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향상 ① 의학교육 개선

“환자와 지역중심 의료 위해 ‘의학교육’ 크게 바꿔야”

2024-08-20 13:00:02 게재

기초의학 고사 직전, 다양한 실습 엄두도 못내 … “정부·지자체는 적극 투자, 대학은 재정 투입”

우리 국민들은 지난 수십년동안 적어도 의료는 별 문제가 없으며 세계에서도 최상의 의료기술을 그런대로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정치권이나 정부의 인식도 그러했다. 하지만 1980년 제정된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법’에 의해 무의촌에 공중보건의사와 보건진료원을 배치한 정책과 2000년에 시행된 의약분업 정책 이후에는 의료제도나 정책도 절박한 의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전적인 혁신은 거의 없었다. 전국민의료보험이 시작된 1989년 이후의 의료정책들은 ‘보험수가 중심’의 정책이 주류를 이뤘고, 그 결과 의사인력 양성과 배치 등의 정책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백년대계라는 인재양성과 배치를 위한 정책이 의료수가와 관련된 정책에 밀려왔다. 또한 환자와 의사 관계의 형성을 통한 진료의 지속성을 높이는 주치의제도는 30년째 잠재워 두고 있다. 의료서비스의 효율성을 위한 의료전달체계는 규제개혁의 대상으로 분류돼 20여년 전에 무력화됐다. 이로 인해 진료의뢰서 한 장 받으면 대한민국의 모든 의료기관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비효율과 무한경쟁의 끝판왕 같은 의료시스템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중증질환 본인부담을 최소화시키는 좋은 정책들도 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증환자들이 서울로 집중하게 하는 유인이 됐다. 여기에 전문가 신봉의 사회세태는 의과대학 졸업자의 95% 이상이 전문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대형 수련병원에서 교육훈련을 받는 현상은 일상이 됐다. 그러는 사이에 의료서비스는 전통시장과 대형수퍼마켓을 하루에도 왔다갔다 마음대로 쇼핑하는 것과 같이 돈이 있으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세계적으로 의료이용을 이렇게 자유방임적으로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국민의 건강증진과 지역의료와 필수의료서비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개선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가장 근원적인 ‘의대 교육의 전환’이 필수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한국의 의학교육 체계는 상대적으로 의료비용이 많이 드는 행위별수가제를 유지되는 환경에서 극도의 의료서비스 전문화의 길을 걸어왔으며 최고 수준의 대형병원과 동네의원이 무한경쟁하는 세태의 틈바구니에 끼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이로 인해 △전문의 중심의 치료서비스 △경제적 이익이 상대적으로 큰 임상과 중심 △실손보험과 연계된 의료행위 종류가 많은 서비스 중심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의료이용의 세태와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의료이용행태의 큰 흐름 속에서도 국제수준의 의학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10여 년 전에 의학교육의 평가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재단법인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을 출범했고 이 법인은 국민 의료복지의 증진과 국민 보건 향상의 이념을 바탕으로, 의료 관련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의료 인력의 질적 보장을 위한 사업의 수행을 목적으로 ●의학교육 과정평가 ●전문의자격시험 관련 정책 개발 ●의과대학의 평가인증을 시행한 지 15년이 됐다. 국제수준의 체계적이고 학생중심의 의학교육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의학교육의 범위는 의학과 교육과 전공의 수련과 같은 졸업 후 교육을 모두 포함하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의학과 교육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의학교육 질 담보 위해 의대 분투 중 = 일반적으로 의과대학만 입학하면 돈 많은 대학병원들의 든든한 지원과 지지 속에서 6년 후에는 의사면허를 척척 받아 졸업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질 높은 의학교육 과정을 유지하고 학생중심의 의학교육을 위한 많은 의과대학들의 속앓이와 분투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의학교육의 산실인 의과대학 내의 기초의학분야는 의사출신의 지원자가 없어 고사 직전에 와 있어 기초의학교육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더구나 지역사회의 의료상황을 직접 경험하도록 하는 다양한 실습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대학들이 수두룩하다. 의과대학에서 의료인문학 강의를 통해 환자 고통의 공감과 리더십과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성과 윤리성을 교육하고 있지만, 지금의 세태를 보면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의과대학생들 중에 새 생명이 태어나는 출산과 환자의 죽음을 한 번도 지켜보지 못하고 졸업해 의사가 되는 비율이 적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최상의 전문가가 아니면 진료받고 싶어하지 않는 인식과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해 지면서, 의사로 활동할 학생들이지만 민감한 문진의 기회도 가지지 못하고 분만실에도 들어오지 못하거나 채혈도 해 보지 못하는 등의 세태는 질 높은 의학교육의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환자들도 대학병원이 의사 간호사 등 많은 보건의료계열 학생들의 실습병원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학생교육병원에는 보건의료 전공학생들의 교육병원이니 협조해 달라는 팻말이 병원입구에 붙여져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의학교육과 관련한 위원회나 워크숍 등은 환자진료에 여념이 없는 임상교수들의 일정 등으로 인해 대부분 점심이나 저녁시간 또는 주말을 이용해 개최하는 경우가 많다. 의과대학 평가인증을 할 때면 평가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병원에서 임상실습을 하는 학생공간을 확보하고 확인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의과대학 평가기준을 충족시키고자 우리나라의 의과대학들은 대학의 고유한 교육철학이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서 이를 교육의 현장에 실체적으로 반영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고 평가인증 준비를 위해 수개월에서 1년여 기간 교수와 직원들을 투입하고 있다. 의학교육 평가인증이 긍정적인 측면도 많으나 지역의 특성과 대학의 교육철학에 부합하는 전인적인 의사양성이라는 측면과 이에 기반한 의학교육의 다양성의 추구라는 측면에서는 냉철한 성찰이 이뤄져야 하는 부분도 있다.

