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제의 미국대선 톺아보기

변곡점에 선 미국, 세계, 그리고 한국

2024-08-22 13:00:01 게재

미국 시카고에서 진행되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나면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출정식이 모두 마무리된다. 9월 10일 예정된 2차 TV토론에서 대선의 향배를 결정하는 대격돌이 벌어질 것이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3개월의 짧은 캠페인으로 백악관을 차지할 수 있느냐가 이 한판의 토론에 달려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는 두번째 백악관 탈환의 성패를 가르는 마지막 관문이 된다. 11월 5일 투표일까지 정확하게 두달 반이 남았다.

지금은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기억되는 6월 27일 1차 TV 토론 이후 미국 대선은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쳐 왔다. 7월 13일 트럼프가 오른쪽 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지도 않은 채 펄럭이는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흔들며 “싸우자!”를 외칠 때 많은 사람은 이번 경주가 끝났다고 보았다.

그런데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가 흐름에 급변을 가져왔다. 민주당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81세 현직 대통령의 출마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눌려있던 에너지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흑인, 히스패닉, 청년, 여성 지지층이 새로운 후보 주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뒤처지던 지지율을 단숨에 따라잡고 오대호 주변의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등 러스트벨트 경합주에서 앞서기 시작했다. 젊고 즐거운 정치를 한다는 한 가지만으로도 이렇게까지 대선 정국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트럼프는 허를 찔렸다. 온 힘을 다해 싸워 “이제 이겼다!”고 생각하는 찰나 바이든이 뒤로 빠지고 새로운 상대가 나타났다.

15라운드 권투에서 상대방이 선수교체를 한 것과 비슷하다. 바이든 사퇴가 반칙이라고 따지지만 그런다고 바이든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시바삐 새로운 상대를 가늠하고 필승의 전략을 짜야 한다. 맥이 빠지고 화가 날 법도 하다. 더구나 얼마 전에는 죽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지 않았던가.

‘변화’를 앞세우는 해리스 진영

해리스 진영은 사기가 크게 올랐다. 바이든이 사퇴한 다음 오바마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거 투입돼 캠페인 체제가 한결 강화됐다. 오바마 캠페인의 캐치워드였던 ‘희망’ ‘약속’ ‘변화’라는 단어가 해리스 연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퇴임 후에도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소매를 걷고 도와주는 것은 해리스에게 큰 힘이 된다. 이번 전당대회(DNC)에는 클린턴, 오바마, 바이든 등 민주당 전·현직 대통령 세명이 모두 참석해 해리스의 출정에 지지를 보냈다. 지난달의 공화당 전당대회에 부시 대통령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것과 대조된다. 지금 해리스 캠프는 컨벤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바이든 사퇴가 대선정국을 뒤흔들었고 다음에는 해리스가 민주당 후보로 확정될 것인가, 러닝메이트는 누가 될 것인가에 관심이 이어졌다. 민주당과 해리스에 집중된 스포트라이트는 전당대회가 끝나는 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리스 팀은 변화와 미래를 키워드로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면서 투표일까지 지금의 기세를 몰아가려고 한다.

트럼프는 생각지 못한 때에 생각지 못한 적을 만났다. 불법 이민을 ‘강간범’이라 극언하면서 2016년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트럼프가 한결같이 내세운 것이 ‘변화’였다. 불법 이민, 범죄, 물가상승으로 허덕이는 중서부 저학력 노동자들에게 “바꿔 보자!”고 외친 사람이 트럼프였다.

트럼프가 무슨 말을 해도 그것은 변화의 메시지였고 답답한 가슴을 탁 틔워 주는 시원함이 있었다. 그런데 바이든이 물러나자 트럼프가 ‘과거의 사람’이 돼 버렸다. 바이든이 있을 때는 잘 안 보였는데 이제는 늙어 보이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틈을 해리스가 예리하게 파고든다. 이번 대선은 ‘과거와 미래의 선택’이라고,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정치는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서 ‘나야말로 변화를 이끄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리매김한다.

격돌의 현장이 될 9월 10일 TV토론

트럼프의 위기다. 2020년 대선 패배를 설욕하겠다고 다져온 각고의 노력이 마지막 고비에서 무너질 수 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모든 기성 언론과 전문가들의 예측을 뒤엎고 백악관을 차지했다. 2021년 1월 의사당 난입 사건이 일어난 다음 후임자 취임식도 참석하지 않은 채 플로리다로 내려가 버렸을 때 트럼프의 정치적 재기가 가능하다고 본 사람은 없었다.

트럼프는 예상을 뒤집었다. 2023년 8월 조지아 풀턴카운티 감옥에서 찍은 머그샷까지도 지지층을 결집하는 도구로 활용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 사이에 공화당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트럼프는 다시 한 번 반전의 서사를 쓸 수 있을까? 9월 10일로 예정된 2차 TV토론은 대선정국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해리스가 누려온 컨벤션 효과는 전당대회와 함께 끝난다. 사실 이미 모든 것이 노출된 트럼프에 비해 해리스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 있다. 해리스는 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언론 노출을 삼갔으며 대선 후보로 확정된 다음에도 대규모 기자회견을 피해 왔다. 미국이 당면한 주요 현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히지 않았다. 또한 해리스는 바이든의 부통령이라는 약점도 가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의 전쟁, 불법 이민 등 바이든 실정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은 바이든 사퇴의 충격에서 ‘참신한 인물’로 받아들여지지만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고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상승 모멘텀을 빼앗길 수 있다. 트럼프는 해리스의 이러한 약점을 파고들 것이다. 이번 토론을 거치면서 두 후보의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이 드러나고 11월 투표 전망도 한결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다.

시야를 넓히면 트럼프와 해리스의 대결은 미국 정치의 극심한 양극화 현상을 드러낸다. 한쪽에서는 미국을 ‘이념(idea)’이라고 한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이념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는 믿음이다.” 다른 쪽에서는 미국을 ‘민족(nation)’으로 규정한다. “미국은 이념이나 원칙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와 미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념으로서 미국은 추상적이다. 절대적으로 타당한 원리다. 민족으로서 미국은 구체적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실이다. 전자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표방하고 후자는 미국제일주의를 주창한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미국 국민이 결정한다. 지금 미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미국민의 전반적인 정서는 비관론이 우세하다. 지난해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2050년까지 미국 경제가 약해질 것으로 보는 비율이 66%, 세계 속에서 미국의 중요성이 줄어든다고 보는 비율이 71%, 정치 분열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77%, 그리고 빈부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81%에 달했다. 지난해와 올해 사이에 이러한 인식이 변했다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더구나 올해 7월 조사로는 응답자 59%가 미국이 무역에서 손해를 본다고 믿는다. 미국민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미국제일주의 쪽으로 쏠리고 있다.

지금 해리스 진영이 보여주는 새로운 활력이 이처럼 바탕에 깔린 비관론을 덮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역사적 변곡점에 선 미국과 세계

양극화된 미국 정치는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지 못한 채 지금처럼 교착상태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미국의 대외정책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미국제일주의를 오가면서 출렁일 수밖에 없다.

지난달 후보 사퇴를 발표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역사적 변곡점’에 서 있다고 했다. 오는 11월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는 세계도, 한국도 역사적 변곡점에 서 있기는 마찬가지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석좌교수