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폭주 권력의 변곡점

2024-07-24 13:00:03 게재

곡선에서 오목이 볼록, 볼록이 오목으로 바뀌는 지점이 있다. 바로 변곡점이다. 하지만 변곡점이 위치한 구간은 얼핏 직선으로 보인다. 변화를 감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기나긴 세월 속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는 역사는 더욱 그렇다. 권력이 정점을 향해 질주할 때 마치 직선 주로(走路)인 듯싶다. 당시엔 모른다. 이미 변곡점을 지났다는 사실을. 꼭지점에 섰을 때야 비로소 깨닫는다. 정오를 지난 태양의 숙명을 말이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검찰의 ‘출장조사’는 폭주하는 권력의 맨 얼굴을 그대로 보여준다. 예고편은 있었다. 23일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된 한동훈씨는 비대위원장이던 지난 1월 “국민 눈높이”를 말했다가 사퇴 위기에 몰린다. 90도 폴더인사로 파국을 모면하지만.

4월 총선에서 여당이 민심의 심판을 받았어도 거리낌이 없다. 5월14일 검찰 고위급 인사를 단행한다.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련 혐의와 고가의 명품백 수수 혐의에 대해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장과 차장 4명이 모두 자리를 떠난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명품백 수수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자마자 보란 듯 인사조치한 거다.

이 총장은 ‘인사패싱’을 당한 후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 수사팀이 재편됐으니 조사 필요성을 검토해 올바른 결론을 내리리라고 믿고 그렇게 지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새로 꾸려진 수사팀은 검찰청사가 아닌 경호처 부속건물에서 비밀리에 김 여사에 대해 12시간 조사를 벌였다. 검찰총장에게는 수사 개시 8시간이 지나서야 보고했다. 수사팀의 ‘총장패싱’이다. 게다가 수사검사들이 사전에 휴대전화를 제출했다고 한다. 채널에이의 보도에 따르면 김 여사가 “조사 사실이 외부로 노출되면 조사를 계속 받기 어렵다”고 했다는 거다.

김건희 여사 특혜조사가 의미하는 것

야당은 “검사가 휴대전화를 압수당한 거다. 공권력의 치욕”이라고 비판했다. 이 총장은 보고 누락과 외부 조사 등 경위에 대해 조사를 지시했지만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진상파악에 응할 수 없다고 맞섰다. 자칫 수사팀의 반발로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거다. 임기가 두 달도 남지 않은 ‘지는 검찰권력’에 차기 총장으로도 거론되는 ‘뜨는 검찰권력’이 맞붙은 모양새이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김 여사에 대한 검찰 기소는 다소 회의적이다. 야당은 특검법을 제출할 태세인데, 윤 대통령의 거부권 카드가 이번에도 통할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한동훈 신임 당대표가 당선 이후 인터뷰에서도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는 거다. 이제 형식적으로는 특검 칼자루가 거대 야당과 여당의 이합집산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민심의 흐름이 좌우할 것이다. 대선에서 그를 지지한 민심은 지금 분노에 찬 목소리로 공정과 상식을 묻는다. 야권 인사를 향한 먼지떨이식 수사와 자신의 가족에 대한 사실상 수사거부를 비교하는 거다. 형평성을 잃은 법은 법이 아니지 않느냐고 따진다. 무엇보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거냐고 묻는다. “명품백이 국가기록물이라서 반환하면 국고횡령”이라고 강변하다가 이제는 “김 여사가 반환하라고 지시했는데 직원이 깜빡했다”고 하니 말이다.

게다가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관련해 주범 권오수 회장을 2021년 12월 기소한 지 2년 반이 넘도록, 또 공판 과정에서 김 여사 가족이 23억원 차익을 챙겼다고 밝히고도 소환하지 못하면서 “절차에 따라 수사 중”이라고 하니 말이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국가만이 안정된 국가”라고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우리는 불안정한 국가인가. 고대 스키타이 왕자 아나카르시스가 “법은 거미줄과 같다. 빈자와 약자는 엉켜 붙잡히지만 부자와 강자는 찢고 나온다”고 탄식한 게 기원전 6세기이다. 세월이 흘러 21세기 한국은 어떤가.

정치인 장기표를 보는 시각과 평가는 다양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최근 병석에서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주목할 점이 있다. 그는 우리 사회의 과도한 양극화를 지적하며 팬덤정치를 ‘무지의 광란’이라 우려했다. 특히 “물극즉반(物極則反), 사물이 극단에 치우치면 반드시 대반전이 일어난다”고 썼다. 정치권력도 검찰권력도 똑같이 해당되지 않겠나.

민주사회 항상성과 반작용 주체는 민심

1993년 나온 ‘브레이크 없는 벤츠’에서 저자인 전직 검사는 “권력의 하수인”임을 고백했다. 30년이 흐른 지금 어떤가. 정치검찰은 스스로 권력 중심부가 됐고 폭주기관차처럼 내달리고 있다. 이는 진정 국민의 선택인가 방관의 결과인가. 지금이 변곡점일까 꼭지점일까

프랑스 생리학자 끌로드 베르나르가 발견한 인체의 자동조절시스템 ‘항상성(恒常性)’이 사회에도 적용될까. ‘80대 20의 균형’으로 유명한 빌프레도 파레토는 “균형상태의 사회체계가 인위적 힘으로 수정 당할 때 현실적이고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리려는 반작용이 일어난다”고 했다.

분명한 것은 민주사회에서 사회적 항상성과 반작용 시스템의 주체는 결단하는 민심일 것이다. 권불오년(權不五年)만 되뇐다고 정상을 회복하는 건 아니다.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