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칼럼

지속가능경영의 실질적 이슈는 공시 대응과 공급망 관리

2024-07-31 13:00:01 게재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매직이 신기루처럼 사그러들고 있다. 환경과 사회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ESG 투자와 경영을 과장해 강조하던 노력들은 법규의 철퇴와 이해관계자의 감시로 한풀 꺾인 모양새다. 이젠 오히려 그린워싱(greenwashing) 관행에서 가능한 한 말을 아끼는 그린허싱(green-hushing)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2050년 순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넷제로(net zero) 목표를 선언한 기업 중 그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과학적 방법과 기간별 성과 및 수정 계획을 밝히지 않는 기업이 태반이다. 스위스 기후금융 컨설팅회사 사우스폴(South Pole)은 2024년 보고서에서 그린허싱이 이젠 뉴노멀(new normal)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후변화 대응과 소통에 관한 설문조사에 응답한 기업의 44%가 외부 소통이 최근 더 어려워졌으며 58%는 소통이 줄었다고 보고했다.

이런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공시의무화가 강화되고 있다. 기업의 환경 및 사회성과 정보공시는 이해관계자들의 알 권리 충족과 동시에 ESG 투자와 경영 의사결정 최적화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규화를 통한 강제공시를 서두르는 것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공시의무화는 공익을 지키고 이해관계자를 보호하며 사회를 보다 정의롭게 하는 당연한 조치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강제공시 강화가 환경 및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이나 기관들에게 최소한의 공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안전한 대피처(safe harbor)를 제공하기도 한다. 공시뿐 아니라 지속가능경영 활동에 관한 규제 역시 기업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이끌어내기보다는 최소한의 면죄부를 제공하는 부작용을 가지기도 한다.

공급망에 있는 중견중소기업도 규제 적용

하지만 환경 및 사회적 활동과 성과는 이익을 감소시키는 사회적 비용 또는 외부효과(externalities)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에 사회 공동의 가치추구를 위해 강력한 법규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국제회계기준의 기후변화공시기준(S2)이나 최근 유럽연합(EU) 의회가 확정한 공급망실사지침(Supply Chain Due Diligence Directive)은 ESG 정보 공시와 환경 및 인권에 관한 공급망 감시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전세계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날 것으로 예측된다. EU를 비롯한 선진국 시장에 수출하거나 글로벌 기업에 납품하는 공급업체가 주를 이루고 있는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이런 공급망 규제와 공시 강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나 정책입안자들이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중소기업들에 대한 영향이다. 국제회계기준 S2를 받아들여 한국 기업에 적용될 기후공시기준이나 EU의 공급망실사지침 등에 있어서 적용 범위와 시기에 있어서 규모가 큰 기업들에게만 적용되거나 또는 규모순으로 순차적으로 적용된다. 따라서 기업들은 적용을 연기 또는 면제받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중소기업은 적용 배제를 요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속가능경영의 실질적 핵심 이슈는 공시시스템 구축과 공급망 관리이며 향후 법규와 글로벌 기업의 전략도 이 두가지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어차피 공급망을 타고 중소기업에도 적용될 것이다. 따라서 규모와 상관없이 공시와 공급망 규제 및 압력 대응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ESG 투자와 경영이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고 미 대선에 트럼프가 당선되면 흐름이 바뀌고 압력도 약해질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은 버려야 한다. 미국으로부터의 영향은 주로 법규 제정보다는 글로벌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전략 실행으로부터 우리나라 기업에 전달되는 공급망 압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유럽 국가들이 자신들의 환경 및 사회적 가치 활동에 비해 한국 기업이 낮은 환경 및 사회 비용 부담으로 가격경쟁력을 유지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 공시와 공급망 법규를 끝없이 생산해 낼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비용지출 때문에 불리해진 EU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에 환경비용 부담의 차액을 관세로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가 좋은 예다. 이 제도는 대기업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향이 그대로 글로벌 기업 공급망에 있는 중견 중소기업에 전달된다.

경제질서 실종될수록 규제압력 커질 수도

글로벌 ESG 동향은 그린워싱과 허싱, ESG 투자와 경영의 실효성, 객관적 성과측정 결여 등의 도전을 받고 있다. 경제강대국들의 자국중심주의와 리더십 부재로 경제질서가 실종될수록 거세질 규제와 압력에 대응할 우리 기업들이 전략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최근 생물다양성에 관한 보고 기준과 규제가 강화될 조짐을 보인다. 생물다양성 측정과 보고에는 문제가 많지만 그렇다고 규제와 압력이 약해지지는 않는다. 어차피 지속가능성은 명분보다는 경쟁력과 전략의 이슈다.

김종대 SDG연구소 소장 인하대학교 ESG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