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팁 세금 철폐’를 둘러싼 해리스와 트럼프의 정치적 계산

2024-08-20 13:00:03 게재

트럼프 후보 암살 시도, 공화당 전당대회,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정치신인 JD 밴스를 선출,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 해리스 부통령의 후보 승계.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이 모든 일이 불과 열흘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이번 미국 대선은 여러 의미로 신선하고 미국 역사적으로도 흥미로운 기록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무게 추가 살짝 트럼프 후보에게 기울었던 것도 잠시, 해리스 후보가 살짝 유리하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오고 있다. 결국 이번 대선은 또다시 미궁 속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이렇게 결과가 예측할 수 없는 양상으로 가면서 이제 서로에 대한 각 선거진영의 비난의 칼날이 매서워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 경제정책을 두고 양당 후보 모두가 공개적으로 한목소리를 낸 신기한 장면이 연출됐다.

양당 후보 모두 한목소리 낸 경제정책

문제의 정책은 ‘팁에 대한 연방세금을 폐지’하자는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6월부터 라스베이거스의 한 종업원이 연방정부가 팁과 관련된 세금을 너무 많이 떼어간다고 말한 이후 ‘팁에 대한 세금면제’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캠페인을 벌여왔다. 그는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에서도 ‘정부가 팁 세금으로 항상 힘들게 한다’고 말한 종업원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이 공약에 대해 큰 관심이 쏠렸다. 트럼프 캠페인 행사와 밀워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는 ‘팁에 대한 세금 없음’ 구호가 정기적으로 등장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민주당 해리스 부통령도 이 아이디어를 지지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10일, 네바다주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그녀는 팁 면세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여기 계신 모든 분께 드리는 저의 약속이 있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최저임금 인상과 서비스 및 접객업 종사자 팁에 대한 세금 철폐 등 미국의 일하는 가족을 위해 계속 투쟁할 것입니다.”

공화당원들은 서비스직 노동자들의 표를 둘러싼 줄다리기의 목적으로 이 정책을 채택한 것이 분명하다면서 해리스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해리스가 이 정책을 공개 지지했던 날 밤, 트럼프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인 트루스 소셜에 해리스가 정치적 목적으로 자신의 정책을 모방했다고 썼다. 이틀 뒤에는 일론 머스크와 함께한 ‘라이브 온 엑스(X)’ 행사에서 “해리스가 나보다 더 트럼프가 되려고 한다”면서 힐난했다.

해리스 선거진영에서는 ‘팁에 대한 세금을 면제하는 것이 공화당 지지층보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된다’, ‘트럼프가 이 정책을 먼저 제안했지만 유권자들은 그의 공약 이행을 믿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하며 공화당의 비난을 무력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경제학자들은 비용·실질적인 효과 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 정책에 반대한다는 뜻을 고수해 왔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아이디어가 법으로 제정되면 10년간 1000억달러에서 2500억달러의 비용이 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서 트럼프가 이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는 이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현재 미국 경제에서 팁 임금의 문제는 세금이 너무 무겁다는 것이 아니다. 팁을 받는 근로자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과 팁의 액수가 너무 적다는 점이 문제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23년 웨이터의 연봉 중간값은 3만2000달러에 못 미쳤다. 세금정책센터 연구결과에 따르면, 팁에 대한 소득세를 없애도 많은 팁 근로자에게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이들의 소득은 연방 소득세가 면제될 정도로 낮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팁에 대한 연방세금 폐지에 대한 가장 큰 우려 중 하나는 기업이 더 경쟁력 있는 임금을 제공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세금 감면으로 인해 근로자가 가져가는 임금이 증가하면 고용주는 팁을 받는 근로자에게 더 높은 기본급을 제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팁을 받는 직원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은 직원들에게 임금을 적게 주려는 고용주에게 큰 허점을 만들어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일부 업종은 팁 경제구조에 종속돼 더 많은 근로자가 최저임금을 받는 대신 팁에만 의존하게 될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팁 면세 관련 아이디어는 그 기원과 소유권과 관계없이 초당파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테드 크루즈 텍사스주 상원의원은 지난달 민주당 상원의원들의 지지를 받아 팁에 대한 세금 부과 금지 법안을 발의했다. 그는 네바다주 출신의 캐서린 코르테즈 마스토와 재키 로젠, 그리고 요리사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아 이 법안을 발의했다.

해리스는 의회 흑인 코커스 의장인 스티븐 호스포드 하원의원, 부통령 최종 후보 사전 인터뷰에 직접 초대받은 캐서린 코르테즈 마스토 상원의원 등 민주당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이 정책을 빠르게 수용했다. 플로리다주 하원의원인 바이런 도널드스가 발의한 공동 법안도 하원을 통과 중이다.

사실 이 제안은 양당 모두가 선거 승리에 결정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핵심 유권자 집단을 겨냥하고 있다. 바로 35만명에 달하는 네바다주의 이민자 출신 서비스업 종사자들이다. 그들은 일하면서 받는 거의 대부분의 팁에 세금을 내야 할 만큼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

팁 면세 정책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기는 하지만 2020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라틴계로부터 얻은 지지율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해리스에게 매우 중요할 수 있다. 최근 발표된 라틴계 유권자 동원 단체인 ‘소모스 팩(Somos PAC)’의 라틴계 유권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이 경선에서 탈락한 며칠 후 시행된 7개 격전지 조사에서 라틴계 유권자 중 해리스는 55%, 트럼프는 37%의 지지율을 보였다. 2020년 대선에서 라틴계 유권자의 61%가 바이든에게 투표했고, 36%가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승리에 결정적인 경합주 네바다 표심 공략

또한 이 아이디어 채택으로 해리스는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요리사 노동조합의 공고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 6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요리사 노동조합은 회원들에게 직장에 휴가를 내고 민주당에 투표하도록 종용하면서 박빙의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강력한 민주당 지지층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최근 이들 유권자 중 상당수가 높은 물가에 환멸을 느끼고 있으며, 트럼프가 펼치고 있는 노동자 관련 메시지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던 참이었다. 그러나 이제 해리스가 팁 면세 정책을 지지함에 따라, 노조 지도자들은 민주당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회원들을 동원할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을 얻게 되었다.

이번 주부터 시카고에서 민주당 전당대회가 시작됐다. 필자가 미국 대선을 다루면서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로 이어지는 경합 주의 중요성을 이미 여러 번 강조했다. 두 정당 모두 이 중서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을 부통령 후보로 선택했다. 2년 전 전당대회 개최 장소를 밀워키로 확정했던 공화당과 이보다 1년 늦게 결정했지만, 뉴욕과 애틀랜타가 아닌 시카고를 선택한 민주당도 이를 염두에 두었다는 점을 지난 기사에서도 언급했다.

그런데 불과 1시간 거리의 장소에서 전당대회를 열게 된 공화당과 민주당, 이번처럼 한목소리로 같은 경제 정책을 공약으로 내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다.

그렇기에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로 구체적으로 선보일 해리스 선거진영의 경제 정책과 9월 10일 펼쳐질 두 후보 간 TV토론에서 팁 면세 정책 관련된 내용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선거 전략과 경제 정책을 모두 살펴보기에 지금 이보다 좋은 소재가 없다.

김찬송 위스콘신대 정치학, 미국 선거·여론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