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공개 속도낸다

2024-08-12 13:00:34 게재

범부처 전기차 화재 긴급회의 … 현대·기아 등 완성차 업계 자발적 공개 결정 잇달아

인천 서구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자동차 화재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배터리 정보 공개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가 전기차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인 가운데 자동차 업계가 앞서 잇달아 정보 공개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업계가 전기차 생태계를 위협하는 ‘전기차 포비아(phobia·공포)를 잠재울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은 11일 홈페이지를 통해 현대차·제네시스 전기차 13종에 들어가는 배터리 제조사를 전면 공개했다.

이는 지난 1일 인천 청라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에 난 불이 대형화재로 확산하면서 소비자들의 배터리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데 따른 것이다. 화재가 난 자동차에는 세계 10위권인 중국 파라시스의 배터리가 들어가 있었는데, 배터리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

◆비공개, 소비자 외면으로 이어질 수도 = 배터리 정보 공개는 자동차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기아는 조만간 비슷한 방식으로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할 예정이다.

국내 수입차 1위 BMW도 이르면 이번 주 중 홈페이지에 모든 전기차에 들어간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나머지 수입차 업계는 부품 공급사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본사 방침을 이유로 난색을 보인다.

하지만 시장을 주도하는 현대차그룹과 BMW 등이 정보를 공개하는 마당에 나머지 업체들이 이를 거스르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각 기업의 고객센터나, 딜러들에게는 “내 차에 들어간 배터리가 어디 제품인지 알려 달라”는 문의가 쇄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매물이 증가하는 등 화재 공포가 확산되고 있어 발화점인 배터리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업체의 경우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직영 중고차 플랫폼 케이카(K Car)는 인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지난 1일 이후 7일 동안 ‘내차 팔기 홈서비스’에 등록된 전기차 접수량이 지난달 25~31일과 비교해 184%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기자동차는 지상주차장으로 11일 오후 서울의 한 아파트에 전기자동차는 지상주차장에 주차하라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배터리 공개는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 = 특히 해외에서도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정보 공개가 대세라는 점도 영업상 비밀이라고 주장하기에 명분이 없다.

전기차 산업을 빠르게 키운 중국은 2018년부터 ‘배터리 이력 추적 플랫폼’을 구축해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일부 주에서 정보 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2026년부터 ‘배터리 라벨링’ 제도를 통해 제조사와 구성 물질, 전압, 용량 등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은 2027년부터 ‘디지털 배터리 여권’ 제도 등을 차례로 도입해 배터리 정보를 공개·관리할 예정이다.

◆정부도 전방위 압박 수순 = 우리 정부도 자동차 제조사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차량 제원 안내에 포함해 공개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12일 전기차 화재와 관련, 환경부 주도로 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소방청 등 관련 부처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회의를 연다. 당초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 이후 ESS(에너지저장장치) 화재사고와 관련해 재발 방지대책을 논의하는 회의였는데 이번 화재로 더 커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전기차 화재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통해 전기차 화재 사고에 대한 정확한 원인 등을 분석하고 관련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13일 자동차 업계의 의견도 청취해 다음 달에는 국민들이 안심하고 전기차를 이용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 부처는 전기차 화재를 줄일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대안을 테이블에 올리고 추진 가능성을 검토할 예정이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배터리 제조사 공개 여부다. 우리 정부도 자동차 제조사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차량 제원 안내에 포함해 공개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이 외에도 화재의 주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과충전을 막을 방안도 논의된다.

단기적으로는 충전율과 충전시간을 제한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과충전을 방지할 장치 부착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100% 완충 전기차의 경우 그렇지 않은 차보다 화재 발생 시 파급력이 훨씬 강하다. 배터리 잔량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규제하고 충전 시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과충전을 예방할 수 있다.

지난 9일 서울시는 다음 달 말까지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개정해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에 90% 이하로 충전을 제한한 전기차만 출입할 수 있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과충전 막을 수 있는 시스템 도입 검토 = 보다 근본적으로 충전기 자체에서 과충전을 막을 수 있는 전력선통신(PLC) 모뎀 설치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또 지상 전기차충전기를 확대하는 안도 유력하게 검토된다. 현행 규정상 지상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를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설치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식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 등을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

전기차 화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하주차장 스프링클러를 더 촘촘하게 설치하고 반응속도를 높이는 방안도 검토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날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 달 초 배터리 실명제를 포함한 전기차 안전 종합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한편 앞서 정부는 지난해 6월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환경부·산업부·국토부·소방청 등 관계부처 합동의 ‘전기차 충전 기반시설 확충 및 안전 강화 방안’을 확정했다.

여기에는 △안전성이 우수한 전기차 보조금 추가 지원 △전기차 화재 진압장비 확충 △화재예방 기능이 강화된 충전기 확충 등의 방안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충전기가 설치된 지하 주차장에는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지하 주차장 3층까지만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게 했다. 충전설비의 방진·방수 보호 성능도 강화하고, 비상 전원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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