우리나라 모든 의과대학의 교육목표에서는 전문가로서의 진료역량이나 환자는 물론 사회와의 소통과 리더십 그리고 윤리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의학교육과 임상실습의 다양성은 취약한 실정이다.

1000병상이 넘는 고난이도 수술이나 희귀난치성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최첨단 대학병원에서의 실습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도시나 농촌지역의 다양한 병의원 실습이나 직접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는 지역사회의학실습은 엄두도 못내는 대학이 대부분이다. 지금은 지역사회 현장에서의 실습을 교과목으로 포함하여 교육하는 대학이 전체 의과대학에서 10%도 안된다.

의학교육 실습 장면. 사진 이미지투데이

◆의학 교육 수준 높이는 지원시스템 갖춰야 = ‘의학교육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주제는 난제임과 동시에 딜레마도 있지만 몇 가지 전환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우선 의학 교육 발전을 위해 정부는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하고 의과대학 부속병원과 수련병원들도 의학교육에 자체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교육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교육혁신과 교육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재원 등이 15조원에 이른다.

그러나 국가장학금지급이나 일부 연구센터 지원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원에서 의학교육 지원은 제외돼 있다. 오로지 의대교수 수와 실습병원에 투입되는 비용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등록금과 병원의 지원에 의존해 교육개선과 교육의 질을 향상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역의 특성에 맞는 의학교육, 필수의료에 노출될 다양한 임상실습이나 지역사회 실습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나 의료인문학교육과 실습을 위한 재원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실제 일부 시도의 경우는 공공병원의 의사 채용을 위해 연간 수십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의과대학 학생선발에서 지역인재를 선발해 지역에 정주할 의사를 양성한다는 취지와 목적을 고려할 때, 논리적으로도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둘째, 의과대학 평가인증에서도 의학교육 재원의 확보에 대한 내용을 포함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병원은 당기순이익의 10% 또는 학생 1인당 일정 금액 이상은 의학교육에 투입하도록 하고 이것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또한 의과대학의 평가 항목에 지역의료나 필수의료 그리고 의료인문 교육과 다양한 현장실습의 내용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도 의과대학 순위를 공개할 때, 연구분야와 일차의료분야를 구분해 의과대학 순위를 공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의과대학의 교육목표에서는 10년 전에는 거의 포함되어 있었던 ‘일차의료의사 양성’이라는 단어는 지금 거의 빠져있다.

셋째, 학생들의 지역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실습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모든 국공립병원은 교육지원조직과 재원을 확보하도록 해 임상실습을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지역 병원에서 다양한 환자사례를 경험하고 지역사회에서의 질병 양상을 깊이 이해하는 기회가 되도록 함으로써, 지역과 필수의료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해야 한다.

넷째, 대학에서는 기초의학과 의료인문, 국제보건분야 등 의과학자의 양성과 세계시민정신과 리더십 그리고 국제적인 보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문인력의 양성을 위한 융합교육과정을 개설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교육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평가인증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밑거름이 되도록 의학연구 교과목을 강화해 운영하고 있는 대학들의 사례를 평가하고 확산시켜야 한다. 이로써 의과학연구와 기초의학분야의 생존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고 동시에 의학교육의 균형추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최고 전문가’를 선호하는 의료이용 문화가 자리잡고 있고 서울의 ‘큰 병원’에 가서 진단받고 치료받는 것이 자식된 도리(孝)로 자리잡은 우리나라에서 의학교육의 대전환을 위한 길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의학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의학교육의 다양성을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교육으로 전환하는 것이 △의료·돌봄 통합서비스시대 대비 △첨단의학의 도그마 극복 △‘지역중심’ ‘환자중심’ ‘재택중심’ 의료 실현 △미래 의학이 국민의 건강을 보장하고 의료지식산업의 먹거리가 되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경수 영남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