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젬픽(비만치료주사제)’이 장악한 도시, 우리의 미래인가
미 켄터키주 볼링그린 주민 4% 이상 비만치료 주사 … 블룸버그 “전세계에 벌어질 일 예고”
# 미국 켄터키주 볼링그린(Bowling Green)에 사는 40대중반 여성 마리 엘리스는 몇해 전만 해도 120㎏의 비만이었다. 간질환 가족력이 있는 그는 그동안 유행했던 다이어트란 다이어트는 모조리 시도해봤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약 1년 반 전 담당의사가 당뇨·비만치료 주사제 ‘마운자로(Mounjaro)’ 처방을 내렸다. 이를 맞은 엘리스는 곧 36㎏을 뺐다. 달라진 건 그뿐만 아니다. 10대 후반부터 흡연자였던 그는 마운자로를 맞은 이후 더 이상 흡연욕구에 시달리지 않는다.
엘리스의 가족도 기적같은 효과에 주목했다. 남편은 물론 같은 동네 사는 사촌도 마운자로와 경쟁관계에 있는 당뇨·비만주사제 ‘오젬픽(Ozempic)’을 맞고 있다. 아들과 며느리는 체중감량효과가 더 강력한 ‘위고비(Wegovy)’를 애용하고 있다.
# 볼링그린에서 자란 캔디 그레이는 20대 때 뇌졸중으로 부모를 여의었다. 2022년엔 50대와 60대 초반의 두 오빠가 한달 간격으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당시 그레이의 몸무게는 약 93㎏이었고 혈압은 높았으며 당뇨병 전단계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레이는 오젬픽을 처방 받았다. 6개월 만에 체중이 13.6㎏ 줄었고 검사결과도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비만은 질병”이라며 “비만을 치료하는 것은 고혈압을 치료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 최신호에 따르면 이들이 사는 볼링그린은 쉐보레 콜벳을 생산하는 제너럴모터스(GM) 조립공장이 있는 곳이자 20세기 중반 작가 겸 음식평론가 던컨 하인즈가 태어난 곳이다. 그의 이름을 딴 식음료 브랜드가 유명하다. 켄터키주에서 3번째 큰 도시이지만 인구는 7만4000명에 불과하다. 10년 전만 해도 볼링그린 외곽에 대규모 농장이 있었다.
그런 도시가 미국에서 비만치료제를 사용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이 됐다. 보험사 처방전 데이터를 수집하는 ‘퍼플랩(PurpleLab)’에 따르면 켄터키주는 미국에서 체중감량제를 처방받은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그중 볼링그린은 지난 1년여 동안 전체 주민의 최소 4%가 이를 처방받았다. 브루클린이나 뉴욕, 마이애미 지역의 처방률은 1%가 안된다.
게다가 이는 보수적인 추정치다. 퍼플랩은 보험적용이 되는 오리지널약품만 추적한다. 따라서 볼링그린 내 소규모 약국이나 온라인 원격의료, 메디컬스파 등에서 판매되는 복제약품을 보험이 아닌 자비로 구매할 경우 이를 포착할 수 없다. 이를 고려하면 볼링그린 주민들의 체중감량제 애착도는 훨씬 크다고 추정할 수 있다.
BBW에 따르면 볼링그린 소재 체중감량 클리닉인 ‘닥터스 다이어트 프로그램’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이 지역 약국들에는 체중감량제 재고가 있는지 묻는 전화가 끊임없이 울린다. 볼링그린 시내 드러그스토어 ‘월그린’의 약사보조 브리아나 툴리는 “오젬픽과 위고비, 그게 내가 듣는 전부”라고 말했다. 오젬픽 제조사인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는 볼링그린에만 최소 6명의 영업담당자를 두고 있다. 이 지역 약사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각종 행사를 후원한다.
볼링그린이 ‘오젬픽타운’으로 불리며, 체중감량 약물도시의 대명사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도시가 속한 켄터키주는 미국에서 비만율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다.
비만율 가장 높은 도시에 속해
인도 출신 가정의학과 의사 수만 셰카르는 10년 전 볼링그린으로 이사했다. 그는 위험할 정도로 과체중인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자신을 찾는 환자의 약 40%가 비만이다. 셰카르는 이 지역의 음식문화를 지목했다. 그는 “이곳에서는 튀긴 음식을 많이 먹는다. 이게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환자 중 상당수는 어릴 때 건강에 해로운 음식에 노출된다. 그는 “학교 급식메뉴가 정크푸드로 가득 차 있다”며 “내가 치료하는 대부분의 어린이는 일반적으로 40세 이상 성인에게 처방되는 콜레스테롤 저하제인 스타틴을 복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살 정도의 어린 환자들이 고혈압을 앓는다. 이들이 나이 들수록 당뇨병과 심장마비, 간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켄터키주 10~17세 어린이 중 약 1/4이 비만이다.
