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팔던 ‘픽사’, 브랜드가 되다
컴퓨터산업과 영화산업 경계에서 자신만의 이야기 만들어 … 돈보다 브랜드가치 중시
1995년의 픽사와 2024년의 픽사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의문을 품은 채 영화관으로 향한다. 영화관에 걸린 ‘인사이드 아웃 2’의 포스터를 유심히 살핀다. 디즈니와 픽사 로고가 똑같은 크기로 나란히 붙어 있다. 스마트폰을 꺼내 1995년에 개봉한 ‘토이스토리’의 포스터를 검색한다. ‘월트디즈니 픽처스가 제공하는 토이스토리’라는 문구가 보일 뿐 픽사 로고는 없다. 다시 옛날 포스터를 샅샅이 훑는다. 왼쪽 바닥 한구석에 픽사 로고가 사실상 숨어 있다. 왜 그럴까.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픽사의 시작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픽사의 전신은 조지 루카스 감독이 설립한 영화사 ‘루카스필름’의 컴퓨터그래픽 기술 담당 부서다. 1979년 7월 신설된 부서 ‘그래픽스 그룹’은 몇년 지나지 않아 매각 대상으로 시장에 나온다. 조지 루카스가 이혼 소송에 휘말리면서 비용을 충당하느라 현금이 될 만한 사업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1984년 루카스필름이 ‘그래픽스 그룹’을 매각하기 위해 만난 대상은 필립스와 제너럴모터스(GM)였다. 필립스는 이미지 데이터를 의학용으로 처리할 수 있는 그래픽스 그룹의 원천기술에 관심을 가졌다. 제너럴모터스는 그래픽스 그룹의 모델링 기술을 자동차 디자인에 활용하려는 심산이 컸다. 서명 직전까지 갔지만 결국 두 기업은 범용성이 낮다고 판단했는지 그래픽스 그룹 인수를 포기한다.
스티브 잡스가 인수했지만 영업 실패
주인을 찾지 못하던 그래픽스 그룹은 1986년 1월 새로운 협상자를 맞이한다. 애플에서 쫓겨나 야인이 된 스티브 잡스였다.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던 스티브 잡스는 1000만달러에 그래픽스 그룹을 매입한다. 500만달러를 자본금으로 투자하고 나머지 500만달러는 5번에 걸쳐 수표를 써줬다. 지분 70%는 자신이 소유하고 나머지는 직원들이 갖는 조건이었다.
잡스가 소유주가 된 회사의 새로운 이름은 ‘픽사(Pixar)’였다. 픽사라는 이름은 그래픽스 그룹이 개발한 컴퓨터에서 따왔다. 실사 이미지와 특수효과 이미지를 합성해 디지털 영상을 구현할 수 있는 기기 명칭이 바로 ‘픽사 이미지 컴퓨터’였다. ‘그림을 만들다’는 가상의 영어단어 ‘pixer’를 떠올리고 e를 a로 재치있게 바꿨다. 잡스가 픽사를 인수한 이유도 이 ‘이미지 컴퓨터’가 가진 가능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잡스가 픽사를 인수한 후 이미지 컴퓨터는 고작 300대 팔렸다. 전문가용 컴퓨터였음을 고려해도 초라한 수치다.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잡스가 쏟아부은 사재만 해도 5400만달러에 달했다. 애플에서 나오면서 현금화한 자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당시 픽사의 최고경영자였던 에드 캣멀은 자신의 책 ‘창의성 주식회사(Creativity Inc.)’에서 “때가 되면 잡스에게 수표를 받으러 가는 일이 가장 고역이었다”고 술회했다.
스티브 잡스가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그저 끌어안은 것은 아니다. 잡스는 1991년까지 3번 픽사 매각을 시도했다. 잠재 인수자 중 하나는 마이크로소프트(MS)였다. 잡스는 자존심만은 지키겠다는 의도로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 깎지 않았다. 결국 협상은 무산됐다.
이때 손을 내민 기업이 디즈니다. 디즈니는 이미지 컴퓨터 회사 ‘픽사’가 아닌,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의 잠재력을 높이 샀다. 1991년 9월 6일 디즈니는 장편 컴퓨터 애니메이션 작품 3편을 픽사와 함께 제작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제작비용을 디즈니가 대고 배급과 마케팅까지 맡는 대신 판권을 독점했다.
