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한국판 NED와 남북 대결의 고조

2024-08-21 13:00:01 게재

윤석열 대통령은 8월 15일 경축사에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북한 자유인권펀드’ 설립 의사를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이 펀드가 ‘한국판 NED(민주주의를 위한 국가기금,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역할을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북한 인권문제를 개선하려는 긍정적인 목표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남북 간 대결 구도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NED는 민주주의 확산을 목적으로 1983년 레이건 정부 때 설립된 기구로서, 많은 국가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증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미국의 외교적 도구로 활용되어 특정 국가의 정권 교체에 개입하는 등 여러 논란을 일으켜왔던 것도 사실이다.

“CIA가 비밀리에 해왔던 일을 NED가 수행”

NED는 비정부기구이지만, 주로 미국 정부의 연간 예산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의회의 감독을 받는다. NED 프로그램은 미국 국무부와 해외 대사관의 지도하에 운영된다. NED의 설립자 중 한 명인 앨런 와인스타인은 1991년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우리가 하는 많은 일은 25년 전 CIA가 비밀리에 했던 일”이라고 밝혔다.

이는 NED가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표면적 목표와 달리, 실제로는 CIA의 역할을 대신하는 기구로 활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NED 활동의 문제를 지적한 글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2010년 프랑스의 웹사이트 볼테르 네트워크(Voltaire Network)는 창립자 티에리 메이상(Thierry Meyssan)이 쓴 ‘NED, CIA의 법적 창구’라는 기사에서 NED의 실체를 폭로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NED는 프랑스 비정부기구(NGO)에 직접 개입하고, 심지어 프랑스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것이다.

메이상은 이러한 활동이 프랑스 내 민주주의를 촉진하기보다는, 오히려 외국 세력이 프랑스의 정치적 주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2018년 헝가리에서는 NED 자금을 지원받는 시민 인권단체인 헝가리 헬싱키위원회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헝가리 매체 피겔로는 이 단체가 외국 세력과 결탁해 헝가리의 안정을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주장은 NED가 단순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조직이 아니라, 외국 정부의 내정에 개입하고 갈등을 조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3년 4월, 전 뉴욕 타임즈 기자 스티븐 킨저는 “NED의 유일한 목적은 워싱턴이 승인하지 않는 정부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NED의 진정한 목적이 민주주의 확대가 아닌, 특정 국가의 정치적 불안정을 조장하는 데 있다고 비판했다. 2022년 이란에서 히잡 규정에 대한 시위가 벌어지자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 페르시안 서비스’의 한 기자가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와 사진을 대량으로 공개했다. 레바논 뉴스채널 알 마야딘에 따르면, 그 기자는 2015년부터 2022년 사이에 NED와 다른 몇몇 미국 기관으로부터 62만달러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중국 외교부가 지난 9일 발간한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NED의 활동은 매우 폭넓고 다양했다. NED는 대만 독립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하고, 홍콩의 반중국 세력과 공모했으며, 오랫동안 반중 조직인 ‘세계위구르회의’를 지원해왔다.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혁명 당시 NED는 우크라이나 시민단체와 정치 세력을 지원해 빅토르 유셴코의 당선을 도왔다. 이는 러시아와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우크라이나 내부 분열을 가속화했다. 이 상황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불안정과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2002년 NED는 베네수엘라에서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반대하는 세력에게 자금을 지원했고, 이는 결국 쿠데타로 이어졌다. 비록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지만, NED의 개입은 베네수엘라 내부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미국과 베네수엘라 간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인권개선 명목 자금지원, 북한 반발 초래 우려

NED는 우리나라에서도 대북전단 살포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며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국판 NED로 불리는 북한 자유인권펀드의 설립은 북한 인권개선이라는 명분을 넘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북한은 인권문제에 대한 지적을 외부 세력의 체제 전복 시도로 인식해, 이 펀드가 설립되면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 펀드가 북한 내부의 정치적 변화를 유도하거나 체제 전복을 목표로 하는 활동에 자금을 지원한다면, 남북 간의 긴장이 더욱 고조되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이 시급한 상황에서 오히려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아닌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장병호 외교통일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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