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국부펀드, 월가에 머니파워 행사
블룸버그 “금전수익 이외의 투자대가 요구”
아폴로와 블랙스톤 등 월가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4조달러에 달하는 중동 국부펀드의 투자를 확보하기 위해 오랜 관행을 바꾸고 있다.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의 국부펀드들이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방식으로 머니파워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13일 “4조달러에 육박하는 자산을 운용하며 서구 자본시장에서 자신들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중동 최대 국영펀드들이 월가 자산운용사들에게 투자 대가로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점점 더 많이 묻고 있다”며 “월가 거물들은 걸프 지역에서 더 많은 모임을 갖고, 현지사무소를 설립하고, 더 많은 인력을 현지에서 거주하고 근무하도록 요구받고 있다”고 전했다.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는 올해 초 약 200명의 직원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로 보내 이곳 국부펀드 무바달라 및 기타 현지파트너들과 각종 행사와 고위급회의를 개최했다. 블랙스톤은 중동 국부펀드 투자자들이 자사 팀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동 국부펀드들이 수수료를 인하하고 수수료 구조를 변경하도록 압력을 가하면서 월가 자산운용사들은 일반적인 관리·성과 수수료를 없애거나 줄이고 있다.
중동 국부펀드 총자산은 2030년 7조6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공동투자를 통해 더 많은 거래수익을 얻고, 풍부한 석유를 기반으로 구축된 경제를 다각화하기를 원한다.
‘로스차일드&코’ 고문인 켄 칼레야는 “금전적 수익을 넘어 그 이상의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중동에 지역본부를 세우거나 주요 기술을 이전해줄 용의가 있느냐고 요청하고 있다”며 “지난 수년 동안 큰 변화를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사우디 공공투자펀드(PIF)가 유럽 럭셔리 호텔체인 ‘로코 포르테’의 지분 49%를 인수하는 거래를 도운 바 있다.
9250억달러를 운용하는 PIF는 세계무대에서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런던 히드로공항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자체 비행기를 위한 착륙장을 확보하고, 사우디 리야드를 세계 최고 여행지로 개발하기 위해 주요 국제공항의 운영방식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중 사우디에 지역본부를 두고 있는 곳은 없지만, 점차 이를 설립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고 있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이를 위한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투자은행 모엘리스, 라자드, JP모간체이스 등이 리야드에 사무소를 개설하거나 직원을 대거 충원했다.
미국 자산운용사 TCW그룹 최고경영자인 케이티 코흐는 “단순히 상품을 요청하는 수준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원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걸프국가들이 미국펀드에 돈을 투자하는 주된 이유는 석유수익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를 다각화하기 위해서다. 아부다비의 무바달라는 인공지능(AI)과 생명과학, 의료기술 등 새로운 분야나 산업의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되는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에미리트 관리들은 AI붐으로 엄청난 전력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도시에서 저렴한 재생가능 전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기업을 유치할 계획이다.
무바달라는 중동펀드 최초로 자체 투자회사를 설립, 월가에 충격을 안겼다. 무바달라는 최근 사모펀드회사 ‘아쿠아리안 홀딩스’에 약 7억달러를 투자, 자체적으로 수수료를 받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카타르투자청도 거래와 관련해 수수료 감면과 언더라이팅(유가증권 인수·주선)과 같은 거래에 참여시켜 달라는 등 보다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프랑스 사모펀드 ‘아르디안’이 조성한 반도체펀드에 자금을 투자한 것도 카타르의 칩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업을 소개받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지정학적 요인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 블랙록의 래리 핑크와 아폴로의 마크 로완 등 미국 억만장자들이 친이스라엘적인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명하자 일부 중동 펀드매니저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블룸버그는 “월가 기업들이 중동에서 계속 사업을 확장하기 원하지만, 지정학과 관련해 균형을 유지해야 함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