작품은 픽사가 만들지만 애니메이션 수익의 12.5%만 픽사 몫으로 돌아왔다. 디즈니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계약이 성사된 이유는 당시 잡스가 그만큼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이 계약을 바탕으로 4년이 지나고 세계 최초의 장편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이 세상에 나온다. 1995년 11월 개봉한 픽사의 ‘토이스토리’다. 토이스토리는 픽사가 만들었지만 계약에 기반해 포스터에는 ‘월트디즈니 픽처스가 제공하는 토이스토리’라는 문구만 들어갔다.
‘토이스토리’는 북미에서만 1억9200만 달러 수익을 거뒀다. 픽사는 토이스토리의 세계적 성공에 힘입어 기업공개(IPO)까지 단행한다. 몸집이 커진 픽사는 디즈니와 계약을 갱신하기 위해 재협상에 나섰다. 마침내 1997년 2월 24일 픽사와 디즈니가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다음날 뉴욕타임스 기사 제목은 ‘디즈니, 픽사와 10년 동안 5개 영화 제작 계약’이었다. 제목만 보면 두 회사가 10년 동안 5개 애니메이션을 함께 만들기로 파트너십을 맺었다는 평이한 내용처럼 보인다. 기사를 꼼꼼히 살펴보면 “두 회사는 계약에 따라 앞으로 개봉작을 ‘디즈니-픽사’ 작품으로 소개하며 단일 브랜드를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문장이 있다. 픽사가 디즈니와 재협상에 돌입하며 관철하려 한 조건의 핵심이다.
돈보다 브랜드 권리 확보에 사활 걸어
내친김에 계약서 원문을 살펴보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개된 디즈니와 픽사의 계약서 부칙에는 브랜드·크레디트와 관련된 조항이 있다. 원문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공동제작 계약은 영화, 상품, 2차 저작물에서 픽사 브랜드와 디즈니 브랜드를 동등하게 취급한다. 픽사 로고와 디즈니 로고는 지각적으로 동등한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지각적으로 동등한(perceptually equal)’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풀어 설명하자면 “각 로고의 스타일이 다르더라도 두 로고는 동일한 크기로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재협상 과정에서 픽사가 디즈니와 공동 브랜드 권한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나섰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도 재협상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디즈니가 영화 수익의 50%를 주겠다고 한발 양보했지만 공동 브랜드 권리를 원했던 픽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결렬될 위기도 있었다. 눈에 보이는 큰돈을 앞에 두고도 픽사는 왜 브랜드 권리에 집착했을까. 단기적으로 자금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장기적으로 픽사가 상징하는 가치의 기반을 구축하는 게 보다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필자는 캘리포니아 에머리빌에 위치한 픽사 스튜디오 본사를 가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동심의 세계를 화려하게 드러내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픽사는 외딴곳에 떨어진 학술연구소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픽사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정체성을 회사 위치에서부터 드러내고 있다.
기술기업이지만 영화를 만드는 픽사는 실리콘밸리 중심부와는 거리를 두려고 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지만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픽사는 시끌벅적한 할리우드와도 떨어져 있으려 했다. 픽사 캠퍼스는 초창기부터 픽사가 의도적으로 형성하려 했던 기업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픽사는 컴퓨터산업과 영화산업의 경계에 서서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그동안 선보인 작품에서 볼 수 있듯 픽사는 철저히 이야기에 뿌리를 둔 회사다. 픽사가 1990년대 초반 토이스토리를 제작하며 내세운 제1원칙은 “이야기가 왕(Story is King)”이라는 것이다.
이 원칙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인사이드 아웃 2’의 감독 피트 닥터는 “픽사는 감독들에게 자신에 대한 영화를 만들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무엇을 보기를 원하는지 짐작하는 방식 대신 감독 자신의 인생 경험과 성찰을 통해 픽사가 전하려는 이야기가 탄생한다는 뜻이다.
기술기업이자 예술기업이 되려 한 픽사
모처럼 아이들과 손잡고 가서 본 ‘인사이드 아웃 2’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작품을 만들며 고생한 모든 이들의 이름이 나왔다. 제작에 직접 관여한 사람뿐 아니라 행정, 마케팅, 캠퍼스 미화를 담당하는 사람까지 수많은 이름이 차례로 등장한다. 기술기업이자 예술기업이 되려고 노력한 픽사답게 여전히 창작집단과 관리집단의 경계에 서서 회사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30여년 전, 한 회사는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디즈니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자신들이 쌓아올린 모든 가치를 내걸고 협상에 나섰다. 훗날 이 회사는 디즈니에 버금가는 ‘브랜드’가 된다. 우리는 지금 월트디즈니 픽처스가 제공하는 인사이드 아웃 2가 아닌 ‘디즈니-픽사’의 ‘인사이드 아웃 2’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