2019년 아동비만 현황조사에 따르면 켄터키주 고등학생 4명 중 1명은 매일 탄산음료 1캔 이상을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은 더 나빠지는 경향이 있다. 최근 수년 동안 이 지역 성인의 당뇨병과 고혈압 발병률이 증가했다. 하지만 볼링그린의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상황이 남부 생활문화의 일부일 뿐이라고 여긴다.
최근까지만 해도 셰카르와 같은 의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은 식이요법과 운동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젬픽과 위고비,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 등 더 새롭고 효과적인 선택지가 생겼다.
오젬픽, 마운자로 등 당뇨병 치료제면서 체중감소를 유도하는 새로운 계열의 약물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예측이 넘쳐난다. 오젬픽을 생산하는 노보 노디스크와 마운자로를 생산하는 일라이 릴리는 해당 의약품으로 35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골드만삭스는 비만치료제의 연간 시장규모가 2020년대 말 13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비만율을 낮추는 것만으로도 매년 1730억달러의 의료비용을 지출하는 미국에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약물들엔 다른 잠재적인 이점도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오젬픽은 암과 알츠하이머병은 물론 흡연 등 중독성행동의 위험을 줄이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리고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식사량을 줄이면서 추가적인 경제적 변화도 예상가능하다. 월마트 최고경영자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체중감량약을 쓰는 쇼핑객들이 식품 구매를 줄이고 있다”고 말하자 업계 전반의 주가가 하락하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약물의 긍부정 효과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수년이 걸릴 전망이다. 부작용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볼링그린에서 체중감량제를 맞는 사람들의 위가 경련을 일으키는 일이 잦다. 이를 진정시키는 보충제가 각종 쇼핑몰에서 많이 팔리고 있다.
긍정적 효과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켄터키주 성인비만율은 여전히 약 40%에 달한다. 이는 수년간 지속된 수치다. 켄터키주 전반적으로 지난해 비만과 관련된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감소했지만, 볼링그린이 속한 워렌카운티는 오히려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체중감량 효과가 실제로 나타나려면 더 오래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데이터기업 ‘에어피니티’ 추산에 따르면 심장마비 뇌졸중 또는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예방하려면 약 3년 동안 위고비를 복용해야 한다. 위고비는 시장에 출시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다.
‘오젬픽타운’ 남일 아냐
체중감량제가 볼링그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이다. 피트니스센터는 계속 성황이다. 레스토랑은 만석인 경우가 많고, 인기 있는 술집은 예전만큼 손님이 많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북적거린다. 일부 식료품점은 오젬픽 때문에 운영방식을 바꿨다. 매장에 전문간호사를 파견해 고객들이 식료품을 고르는 동안 체중감량제 처방전 발급 등을 상담할 수 있게 했다.
눈에 띄는 변화는 메디컬 스파의 확산이다. 목욕시설과 미용시설에 건강관련 서비스를 보탠 시설이다. 그중 하나는 지난해 문을 연 ‘쉬·올로지(She·ology)’다. 정맥주사치료와 호르몬검사 등 여성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요즘엔 대부분의 고객이 오젬픽 등 체중감량제 복제버전을 찾고 있다고 한다. 이곳 회원들은 한달 70달러를 지불하고 병당 200~650달러에 해당약을 구매한 뒤 직접 주사한다. 오리지널약 대비 훨씬 저렴하다.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더 많은 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영업을 시작한 메디컬스파 및 체중감량센터 수는 전년 대비 17% 증가했다. 켄터키주에서는 36% 급증했다. 특히 볼링그린에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은 볼링그린에만 한정할 수 없다. 전세계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비만상태다. 이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비만 관련 건강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불과 수년 사이 비만치료제 수요가 급증하면서 제약회사들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미국 이외의 국가에 대한 공급을 제한하는 실정이다.
BBW는 “수천만명의 미국인이 체중감량 주사를 맞거나, 처방을 고려하거나 의사와 친구, 이웃과 끊임없이 이 주사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한다”며 “켄터키 남부의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 볼링그린은 전세계 다른 지역사회에서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모두 ‘오젬픽타운’에 살고 있거나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