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례 칼럼

선거의 총성과 미국의 종말

2024-07-17 13:00:03 게재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15일의 전당대회를 앞둔 주말 선거유세에서 총격을 당한 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사건으로 미국 대선판이 크게 출렁이고 있다. 트럼프 지지층은 "이 사건으로 선거는 이미 끝났다"며 환호하고, 공화당은 밀워키의 후보 확정 전당대회를 승리의 축제 분위기로 이끌었다. 각 주의 공화당 대표들이 트럼프에게 돌아갈 주 선거인단 수를 외치며 축하를 했고 아들 에릭 트럼프도 플로리다주 당원 대표로 거기에 나섰다.

13일 펜실베이니아주 유세에서 피격 순간 전직 대통령으로 백악관 비밀경호국(SS)의 경호를 받아 엎드렸던 트럼프는 얼굴에 피가 흐르는 순간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 ‘파이트’(fight!)를 외치는 쇼맨십을 발휘했다. 마침 근처에 있던 취재진 가운데 퓰리쳐상 수상 경력의 AP사진기자가 그 모습을 촬영했다.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쥔 그의 사진은 "역사에 남을 장렬한 모습"으로 전 세계에 완벽한 인상을 남겼다.트럼프는 최근에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make를 made로 바꾼 “Made America Great Again”(내가 위대하게 만들었다)를 외치고 있다. 피격 장면은 ‘구국의 영웅’ 버전으로 지지자들을 감동시켰다. 투표에 열성이 없던 중도층까지 11월에 지지표를 던질 것이란 예상이 쏟아질 정도의 장면이었다.

트럼프 피격사건 본질은 총기 폭력

트럼프 유세가 열린 버틀러 시 부근의 20세 백인 남성 주민인 총격범은 보안요원들에게 사살되었다. 그가 등록된 공화당원이란 사실 외에는 범행동기도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수사당국이 “암살 미수”로 규정한 이 사건 직후부터 온라인에는 트럼프에 관한 글과 영상이 평소의 17배나 늘어났다. 자작극설, CIA배후설, 바이든 지시설 등 온갖 “음모론”도 넘쳐난다.(14일 온라인 트래픽 조사업체 ‘피크 매트릭스’조사).

어쨌든 평소 극우파와 총기협회 등에 애정을 보내며 해마다 학교 총기난사, 집단 총격 등으로 어린 생명의 참혹한 희생이 잇따르는 데도 적극적인 총기 옹호론을 폈던 사람이 트럼프다. 바로 그가 미국에 넘쳐나는 총격 희생자가 될 뻔 한 사실은 아니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총격에서 살아남았다고 ‘영웅’이 되는 건 아니다. 자신의 각종 범죄혐의 기소를 ‘정치 공작’으로, 이번 테러도 바이든 진영의 ‘악인’규정과 혐오를 유발하는 가짜 뉴스 살포 탓이라 주장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미국 전역에서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많이 발생하는 집단총격 살인사건들처럼, 결국 이 사건의 본질은 (동기를 알 수 없는 ) 한 청년의 외로운 총기 폭력이며 미국의 고질병이다.

뉴욕타임스가 “20세기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저서”의 하나로 손꼽은 “미국의 종말” (The End of America)의 저자인 작가 언론학자 나오미 울프는 책의 서문 중 “권력이 독재화하는 데 동원하는 열가지 조처”란 장에서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의 행보와 국제적 대응책들이 어떻게 20세기 파시즘과 전체주의 권력자들의 전술을 닮아가는지를 ‘민주주의의 위기’로 분석했다. 이는 민주국가의 종말로 이어진다.

그가 제시한 다원적 민주주의 사회가 독재체제로 돌아가는 과정에는 군중을 동원한 각종 정치 테러와 시위, 히틀러의 선전상 괴벨스를 연구했나 할 정도로 교묘한 정보조작 기술과 인권 탄압의 보안수칙들이 포함되어 있다. 가장 주목할 요소는 기시감이다. 역사에서 차용하기 때문이다.

주먹을 불끈 쥔 트럼프와 휘날리는 성조기의 구도는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아가 1830년 7월 혁명을 그린 명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똑같다. 성조기 대신에 붉은 깃발, 트럼프 대신에 옷깃을 휘날리는 여신상의 차이 뿐, 소름 끼칠 만큼 같다.

총탄이 비켜가서 살아남은 것 만으론 영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2021년 민주주의의 상징인 의사당에 난입하면서까지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불길한 전조증상이다.

“미국의 종말”은 파시즘의 연장선에

울프는 나치의 게슈타포가 오스트리아 총리를 체포후 라디오 소리를 계속 최대로 틀어 고문한 것과 관타나모 수용소의 미군이 아랍 포로들 감방에 밤낮으로 헤비메탈 음악을 틀어 괴롭힌 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시 체이니 부통령이 "미군은 해방군으로 환영 받을 것"이라 말한 것과 나치가 "독일군은 해방군으로 환영받았다"고 선전한 것 등 역사 속 동종 장면을 세밀하게 예시했다. 서로 닮은 듯 다른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극한적 대립과 증오의 '선거 전쟁'도, 2006년 미 의회가 통과시킨 '군사위원회법'이 집권세력이 “적들”을 규정할 수 있게 한 것도 비슷한 사례다.

불과 4개월 남은 미국 대선의 결과가 어찌 되든, 총성은 이미 울렸다. 그 파급 효과를 생각할 때, 미국의 끝없는 총기판매 캠페인과 한국의 어퍼컷 대북전쟁 만은 국민들의 생존을 위해서 제발 빨리 종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언론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