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현의 한반도 워치

무엇보다 중요한 동맹국 미국과의 외교

2024-08-12 13:00:39 게재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15년 3월 미국을 방문했다. 이때 오바마 대통령은 만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의전상 결례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네타냐후는 미의회에서 이란과의 핵협상이 이스라엘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미 행정부를 비난하는 연설을 강행했다. 이것은 미국내 유태인들의 강력한 영향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이란과의 핵협상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절박함에서 나왔을 수도 있고 네타냐후의 국내정치를 의식한 정치적 도박일 수도 있었다.

이 연설의 성과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의 과감하고 당당한 행동은 같은 동맹국이지만 한국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라서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우리도 오래 전에는 미국과 협의 없이 반공포로를 석방했고 주한미군 철수 문제로 미국에 덤벼들다시피 한 적이 있었지만 그 후 미국과 목소리를 제대로 내면서 협상한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조금이라도 한미간에 이견이 나오면 정치권과 언론 일각은 반미정부라고 비판하거나 외교가 흔들린다고 걱정을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대미외교는 미국의 의견대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11월 미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달라진 미국과 새롭고 진지한 외교교섭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안보와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과 무슨 이견이 있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고 대내외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면 우리도 과거처럼 미국입장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동맹이라도 모든 외교 목표가 같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한반도의 평화가 한미 양국의 공동 목표더라도 미국이 동북아에서의 영향력 유지에 더 무게를 둔다면 우리의 우선순위는 북한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동맹관계를 관리해 나가면서 우리의 국익을 지킬 것인가?

한미동맹 가장 중요한 목표는 평화 지키기

우선 대미외교에서 우리의 뚜렷한 목표가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왜 미국과 동맹을 맺었는지 살펴보면 자명하게 나온다. 한미동맹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한마디로 ‘전쟁 억지’ 즉, ‘평화 지키기’이다. 특히 국제정세가 지금처럼 어지러울 때에는 현상유지가 최우선이다. 그러나 국제정세가 호전되어 통일의 가능성이 열릴 때 우리는 미국이 독일통일을 도왔던 것처럼 우리의 확고한 통일 지원세력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시장경제 체제를 지키고 우리의 경제적 번영을 계속해 나가는 것도 동맹의 중요한 목표이다. 미국은 우리의 고속성장 시대에 최대의 시장이 되어 주었으며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첨단기술과 경제운영의 아이디어를 얻어 왔다. 이제 미국 우선주의가 고착되어 가는 상황에서 우리가 경제통상 분야의 대미 관계를 어떻게 조정해 나가야 할 것인지가 새로운 도전요소로 됐다.

자유민주주의를 가꾸어 가는 것도 동맹의 역할이다. 돌이켜보면 한미동맹은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해 나가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물론 미국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 취한 입장이나 군사정부와 협조한 것은 실망스럽지만 끊임없이 인권문제를 제기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 성장에 협력해 온 것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사실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확장을 자신의 외교목표로 내걸지만 이것은 자국의 국익 확보 차원에서 나온 것임을 이해하면 미국에 대해 실망할 것도 없다.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외교교섭은 어떻게 해 나가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미국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교섭의 상대방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우선 미국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읽어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상호 이익의 주고받기를 하는 것이 외교다.

우리는 오랜 기간 국방을 미군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군사문제에 관해서도 이러한 주고받기 외교에 익숙지 않다. 2018년 방위비 분담 협상이 한창일 때 어느 원로로부터 주한 미군의 철수 가능성을 줄이려면 몇배라도 우리가 방위비를 더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큰 해외 미군 기지를 평택에 제공하고 있음에도 미국의 요구를 모두 들어 주어야만 한미동맹이 강화된다는 논리는 한미동맹을 양국 상호간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 시혜로 인식하는 것과 같다.

제대로 된 외교에는 국익 수호만이 존재

이러한 사고에 익숙해지면 대미교섭에 전략 없이 임하게 된다. 2023년 핵무장 가능성을 공언해 오던 우리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서 미국이 요구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준수가 포함된 워싱턴선언을 가지고 돌아왔다. 핵무장은 포기한 것이다.

북한핵에 대해 우리가 핵무장으로 맞대응하는 것에 대해 필자는 유보적이지만 만약 핵무장을 정말 하고 싶다면 미국과 먼저 치밀한 물밑 조율을 했어야 한다. 그런 발언을 먼저하고 미국을 방문한 것은 전략이 없는 시도였다. 최근 잠재적 핵보유국이 되기 위해서 미국으로부터 우라늄의 농축과 재처리를 허용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과의 원자력협력협정을 일본처럼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핵무장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선전하면서 미국과 환율협상에서 대폭 양보를 함으로써 농축과 재처리 허가를 받아 내었다. 매우 전략적 협상을 한 것이다. 핵무장을 공공연히 이야기하면서 원자력협정을 개정하겠다는 것은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이 가진 카드를 다 보여주는 외교는 협상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실패하기 십상이다.

외교교섭에서 전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단합이다. 단합된 입장은 교섭에서 힘을 발휘할 뿐 아니라 정부가 바뀌어도 연속성 있는 외교를 가능케 한다. 불행히도 우리의 국내정치 상황은 분열의 연속이다. 보수는 자기편의 결집을 위해 진보가 반미라고 우긴다. 문재인정부 때 미국이 한미관계에 대해 만족스럽다고 해도 보수언론은 동맹관계가 훼손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현 정부도 지난 정부에 반미 프레임을 씌우려고 한다. 외교에서 동맹과 자주, 친미와 반미의 이분법은 잘못된 것이다. 제대로 된 외교에는 국익수호만 있다. 안타깝게도 분열된 정치는 우리의 현실이다. 미국이 이를 이용할 수 있다.

어떻게 단합된 입장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어렵지만 국회의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부가 주요 정책을 국회의 상임위 토론에 부치면 어느 정도 이견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부가 성에 차지 않아도 야당의 의견을 일부라도 수용해야 하고 야당도 비판에 절제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과정이 언론이나 전문가들의 검증과 평가를 거치면서 지속가능한 외교정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엄중한 안보상황에서 동맹관계를 훼손하는 일이나 미국의 입장을 무조건 따르는 굴종 외교는 모두 지속가능하지 않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이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외교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않는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기를 바란다.

트럼프가 쏘아 올린 미국 우선주의 영향

미국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다. 당선자 예측이 어려워진 상황이지만 누가 되더라도 트럼프가 쏘아 올린 미국 우선주의는 다음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에서는 미리 선을 대보자는 의견은 물론 자신이 누구와 가깝다는 주장도 나올 것이다. 이것은 인간관계, 즉 친분을 중시하는 접근방식이다. 국가관계에서는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정책의 방향이 중요하다. 결국 외교를 책임지는 기관 간에 신뢰를 가꾸어 가면서 합리적 협의를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부터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우리의 우선사안에 대해 미국과 어떻게 공동의 목표를 조율해 나갈 것인지 준비해야 할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도 미국의 관세인상이나 산업정책에 대한 협상전략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한미동맹을 한층 더 건강하게 발전시킬 현명한 실용 외교를 기대한다.

조 현 서울대 객원교수 전 유엔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