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헬기’ 의료진·소방만 문제라는 국민권익위
“서울대·부산대병원 직원 등 규정 위반, 감독기관 통보”
대한응급의학회 “응급환자 살리려 노력한 사람 모욕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헬기 이송 특혜 논란과 관련해 의료진과 소방공무원에 대해서만 잘못을 지적해 비판을 샀다. 응급의학계에선 정치권에 대해선 별말 못하면서 환자를 살리려 노력한 사람들에겐 모욕을 주느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23일 권익위는 브리핑을 열고 이 전 대표의 헬기 이송 관련 신고사건 처리 결과를 추가 설명했다. 전날 권익위 전원위원회에선 지난 1월 이 전 대표의 피습 후 부산대병원에서 응급헬기를 이용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된 과정에 특혜가 있었는지가 안건으로 논의됐다. 그 결과 권익위는 부산대병원과 서울대병원 의료진과 부산소방재난본부 직원이 공무원 행동강령을 위반했다고 보고 감독기관에 통보하기로 결정했다.
정승윤 부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전 야당 대표(이재명)와 그 비서실장인 국회의원(천준호)에 대한 신고는 국회의원에 대한 행동 강령 위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종결했으며 청탁금지법 위반 사실에 대한 자료도 부족해 종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와 천 의원에 대해선 별다른 조치가 없었지만 이들을 지원한 공무원들은 문제가 됐다. 정 부위원장은 “규정대로 이송해 헬기를 이용했는지, 전원이 돼 치료를 받았는지 등을 본 결과 공무원들이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봤다”면서 “서울대병원은 워낙 오고 싶은 사람이 많아 전원 매뉴얼이 있는데 매뉴얼 위반 사실이 확인돼 특혜 제공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응급헬기 관련해서도 “부산대병원에서 권한 없는 의사가 부산재난소방본부에 헬기를 요청했고 소방본부는 헬기 출동 관련 매뉴얼을 위반해 헬기를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부산대병원은 이권 개입 및 알선 청탁으로 행동강령 위반이고, 소방본부는 규정 위반해 (헬기를) 제공했기 때문에 특혜를 제공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대표와 천 의원은 국회의원 신분으로 행동강령이 적용되지 않았지만, 다른 공무원들은 행동강령 위반으로 소속 기관의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이에 대해 해당 기관들은 일단 신중한 입장을 냈다. 소방청 등은 “아직 권익위로부터 통보받은 내용이 없다”면서 “추후 통보가 오면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의학계에선 부글부글 끓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응급의학회는 권익위 결정에 대한 성명을 내고 “권익위의 결정에 유감을 표하며, 향후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 응급의료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응급의학회는 “제1야당 대표와 비서실장은 법 조항 미비를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도 못하면서, 응급환자 진료 과정의 하나인 전원에 관여하고 이송을 시행한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전문의,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부산소방재난본부 소방공무원에게는 징계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결정이 과연 형평성에 맞으며 공정한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거리의 특정 병원으로 전원을 요청해 사회적 논쟁을 일으킨 정치권에 대해 올바른 판단과 따끔한 질책으로 국민들이 더욱 안전하고 건강한 응급의료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결정을 권익위가 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며 최선을 다한 소방공무원과 의사에게까지 이러한 모욕과 사회적 비난, 나아가 그분들의 공직 생활과 교직, 병원 생활에 불이익을 주는 징계까지 기어이 주려 하는 의도나 이유가 과연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도 23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누구를 위한 권익위인지 모르겠다”면서 “의료진들은 치료를 하려고 한 거고, 환자가 원하니까 전원을 요청한 것뿐인데 사소한 어떤 절차를 지키지 못한 점 때문에 징계를 받고 경고를 받아야 되느냐”고 되물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