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면기 칼럼
천조국 대 천조국, 길들이기 대 길들여지기
올해 미국의 국방비는 8860억달러다. 우리 돈으로 1000조원을 훌쩍 넘는 천문학적 액수다. 그래서 미국을 ‘천조국(千兆國)’이라고 부른다. 2위에서 11위까지를 합한 것보다 많은 규모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미국을 군사적으로 압도할 나라는 당분간 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또 다른 의미의 ‘천조국(天朝國)’이다. 역사적으로 중국 왕조를 천자가 다스리는 왕조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말이다. 월등한 국력을 배경으로 주변지역을 번속국으로 아울렀던 소위 ‘중국중심적 질서’는 이와 같은 중국 패권의 역사를 상징한다. 그랬던 중국이 21세기 들어 ‘위대한 중화’의 부흥을 외친다. 천조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살 수는 없는 법, 미국은 중국의 거친 도전을 허용할 생각이 없고 중국은 미국의 패권을 나누거나 넘어서려고 한다. 중국의 실질국방비 역시 이미 천조(千兆)를 넘겼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양국의 군비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대만 남중국해 등지에서의 신경전이 잦아지면서 무력충돌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힘센 자들의 폭력과 위선, 예외주의가 먹혀드는 게 국제정치다. 천조국 대 천조국의 대치구도는 우리에게 전대미문의 도전을 안기고 있다. 기계적 중립도, 한쪽 역성을 들고 나서는 것도 불가능하거나 모험적 선택이 될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미중 무력충돌은 악몽같은 시나리오다. 한반도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리면 평화통일의 꿈도 신기루처럼 사라질 공산이 크다. 니체가 말하듯 위태롭지만 건너지 않으면 안되는 역사의 ‘심연(深淵)’과 맞닥뜨린 셈이다.
관성적 사고, 범상한 각오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이 심연을 건널 수 없다. 두 천조국의 프레임에 빠지지 않으면서 그들을 다루는 주체적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생존과 번영을 기약할 수 없다.
식민사관 망령, 한국정치의 아편되나
현 정부 들어 소위 뉴라이트 역사관이 내외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런 주장에 경도한 사람들은 ‘인간’이 삭제된 식민지근대화론 등을 들먹이며 외세의 수탈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군국주의 영광을 찬미하며 반공반북을 내세우는 일본 우익의 논리와도 닮은 데가 있다. 우리가 중국봉쇄의 최전선에 서야 된다는 착시를 불러오기도 한다. 한국사를 사대와 열등성으로 매도했던 식민사관의 유령을 되살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집권세력이 뉴라이트적 사고에 몰입해 미일의 이익에 우리 국익을 종속시키고, 정당한 발언권조차 포기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점은 특히 우려할 일이다. 막대한 미국 무기를 사주면서도 미국의 대통령실 도청을 얼버무리고, 독도근해에 일본 자위대 진입을 허용하고 일본군 위안부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등 역사문제에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등의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천조국 대 천조국의 변국(變局)에서는 “누구의 말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 “적대세력이 힘을 합하도록 몰아가지 말라”는 권력의 명제에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정반대의 길을 고집한다.
“미국은 여전히 ‘미숙한 강대국’으로 남아있다.” ‘미국 길들이기’를 쓴 미국 국제정치학자 월트(Stephen M. Walt)의 지적이다. 로마 이래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천조국 미국도 자기 마음대로 국제정치를 쥐락펴락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된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은 말이다.
아시아 역사의 중심에 있던 중국도 시종일관 완력으로 주변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국력의 소장에 따라 천조의 개념 역시 확장 축소되었고, 조선 같은 주변국이 천조 중화를 차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난 반세기 한국은 이전 역사와 비할 수 없는 국력과 외교자산을 축적해왔다. 이제는 강대국의 힘과 지배논리에 순치되었던 오래된 익숙함을 버려야 한다. 역사적 사례를 찾아가면서 그들을 길들여 갈 수 있는 책략을 짜내야 한다. 학계는 국민적 자신감을 훼손하고 국론분열을 조장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극복할 사론을 내야 한다. 역사적 허무주의와 냉소주의가 우리 국가전략의 토대를 허물기 전에 제국적 극우적 사관이 아편처럼 한국정치를 괴사시키기 전에 서두를 일들이다.
괴물과 싸우겠다고 괴물돼서는 안돼
국민들이 무엇보다 걱정하는 것은 집권세력의 편향된 역사인식이 중러와 북한 등에 대한 감정적 적대정책에 불을 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우리의 이익이 다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미국에 부종(附從)하고, 북중러를 적대하는 외교는 하지하책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신원식 국방장관 등 국방수뇌부는 한미일 유사동맹론을 고집하며 미국과 일본을 불러들여 그들을 굴복시키겠다는 무모함을 서슴지 않고 있다. 북한을 괴물처럼 낙인하고 대북전단, 확성기 방송과 오물풍선의 충돌을 방관하고 있다. 군사적 방법으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뒤에 도사린 강대국 정치에 길들여진 광기가 섬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