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전 칼럼
새로운 광복을 기다리며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킨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에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정인보가 가사를 쓰고 작곡가 윤용하가 곡을 붙인 ‘광복절 노래’다. 1949년부터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불렀다.
광복절 노랫말을 음미한다. 일본제국주의 식민 지배라는 암울한 상황에서 빛을 되찾은 광복(光復)이다. 이 시대 한국인들은 흑암의 일제 40년 역사의 증거이자 증인이다. 일가친척이나 가족 중 누군가는 매국노, 징용, 정신대 등 일제의 동조자이거나 피해자이다. 친일파, 독립운동가와도 이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인이자 기록자다. 그렇지만 우리는 온몸과 마음으로 서로의 상처를 덮고 보듬었다.
“세계에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오늘의 한국을 눈으로 그리듯 내다 본 예언적 노랫말이다. ‘거룩한 빛’은 제국의 폭력과 그에 기생한 세력에 대한 관용과 용서,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역사 청산이라는 이름의 가혹한 폭력도, 보복도 없이 써온 역사다. 일제의 수탈과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를 세계 10대 경제 대국, 국방 강국, 아름다운 녹색의 나라로 바꿔냈다.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함께 일구었다. 상처투성이의 서사를 민주적 제도화로 승화시켰다.
일제의 참회없는 교만과 부역자들의 동조
세상은 한국의 오늘을 ‘기적’이라 말한다. 하지만 기적이라는 말로는 우리의 서사를 온전히 담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위상은 우리의 자긍심을 뛰어넘는다.
그 가치는 평화를 사랑하는 믿음과 인문주의 철학이 빚어낸 빛나는 문명사의 기록이다. 그 관용과 화해의 가치가 도전받고 있다. 가해자 일제의 참회 없는 교만이 오늘에까지 국가 공동체를 위협하고, 부역자들의 동조가 도를 넘어 위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길이길이 지키세”라며 다짐했던 그 약속이 흔들리고 있다. 해방 이후 최초로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이 정부 주최 광복절 기념식에 불참했다. 정부의 ‘건국절 추진’과 친일파 논란의 김형석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한 데 대한 저항이다. 일제 통치의 아픈 역사 앞에서 만큼은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갈라쳐지고 있다. 이 생채기는 역사의 깊은 통증으로 남을 것이다. 더 심각한 건 위기를 조장하는 요소들이 법의 이름으로 현실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합법으로 포장한 불법과 부정은 사실과 진실을 왜곡한다. 상식과 정의라는 보편적·민주적 가치를 앗아간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 역사에 흑암의 그림자로 다가오고 있다. 그 실체는 권력의 부패에 면죄부를 주고, 공직자의 부정을 눈감아 준다. 더 나아가 야수적 공격성으로 노골화되고 있다. 국가의 ‘사정권’이 개인의 통신 기록을 무차별 감찰한다. 법이 부당한 권력의 위협 수단으로 동원된다.
국가의 사법부와 사정 권력은 정치와 행정 권력의 위법을 견제할 책임이 있다. 사법기관 구성원 각 개인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압하는 부당한 권력의 요구를 거부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헌법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을 다해 위헌·위법한 권력 행사를 막아야 한다. 국가권력의 폭주에 견제하는 브레이크 역할이다. 국가 권력기관이 위법한 권력을 행사하는 도구로 전락하면 국민을 해치는 흉기가 된다. 사법부 본연의 책무는 사회적 약자 보호가 우선이다. 또한 언론은 보도하고 기록함으로써 역사의 진실을 지키는 방파제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일제 “사십년 뜨거운 피 엉킨 자취”다. 고통과 고난의 통로를 지나 피와 눈물로 쓴 승리의 서사다. 이제 더 새롭고 더 나은 발전을 향해 나아가야 할 기로에 있다. 이 지점에서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을 움직여 온 저력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용서와 지혜로부터 비롯되었다. 미래를 향해 내딛는 끊임없는 힘의 원천이다. 민족적 저력을 집단의 이익을 위한 오만으로 훼손하거나, 편견으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 “피로 쓴 역사를 혀로 지울 수 없다”는 광복회장의 절규도 그것이다.
“피로 쓴 역사를 혀로 지울 수 없다”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용서하지만 잊지는 말자. 우리가 함께 써 내려 온 대한민국의 서사를 기억하자. ‘신화 대한민국’을 더 강하고 아름답게 지켜내기 위해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제라도 역사의 관용을 참회의 눈물로 받아들여 내면화할 것을 권한다.
자랑스러운 ‘신화’를 인정하고 미래 앞에 헌신하는 겸허함이다. 권력의 힘으로 ‘역사에 대한 과오’를 미화하는 퇴행은 부질없다. 한국이 21세기 문명의 중심에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가 써야 할 역사의 서사는 현재와 미래를 밝히는 데 있다. 다가올 80주년, 새로운 광복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