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 칼럼

‘검은 금요일’의 증시와 정치

2024-08-05 13:00:03 게재

지난 2일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에 코스피지수가 100포인트 넘게 폭락하는 ‘검은 금요일(블랙 프라이데이)’ 장세가 나타났다.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주가가 큰폭으로 떨어지고 코스피 시가총액이 78조원 증발했다.

‘검은 금요일’ 장세는 서울 여의도 증시에서만 있지 않았다. 지근거리인 국회와 용산 대통령실 등 정치권에서도 적잖은 급락장이 연출됐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야당의 탄핵안 발의는 18건, 이중 7건은 22대 국회에서 나왔다.

민주당은 국민 1인당 25만원 지급법안을 단독 처리했다.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도 본회의에 상정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맞섰다.

이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전망이다. 극단의 대결정치로 민생은 뒷전에 밀렸다. 반도체법 등 성장동력 관련법의 발이 묶였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두달 동안 여야 합의로 처리된 민생·경제 법안은 0건이다.

정치판 돌아가는 데서 희망과 비전을 보기 힘들면 경제심리에 악영향을 미친다.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1~5월 34개국 국민 4만56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현 경제상황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한국은 “나쁘다”는 응답이 82%나 됐다. 나이지리아(89%) 아르헨티나(87%) 튀니지(86%) 가나(84%) 튀르키예(83%)에 이어 6번째로 높았다. 부정적 답변의 평균은 64%였다. 한국인의 경제상황 인식이 실제보다 훨씬 부정적이었다. 세계적으로 여당 지지자들의 긍정평가 비율이 높았는데 한국은 그마저 25%에 그쳤다.

극단의 대결 정치…급락하는 정치신뢰

언제까지 다수결로 법안을 단독 처리하고, 필리버스터로 맞서고,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텐가. 작금의 정치권 행태는 정치혐오를 넘어 정치무용론을 잉태시킨다. 현 정부 출범 당시 국민의 정치신뢰지수를 100으로 하면 지금 지수는 얼마일까. 그동안 정치신뢰총액은 얼마나 증발했을까.

이는 여러 기관들이 주기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와 정당 지지도로 가늠된다. 정치신뢰지수가 내려가고 정치신뢰총액이 증발한 만큼 유권자들은 해당 정당과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을 것이다. 집토끼 산토끼 구별을 떠나 열혈 극성팬덤만 의식해선 정치신뢰지수를 높이기도 정치신뢰총액을 늘리기도 힘들다.

7654명을 뽑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104명(1.4%)이 지원했다. 그나마 지원자 절반이 서울 빅5 상급종합병원에 몰렸다. 필수의료 분야 지원자가 없는 곳이 부지기수다. 전공의 장기공백은 기정사실화됐고 정부가 당초 의료개혁 목표로 삼은 지역 필수의료부터 무너질 판이다.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도 확산일로다. 모기업 큐텐 계열사인 인터파크와 AK몰로 번지며 피해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가 한 일은 5600억원 유동성 지원과 상임위원회 긴급 현안질의 정도다.

정부와 국회는 재발방지 대책과 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마땅하다. 온라인 플랫폼업체들의 에스크로(은행 등 제3자가 결제대금을 보관하고 물품 배송이 완료되면 판매자에게 대금 지급) 의무화를 법제화해야 한다. 결제자금은 다른 자산과 구분해 등록된 별도 계좌에서 관리하며 정산 용도로만 쓰도록 규정해야 한다.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가 주창하는 ‘먹사니즘’과 대통령실 및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강조하는 ‘국민 눈높이’의 접점을 모색하자. 서로 상대방이 잘못하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상생하기 위한 정치복원이 요구된다. 구호만이 아닌 현실적 대안을 갖고 대화 테이블에 앉아 의료파행 해결, 25만원 민생지원금 지급, 국민연금 개혁 방안 등을 놓고 의논해 절충하자.

정치 복원해 정치신뢰·주가총액 늘려야

대통령실의 증시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윤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1월 2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증시 개장식에 참석했다. 주가 상승을 의미하는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서 2025년 도입할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약속했다. 보름 뒤 다시 한국거래소를 찾아 민생토론회를 주재하고 증권거래세 인하 및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 한도와 비과세 혜택을 늘리기로 했다.

2일 주가가 급락하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미국에서 경제지표가 잘 나오지 않았고 장외에서 주가가 많이 내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일시적 현상으로 조금 지나면 회복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증시 주가지수만 중요한 게 아니다. 정치신뢰지수 회복이 절실하다. 파리올림픽에서 땀 흘리며 선전해 극한대결 정치와 무더위에 지친 국민에게 감동을 준 선수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정치가 국민과 민생을 돌봐야지 국민이 더 이상 정치를 걱정하지 않아야 한다.

양재찬 가천대 겸임교수 경제저널리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