을 시켜서 안전보건전문가를 관리감독자로 투입하고 있다”면서 “단기적으로는 현장에서 중복되고 연관성 있는 공정 교육을 통합하면 한 현장 5개 공정이 있는 경우 80시간 특별안전교육을 16시간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재욱 교수는 “산안비는 현재 선진국 건설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예외적인 제도”라며 “산안비 요율 상향의 방법도 있지만 산안비의 개념을 전체적인 안전예산이 아니라 현장의 안전활동을 지원하는 개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전시설, 기자재, 점검 등은 설계단계에서부터 반영해 본 공사비의 일부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