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네오나치들의 준동과 내슈빌 시민들의 대안행동

2024-07-30 12:59:58 게재

미국 남부 테네시주 내슈빌은 컨트리음악의 본고장으로 ‘음악도시(Music City)’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수십곳의 컨트리음악 공연장과 세계 최대 규모 음악박물관 중의 하나인 ‘컨트리음악 명예의 전당(Country Music Hall of Fame)’, 워너뮤직 등 초대형 음반사들과 레코드 스튜디오들, 주요 음악단체 사무실이 내슈빌에 몰려있다.

카우보이 복장을 한 관광객들이 라이브 뮤직을 즐기는 곳으로 유명한 이 도시에 최근 뜻밖의 이유로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바로 백인우월주의 네오나치단체 회원 수십명이 지난 몇주 동안 내슈빌 시내에 공공연히 집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7월 6일 네오나치그룹 ‘애국전선 (Patriot Front)’ 회원들이 내슈빌의 대표적인 관광객 밀집 지역 브로드웨이에 나타났다. 비록 소수였지만 남부연합기를 흔들고 나치식 경례와 나치 슬로건을 외치면서 시내 한복판을 행진하는 모습은 충분히 사람들의 우려를 살 만했다. 남부연합기는 남북전쟁 당시 노예해방에 반대하던 남부군 총사령관 리 장군이 사용하던 전투 깃발이다. 이후 미국 극우집단 ‘쿠 클럭스 클랜(KKK)’이 사용하면서 극우 인종차별 백인우월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네오나치들은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다양성은 백인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포용성은 백인을 배제하는 것이다”, “공평성은 백인이 가진 것을 훔쳐가는 것이다”라는 주장이 실린 전단지를 나눠주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세워 “유대인이냐”고 위협적으로 묻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불과 일주일 후인 14일에는 ‘고임디펜스리그(Goyim Defense League)’라는 네오나치그룹이 내슈빌 도심 안팎에서 또 혼란을 일으켰다. 행진에 참가한 한 백인우월주의자는 지역주민의 얼굴을 때리고 들고 있던 나치깃발대로 찔러 체포되기도 했다. 7월 15일에는 고속도로 오버패스에 나치를 선전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다음날인 7월 16일에는 내쉬빌 시의회가 주관하는 시민공청회에 약 30여명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나타나 유대인 성소수자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 구호를 외치면서 회의를 방해했다. 같은날 이들은 유대교회당 앞에서 시위를 하려다 저지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멀리 플로리다, 콜로라도 및 캐나다 일부 지역에서 원정을 와 내쉬빌에서 약 105㎞ 떨어진 켄터키주의 한 마을에 임시숙소를 정해 놓고 내슈빌에 모여들고 있다.

공화당 정책이 극우단체 결집 부추겨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내슈빌에 결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월에도 ‘피의 부족(Blood Tribe)’이라는 네오나치단체 회원 20여명이 검은 복면을 하고 나타나 나치 깃발을 흔들며 내슈빌 다운타운에서 행진을 했다. 이 그룹은 6월 초에는 사우스다코타 주의회 앞에 나타나 나치깃발을 흔들며 무력시위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네오나치의 등장은 비단 네슈빌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슈빌뿐 아니라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대중 앞에 대범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사우스다코타주 의사당 앞에서 열린 나치집회뿐 아니라 디트로이트에서는 히틀러의 생일 축하 메시지가 빌보드 전광판에 올라오기도 했고, 위스콘신주립대학 화이트워터 캠퍼스 기숙사 건물에 나치 상징인 스와스티카가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보통 일회성 이벤트로 끝났다. 반면 수주 동안 계속되고 있는 내슈빌의 상황은 왜 이 평화로운 음악도시에 극단주의자들이 모여들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미국 내 극우혐오 단체들의 활동을 추적하고 있는 ‘남부빈곤법률센터(Southern Poverty Law Center)’에 따르면 작년 한해 동안 미국 내 백인우월주의단체들이 50% 증가하면서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는 극우단체 수가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다가오는 선거를 앞두고 백인우월주의단체들이 세를 늘리고 회원들을 동원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한 행동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한다.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극단주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존 루이스 교수는 “중요한 것은 이런 극단주의그룹들이 대담해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주류화되고 있는 더 광범위한 질병의 증상”이라고 말한다.

남부도시 중 리버럴한 내슈빌이 타깃

지난 몇년 동안 공화당은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주들에서 여성의 낙태권과 트랜스젠더의 성전환 의료서비스를 제한하려는 정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또한 공립학교에서 성소수자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려고 한다.

이런 공화당의 우파정책에 고무받은 신나치 극우단체들은 점점 더 대담하게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소수자집단을 위협하고 역사의 시계를 돌리려는 시도에 힘을 실어주려고 한다.

인권단체 ‘테네시 평등 프로젝트(Tennessee Equality Project)’의 크리스 샌더스는 테네시주 내 네오나치의 존재에 대해 “테네시주의 정치적 분위기가 그들의 존재와 활동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남부 주들처럼 공화당이 주의회와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테네시주의 정책 또한 여성 성소수자 유색인종과 이민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흑인민권운동 여성운동 성소수자운동 등 지난 수십년 간 성취한 제반 권리의 향상을 되돌리려는 시도다.

이런 상황에 고무된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더 대담하게 공개적으로 나타나 소수자들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네오나치가 공개적으로 나타나 소수자들을 위협하는 행동을 할 때 공공정책 측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지난 2월 내슈빌에 네오나치가 복면을 쓰고 나타나 행진하기 바로 사흘 전인 2월 14일 테네시 주의회 하원은 공립학교에서 성소수자들의 상징인 프라이드 깃발을 금지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이렇게 테네시주 전체가 보수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리버럴한 테네시의 주도(州都) 내슈빌이 네오나치의 타깃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내슈빌은 그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몇주에 걸친 네오나치 출현에 내슈빌 시민들은 마치 “포위 공격을 받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내슈빌 시민들이 극단주의자들의 위협에 움추러들지 않고 이에 맞서는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요일인 7월 21일 내슈빌 시내 바이센테니얼공원에 약 400명의 시민들이 모여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인종혐오와 증오에 맞서 긍정적인 대안 메시지를 제시하기 위한 평화시위를 벌였다.

해시태그 ‘#NashvilleTogether’로 행사를 조직한 ‘대(大)내슈빌 유대인 연맹(Jewish Federation of Greater Nashville)’은 나치 어젠다를 홍보하려는 사람들이 퍼뜨리는 편협하고 위험한 선전에 맞서 인간의 품위와 존엄을 옹호하기 위해 모였다고 밝혔다.

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은 “혐오세력이 내슈빌을 대표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은 내슈빌에서 환영받지 않는다는 점을 시민들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나왔다”고 밝혔다.

내슈빌 시의회는 시민들의 이런 움직임에 화답해 경찰이 백인우월주의 증오단체에 가입하거나 인종차별, 여성혐오, 성소수자 혐오 등을 옹호하는 휘장을 표시 또는 게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과거 일부 백인경찰들이 인종차별 극우단체인 KKK의 비밀조직원으로 활동하다 덜미를 잡힌 여러 사례들에 비추어 볼 때 이런 법안이 꼭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크다.

남수경 뉴욕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