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선거자금이 결과 좌우할까

2024-08-16 13:00:01 게재

트럼프·해리스 후보, 대선운동 기부금 모금 전력 … “선거에 별 영향 없어” 분석도

미국에서는 선거 캠페인에 수십억달러 비용이 소요된다. 이 돈은 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억만장자와 기업대표들로부터 나온다. 가장 많은 돈을 모금하는 후보가 승리할까.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대통령만큼 당선에 많은 돈이 필요한 공직은 전세계에 없다. 선거자금과 로비를 추적하고 감시하는 미국 비영리단체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2020년 대선 선거운동 기간 동안 당시 현직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와 도전자 조 바이든 후보는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총 57억달러(약 7조7500억원)의 선거자금을 지출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사상 신기록이었다.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대선후보 로이터=연합뉴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15일 “올해 11월 미국 대선 캠페인 역시 선거자금 모금과 관련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진영은 7월에만 선거자금으로 3억1000만달러를 기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공화당 후보이자 전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는 같은 달 약 1억3800만달러의 기부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연방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3일(현지시간) 기준 대선 관련 선거자금 모금액은 10억8396만달러였다. 민주당이 5억9581만달러, 공화당이 4억2060만달러, 기타 정당이 6754만달러였다. 이 엄청난 금액은 수많은 소액기부자들뿐 아니라 미국의 슈퍼리치와 대기업들로부터 모금된 것이다.

돈이 미국정치를 만든다

대선자금 모금 캠페인에 기부하는 사람들이 기부금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구인구직 소설미디어 플랫폼 ‘링크드인’ 공동창립자이자 마이크로소프트(MS) 이사인 리드 호프먼은 민주당 선거 캠페인에 700만달러를 기부했다. 그는 이후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기업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 연방거래위원회 리나 칸 위원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해리스 후보가 당선되면 칸 위원장을 다른 인물로 대체할 것이라는 희망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트럼프 후보 역시 피츠버그 은행가문의 후손인 티모시 멜론으로부터 5000만달러를 기부 받는 등 거액기부자들로부터 정치적,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 기술투자자 데이비드 색스와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머스크 측근들은 트럼프 재선캠페인에 수백만달러를 쏟아 부을 것으로 예상되는 ‘슈퍼 정치행동위원회(슈퍼 팩·Super PAC)’를 결성해 트럼프를 지원하고 있다. 이 단체에 대한 머스크의 기부금은 아직 연방 선거관리위원회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억만장자 머스크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트럼프 진영을 금전적으로 지원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12일 소셜미디어 플랫폼 ‘X’에서 일론 머스크와 라이브 대담을 하면서 머스크를 차기 행정부에 등용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날 머스크는 “납세자의 돈이 좋은 방향으로 쓰이고 있는지 살펴보는 ‘정부 효율성 위원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며 “그런 위원회가 있다면 기꺼이 돕고 싶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머스크가 참여하면 좋을 것”이라며 경영자로서 머스크가 취했던 비용절감 조치를 언급하며 칭찬했다.

기부 물꼬 튼 대법원 판결

2010년 미국 대법원은 선거캠페인 자금모금 관련 재판에서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은 “기업도 자연인과 동일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판결했는데, 이는 정치 캠페인 자금에 대한 제한이 궁극적으로 검열이며 불법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독일 예나대학교의 미국정치·선거자금 전문가인 외르크 헤벤슈트라이트는 DW에 “이 판결은 미국정치의 전환점이 됐다”며 “2010년부터는 기업과 은행, 노조, 이익단체, 부유한 개인 등 누구든 기본적으로 원하는 만큼 자금을 모금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슈퍼 팩은 기부자가 무제한으로 기부할 수 있는 독립정치단체다. 반면 개인에 대한 기부나 슈퍼 팩이 아닌 단체에 대한 기부는 한도가 정해져 있다.

현재 개인은 예비선거와 총선에 출마한 후보자와 그 팀에 최대 6600달러까지 직접 기부할 수 있다. 또 정치행동위원회(PAC)를 통해 선호하는 후보자를 후원할 수 있는 옵션도 있다. 대부분의 PAC은 기업과 노조 또는 이익단체를 대표하며 회원 또는 직원으로부터 기부금을 모금한다. 개인은 이러한 PAC에 연간 최대 5000달러까지 기부할 수 있다. 또한 전국 정당조직에 연간 최대 4만1300달러까지 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정해진 한도를 초과해 기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독립적인 로비단체인 슈퍼 팩을 설립할 수 있다. 단, 이들의 광고가 후보자의 캠페인과 직접적으로 연계돼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있다. 연방 선거관리위원회가 이 조건에 부합하는지 공식적으로 모니터링한다. 헤벤슈트라이트 교수는 “하지만 선관위의 단속을 우회할 수 있는 수십가지 허점이 있다”고 말했다.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현재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 기간 동안 약 2257개의 슈퍼 팩이 결성됐다. 이들은 총 20억달러의 기부금을 모금했으며, 이 가운데 약 7억달러가 지출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광고분석 업체 ‘애드임팩트’는 이달 들어 중순까지 2주 동안 민주 공화 양당 대통령 후보 캠페인과 지지단체들이 광고비로 총 2억4700만 달러(약 3360억원)를 지출하거나 예약했다고 추산했다. 이는 지난 대선이 있던 2020년 8월 한달 금액보다 19% 증가한 수치다.

스위스 장크트갈렌대학교 미국 정치학자 제임스 데이비스는 DW 인터뷰에서 “이같은 금액은 어마어마하다”며 “선거 분석가들조차 전에는 본 적 없는 규모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헤벤슈트라이트 교수는 “미국 대선 캠페인에서 기부금이 실제로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트럼프 해리스 두 후보 모두 일반에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선거캠페인에 1억달러를 더 쓴다고 해도 실제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데이비스 교수는 “선거운동을 위한 정당 조직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기부금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들이 실제로 투표장에 가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결국에는 유권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2016년 대선에 나선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경쟁자였던 트럼프 후보보다 훨씬 많은 선거자금을 모금했지만 결국 낙선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고액 기부자들은 선거가 끝난 후에도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데이비스 교수는 “수백만달러를 기부한 사람이 나중에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 초대를 받는다면 이는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헤벤슈트라이트 교수는 “일부 기부자들에게는 내각직, 대사직 또는 기타 외교직이 제안되기도 한다”며 “기부금은 행정부의 권력통로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고 말했다.

비판 많지만 미국정치에선 필수

워싱턴 소재 초당파 싱크탱크 ‘퓨 리서치 센터’가 지난해 7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10명 중 7명은 개인이나 단체가 정치 캠페인에 기부할 수 있는 금액에 제한을 둬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10명 중 8명은 정치 캠페인에 기부하는 사람들이 미의회 의원의 결정에 너무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고 답했다.

하지만 정치자금과 관련한 개혁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헤벤슈트라이트 교수는 “정치기부금 제한 같은 개혁을 위해서는 의회의 다수가 찬성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법 개정이 불가능할 실정”이라며 “궁극적으로 미국에서 선거를 치르는 비용이 비싼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공공 선거자금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데이비스 교수는 “대선 때마다 정당조직 전체를 다시 구축해야 하는 것도 선거비용을 늘리는 이유”라며 “정당이 연방 차원에서 결집하려면 대선이 있는 4년 주기로만 가능하다. 이는 50개 주에서 4년마다 정당조직을 재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게다가 미국은 미디어의 선거 영향력이 매우 큰 나라인데, 대부분의 대형 언론사들은 개인 소유다. 때문에 선거 캠페인을 진행하는 데 많은 돈이 든다”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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