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뉴노멀, 뉴애브노멀
2024년 정치권에선 기존에 거의 못 보던 일들이 그냥 일상이 되고 있다.
국회 개원 후 첫 관문인 원구성 협상. 기존엔 여야 간 협상과 힘겨루기, 여론 눈치보기 등 복합변수 속에서 으레 수개월이 걸렸다. 의석이 많은 쪽도 여론의 눈치를 봤고 의석이 적은 쪽도 어느 정도 실속을 챙겼다. 이번엔 달랐다. 압도적 의석의 민주당은 22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속도전을 벌였다.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을 포함한 핵심 상임위원장직 11개를 차지한 후 나머지 상임위원장직을 가져가든지 말든지 식으로 국민의힘에게 던져줬다.
법안 처리 과정 등에서 반쪽 국회, 반쪽 상임위는 흔하디 흔하다. 수적 열세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에 불참하는 것으로 항의의 뜻을 표하면 야당 의원들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법안을 통과시킨다. 말만이라도 달래거나 협상하는 정치적 제스처 자체가 사라졌다.
탄핵 청원 청문회. 예전엔 30일 동안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도 대부분 심사를 안했다. 특정 청원에 대한 청문회가 열린 적은 당연히 없다. 이번엔 달랐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관련 청원이 주목받자 “국민의 요구에 답해야 한다”(정청래 법사위원장)며 전례 없이 청원 관련 청문회를 두차례나 열었다.
이뿐일까. 압도적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키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회에서 재의결하면 부결되는 악순환을 국민들은 벌써 10번 넘게 보고 있다. 지금 국회에선 방송4법에 대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필리버스터가 진행중이다. 필리버스터 중단 후 법안 통과가 차례로 이뤄지고 있는데 거부권 행사가 확실시된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횟수는 도합 19번이 될 전망이다. 이 역시 이례적이다.
정치권에선 이런 현상을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표준)’이라고까지 부른다. 기존 정치문법 상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이 흔하게 벌어져 붙인 이름일 것이다. 분명 과한데 과하지 않게 느껴지고, 여론의 역풍이 불 만도 한데 불지 않는 기이함도 이런 이름이 붙게 된 이유일 것이다.
정치 팬덤, 진영 간의 극한대결 속에서 ‘팔이 안으로 굽는’식의 여론이 과대노출되면서 중도 성향의 여론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국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비판여론이 일지 않는 건 윤 대통령 탓이 크다. 윤 대통령이 거의 ‘최종 보스’격으로 국민 불신을 받다 보니 민주당의 행태는 그 그늘에 가려지곤 한다.
그러나 최근의 현상들을 뉴노멀이 아니라 뉴애브노멀(new abnormal, 새로운 비정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당장 여론으로 표출되지는 않아도 깨어있는 시민이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다.
과연 새 혼돈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선거 때마다 심판의 칼날을 내리쳤던 집단지성의 무서움과 마주하기 전에 여야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싶다.
김형선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